2021년 2월 21일 일요일

"용서"란 무엇인가? / 마 18:21-35, 엡 4:32.

 "용서"란 무엇인가? (마 18:21-35, 엡 4:32)

기독교의 진정한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독교능력사랑용서에 있다.

암병을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을 눈뜨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원수사랑하고, 원수를 위하여 축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 받는 데 있다.

기독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역시 그것은 사랑의 정신이다.

그러나 이 사랑의 정신용서 없이는 사랑실천할 수 없다.

용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용서반대말증오요, 보복이다.

용서는 상대방을 보복할 힘이 없어서 자기를 포기하거나 단념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내부에 끓어오르는 증오심과 더불어 싸우는 것이다.

결국, 용서란? 자기 자신과의 투쟁이요. 자아 극복이며, 자기 부정열매이다.

1) 성경이 말하는 ‘용서’란 무엇인가?

덮어주는 것이다. (To cover) (히브리어로, 코팔, Kophar)

용서(코팔, Kophar)허물을 덮어주다. 가리워 주다. 감싸준다는 말이다.

(시 78:38)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赦)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죄악을 사(赦)하사] 이 단어가 (코팔, Kophar), (To cover) 이다.

즉,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죄악덮어준다는 말이다.

(창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 칠하라.(Cover)

이 말씀은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의 말씀인데,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으로 안팎을 칠하라는 말이다.

이렇게 칠하라는 단어가 (코팔, Kophar), (To cover) 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허물주님의 보혈로 덮어주십니다.

그것이 용서이다. 덮어주는 것용서라는 말이다.

(벧전 4:8) 사랑허다한 허물덮느니라.

(고전 13:7) 모든 것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참으며’는 원래 뜻은 ‘덮으며’ 이다.

노아의 두 아들처럼 아버지의 허물을 가리우고 덮어드리듯이,

용서란? 상대방의 허물약점을 덮고 가리워 주는 것이다.

나사(Nasa)이다. (To lift up & away) (시 25:18)

이 말은 마치, 야구 선수가 공을 멀리 던져 버리듯이,

나의 죄와 허물을 들어서 멀리 던져 버리는 것이다.

(시 25:18) 나의 곤고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하소서

여기에 사(赦)한다”는 단어가 나사(Nasa)이다. (To lift up & away)

(레 16장) 아사셀 양이 나온다.

에게 안수하여 인간의 를 짊어지게 한 후,

광야로 멀리, 멀리 보내는 것과 같다.

물론 그 양은 짐승에게 잡혀 피흘리고 죽게 된다.

(시 103:12) 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하나님의 용서란?

나의 모든 죄과를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이렇게 멀리 멀리 옮겨 주셨다는 말이다.

탕감해 주는 것이다. (케리조마이) (To cancel a debit)

용서란 빚을 탕감하듯이 죄의 값을 탕감해 주는 것이다. (마18:23-35)

(마 18:21-22) 주여, 형제가 내게 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베드로는 칭찬듣기 위해서 7번까지 말한 것 같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그리고 예화 하나를 말씀하셨다.

(1만 달란트 빚진 사람과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 이야기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1만 달란트100데나리온차이를 생각해 보자.

(1 데나라온) = 1일 품삯. (1달란트) = 6천 데나라온.

그러므로 [1만 달란트 = 6천만 데나라온] 이다.

그러므로 [1만 달란트]는 1년 365일 노동자가 164,384년 동안 벌어야

갚을 수 있는 돈이다. (60,000,000 ÷ 365 = 164,384년)

16만 4천년 이상을 벌어야 하는 돈이다. 말이 되는가?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탕감해 받은 것이다.

1만 달란트 빚진자가 임금님에게서 전부 탕감 받았는데,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자용서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되었는가?

(마 18:32-34)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그리고 내리신 결론이다.

(마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기에 나오는 [용서]라는 말이 :

탕감 (케리조마이) (To cancel a debit)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용서는 내게 빚진 것을 탕감해 준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지은 죄의 값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전부 탕감해 주셨다.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Forget)

(히 10:17) 또 저희 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이다.

그렇습니다.

용서란? 그 를 다시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용서했으나 잊을 수 없다면, 용서한 것이 아니다.

forgive(용서) & forget(잊어버림)은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를 다시 부르실 때 과거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다만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셨다.

용서는 그 를 다시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용서받아들이라.

용서용서하는 편에서의 용서도 중요하지만,

용서받는 편에서도 그 용서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해 주셨다고 하셨는데도,

내 편에서 그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하고, 믿지 못한다면

용서는 효과가 없는 것이다. 무효화 되는 것이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용서해 주고, 받아 주셨다.

그런데 만일 탕자가 아버지의 용서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더 불효자가 되는 것이다.

(예화) 오래 전에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특면해 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감옥의 죄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음으로

사형 당하고 말았다.

3) 나 자신용서하라.

이제는 나 자신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을 자학하고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고 하면서 자학(自虐)하며 산다.

이것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를 지어 놓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해 놓고도,

뻔뻔스럽게 살아가면 안 된다. (예화) 영화, 밀양에서 살인마.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였으면, 하나님의 용서를 믿고, 나도 나 자신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예화)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야기

“우리 크리스챤들은 법과 질서를 잘 지켜야 합니다.”고 설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무슨 생각을 하다가 빨간 신호등에서 그만 지나가고 말았다.

그 순간 옆을 보니 교인들이 보았다. 내가 설교해 놓고 내가 규칙을 어기다니...

얼마 후에 전화가 왔다.

“목사님 아까 신호어기셨지요? 내일 목사님 만나고 싶어 합니다”

점심이나 같이 하시지요?... 그러나 걱정이다.

이 때 스윈돌 목사님은 목에다 무엇을 걸고 나타나셨다.

“나는 죄인입니다”(I am guilty) 얼마나 웃스웠겠습니까?

배꼽 잡고 박수 치며 웃었다.

그 순간 목사님이 갑자기 뒤 돌아섰는데 다른 글이 써 있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로 쳐라”

4) 네 이웃용서하라.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이웃에 대한 용서이다.

그렇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죄의 확신)

둘째는 나도 나 자신 용서해야 한다.

셋째로 이웃도 용서해야 한다.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같이 하라.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사하여 주옵시고...”

(예화) 케터키 주, 루이빌 의과대학 병원에 22세된 환자가 입원했다.

위장이 망가져 두 번 위절제 수술을 했다. 그러나 치료가 되지 않았다.

이 환자를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그 병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이 청년이 6살 되었을 때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양자로 보내졌다.

그가 만난 양부모의 학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친부모에 대한 분노가 자라났다.

세월이 흘러 22세의 청년이 되었을 때 위장이 망가진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수소문해서 어머니를 찾았다.

아들의 병실에 안내된 어머니눈물로 아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기를 3일이 지났을 때 아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며칠간을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를 받아들이고 모자(母子)가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그 때부터 신기하게도 그 젊은이의 이 삽시간에 회복되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용서가 없으면 치유도 없다. 용서는 자신을 치유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하면, 용서하지 못함으로 당하는 고통손해

자신이 더 크게 당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를 품을 때 최대의 피해자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신과 의사 “프레드릭 뷔흐너”분노는 인간의 뼈를 갉아 먹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므로 남을 용서해 준다는 것은 곧 나 자신축복하는 길이며,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다.

또한 남을 용서해 주는 것은 자신을 올무속박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Forgiveness, the Way to Freedom)

(결 론)

성경이 말하는 [용서]란 무엇인가?

1) 죄허물덮어주는 것이다. (To cover) (히브리어로, 코팔, Kophar)

2) 나사(Nasa)이다. (To lift up & away) (시25:18) 아주 멀리 던져 버려 주는 것이다.

3) 탕감해 주는 것이다. (케리조마이) (To cancel a debit)

4) 용서했으면, 다시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Forget) (히 10:17)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용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으니,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엡 4:32)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같이 하라.

(예화) [주는 나의 피난처] 라는 책을 쓴 코리 텐 붐 여사 이야기는 유명하다.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가족 모두 체포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감옥 생활을 하며, 수치스런운 일과 모진 고문을 당했다.

“라베스브룩”이라는 참혹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족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녀는 사랑용서의 멧세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 여러 곳을

다니며 간증 집회를 했다.

그런데 그 날도 간증집회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어떤 사람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수용소 간수였다. 자기의 언니 벳시를 죽인 그 간수였다.

마음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저 사람은 안됩니다.

저 사람만은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말씀했다.

어느새 그 사람이 가까이 자기 눈 앞까지 왔다.

성령님께 순종하여 억지로 손을 내밀어 그 사람과 악수하는 그 순간에,

용서할 수 있는 이 나왔고, 마음에 강물 같은 평안이 임했다고 했다.

기독교의 위대한 점을 용서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배워야 한다.

스데반 집사는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폭도들을 위해서

“이 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들의 용서해 주소서”라고 기도하셨다.

내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용서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가장 크고 놀라운 능력용서의 능력이다.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우는 손양원목사님은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 청년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데려다가 양자까지 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이다. 이보다 더 큰 능력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 주기 위해 외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서 흘려 죽게 하사, 죄의 값을 주님의 보혈탕감하여 주셨고,

이제는 기억도 안 하신다고 하셨다.

용서사랑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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