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복하는 자의 복 (시 32:1-7) [부흥 사경회 설교]
시편 32편은 다윗의 참회 시(詩)로서 성 어거스틴의 애송시였다고 한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는 병상 맞은편에 이 시편 32편을 써 붙여놓고
소리 내어 읽으면서 다윗처럼 회오(悔悟)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하기를 “이 시를 읽는 자마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죄로부터 자유하는 길을 알게 될 것이다.” 고 말했다.
요한 칼빈은 인간에게 있는 최대의 지식은 :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지식이다.
아무리, 세상 지식을 많이 안다 해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죄와 무관(無關)하게 살아갈 수 없다.
저기 사람이 있다는 말은, 저기 죄가 있다는 말과 같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다음에 태어난 인간들은
죄 중에 태어나서, 죄를 먹고 마시며, 죄 중에 뒹굴다가 죄악 중에 죽는다.
그러므로 사람과 죄를 분리(分離)해서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은 생명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죄와 상관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간다.
이 죄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웃기도하고, 울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죄가 무엇인지, 죄의 실체를 알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죽음의 문제와 죄의 문제이다.
사람이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철이 난 것이다
인간이 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짐으로 도덕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즉, 사죄의 길을 찾으면 신자(信者)가 된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보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보다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위대한 사람이다.
[파스칼] : 이 땅에는 오직 두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한다.
① 자신이 죄인 인줄 모르고 사는 죄인과
② 자신이 죄인 임을 인정하는 죄인이다.
전자는 희망이 없는 죄인이요,
후자는 희망이 있는 죄인일 뿐이다.
(막 2:17) 예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다윗은 성군(聖君)이라고 일컬어지고, 유대 나라에 역사상 가장 높임을 받는 왕이다.
인류의 구속주가 다윗의 자손으로 신약 성경 첫 페이지부터 다윗의 이름이 나온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서 다윗이라는 이름이 무려, 800번 이상 나온다.
그러나 그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이었다.
다윗의 인격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그는 믿음에 정직했고, 회개에 있어서 정직한 사람이었다.
저는 오늘 [죄 문제]와 그 [죄 사함] 받는 길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교인은 말하기를 :
목사님! 설교할 때 자꾸 죄인, 죄인하지 마십시오. 대단히 기분 나쁩니다.
내가 무슨 사람을 찔러 죽인 적도 없고, 도둑질해서 훔쳐 먹은 적도 없는데
이제부터 날 보고 죄인, 죄인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 분이 생각하는 죄의 관념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정도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죄의 개념은 훨씬 뿌리가 깊은 것이다.
어디까지 내려가느냐? 지옥까지 내려간다.
다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으로 그친다면 더러 의로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을 찔러 죽인 살인죄보다는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不信)하는 죄가
훨씬 더 큰 죄인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 법정에서는 불신앙의 죄는 다루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은 없다고 하며,
하나님을 안 믿는 죄가 훨씬 더 크고 깊은 죄이며, 심각한 죄가 되는 것이다.
불신, 불순종, 불의, 불법... 부(不)가 붙은 것은 다 죄이다.
(예를 들어) 집 안에 두 아들이 있다,
첫째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착실하다.
그러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고, 아버지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둘째 아들은 망나니이고, 공부도 잘 못하고, 문제만 일으킨다.
그러나 이 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한다.
두 아들 가운데, 어떤 아들이 더 불효자식이고, 나쁜 아들인가?
큰 아들이 훨씬 더 못된 자식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불신앙, 이것이 가장 큰 죄이다.
지옥 형벌을 면치 못할 죄인 것이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오늘 우리는 신앙 생활에서 현저한 진보를 갖기 위해서 죄에 대한 문제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신앙생활의 진전을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1) [죄] 란 무엇인가?
(1) 원어적 해석 :
죄 (SIN)라는 말은 원어적으로 [하마르티아]이다.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Missing the Mark :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가는 것이 죄이다.
표적을 상실하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와 삶의 표적이신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죄이다.
② Coming Short of the truth end. (모자란 상태)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 올렸는데, 목표지점 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미달하여 다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표준까지 도달치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과녁에 못 맞추거나, 목표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한 상태가 죄이다.
★ 소요리 문답(14번) :
죄가 무엇이뇨?
하나님의 법에 순종함에 있어서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속성이나 기준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은 다 죄이다.
2) 죄의 성질(性質)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성질을 잘 알아야 한다.
공은 튀는 성질이 있다.
물은 아래로 흐른 성질도 있고, 다른 것을 녹이는 성질도 있다.
◉ 죄도 성질(性質)이 있다. 고유의 특성이 있다.
ㄱ) 청요성(請邀性) :
이 말은 유혹(誘惑)하는 성질이다.
사람을 유혹해서 꼬이는 성질이 있다. 훔쳐 먹는 떡이 더 맛있다.
죄는 달고 맛있는 꿀처럼 보인다. 그래서 유혹한다.
(히 3:13)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했다.
죄는 유혹한다.
죄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뿌리치기가 어렵다.
나비야 청산 가자. 호랑나비야 너도 가자. 야! 가자... 야! 해 보자...
우리의 첫 할머니였던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 갔다.
그 때 사탄의 전략은 <꼬임>이었다.
정말, 동산의 중앙에 있는 실과는 먹지 말라 하더냐?
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 질 것이다. 먹어라. 한번만 먹어보라.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아들이다.
형들이 시기해서 애굽에 팔아버렸다.
시위대 장관, 보디발의 집에 팔려 종살이 했다.
일을 지혜롭게 잘 했다. 마침내 가정 총무까지 되었다.
이 때 번딜거리는 눈길이 있었다. 보디발의 아내, 유혹의 눈길이다.
어느 날 작정을 하고, 다른 종들은 다 도시락싸서 소풍보내고, 집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뿐이다.
이 보디발의 아내가 이쁘게 화장을 하고, 요염한 옷을 입고, 준비하고 있었다.
요셉이 들어와 보니, 왜 이리 집안이 조용하지? 아무도 없었다.
그 때 보디발의 아내가 나와 더불어 동침하자 유혹한다.
요셉은 마님, 절대로 안 됩니다.
당신의 주인이 다 맡겼으나,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이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요셉의 신앙은 in His Presence (하나님 면전에서) 코람 데오 신앙이다.
어떤 죄는 도망가야 할 죄가 있다.
죄 가운데 유혹성이 더 강한 죄가 있다.
불꽃도, 같은 불이지만 강도(剛度)에 따라서 색깔이 다르다.
(예) 불 ➡ 뻘건불 ➡ 노란불 ➡ 새파란 불 ➡ 하얗게 된다
유혹의 강도가 더 심해지기 전에 피하고, 도망가야 한다.
(예) 한번은 길선주목사님에게 어떤 여성도가 심방와 달라고 해서 갔더니,
다리를 붙잡고, 유혹했다. 그 때 길선주목사님이 소리치기를 :
“주여! 나 길선주 죽습니다.” 하고 도망쳤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딤후 2:22)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그렇습니다.
죄 가운데는 유혹성(誘惑性)이 강한 죄가 있다.
그러니까, 죄는 유혹성이 있음을 기억하고, 잘 대처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의 이 시대는 사탄은 죄의 유혹성을 최대한 이용해서, T.V. 광고, 선전,
시청각 장점과 인터넷 등으로 인간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빼앗아가고 있다.
ㄴ) 전염성(傳染性)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하듯이 하나의 죄는 또 다른 죄의 문을 연다.
하나의 거짓말을 하면,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한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또 다른 죄를 짓도록 만든다.
처음 죄를 지었을 때 빨리 회개하고, 죄를 끊어버려야 하는 용단이 필요하다.
다윗의 경우 : 간음죄(7계명) → 거짓말(9계명) → 살인죄(6계명) 까지 갔다.
그러기 때문에, 죄는 오래 두면 안 된다.
한꺼번에 모아서 회개하려고 하지 말라.
죄는 모아 두어서는 안 된다.
ㄷ) 고착성(固着性) :
죄라는 놈은 한번 자리 잡고 붙어 버리면 안 떨어지려는 못된 성질이 있다.
암세포보다도 더 질기고, 찰거머리처럼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제비족에게 걸린 부잣집 부인에게 찰거머리처럼 계속해서 돈을 요구하고
또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
안경 다리 부러졌다. Crazy Glue (강력 첨착제)를 바르고, 손가락으로 붙잡았다.
그런데 1분도 안 지났는데, 딱 붙어서 안 떨어진다. 결국 피를 보고 말았다.
암세포를 면도날로 Cut 하려 해도, 안 끊어진다. 그렇게 질기다.
죄는 암세포 이상으로 고착성이 있다.
그래서 죄가 계속 붙어있어서 중독증을 갖게 한다.
그러니까, 죄지었으면, 기다리지 말고 즉시, 회개해야 한다.
(겔 18:30)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ㄹ) 파괴성(破壞性)
죄는 그냥 조용히 나가는 법이 없다.
육신을 파괴하고, 인격을 파괴하고, 명예를 훼손하고, 가정을 파괴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렘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그러므로 죄 짓지 말고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본문의 다윗을 보면 죄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었다.
(3절) : 죄로 인하여 <종일 신음한다>고 했다. 양심의 고통이 있었다.
또한 <내 뼈가 쇠하였다>고 했다.
(4절) 내 진액이 변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고 했다.
다윗이 죄 짓고, 회개하지 않았을 때,
뼈가 마르고, 온 몸이 아프고, 마음에 고통이 심했다.
이렇게 죄는 인간을 파괴한다.
다윗은 내가 죄를 토설치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할 때에 :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육신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ㅁ) 권세성(權勢性)
죄가 죄 지은 그 사람을 다스린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고 했다.(요 8:34)
죄의 노예가 되어 죄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며 살아가는 불쌍한 자가 된다.
문제는 이렇게 무서운 죄의 세력을 우리의 힘으로 벗어날 힘이 없다.
3) 그러면, 어떻게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가 사는 길이다.
세례 요한도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도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죄는 회개(悔改)해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가슴이 찔려 어찌할꼬? (행 2:37) 회개했듯이,
죄의 문제는 죄를 회개(悔改)하는 길 밖에 살 길이 없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 어떻게 회개하는가? (회개하는 방법)
회개는 전(全)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인격(人格)의 3요소, 지(知) 정(情) 의(意)가 있다.
① 지(知)적으로 :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정해야 한다.
내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인식해야 한다.
내가 지은 죄도 모르고, 죄인(罪人)인 줄도 모르면 회개 할 수 없다. (계 3:17)
내가 지은 죄도 모르는데 어떻게 회개한다는 말인가?
탕자가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왔다.
정신 나갔던 사람이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돼지우리에서 하는 말이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 구나>
질병, 추위, 허약, 굶주림, 비참한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다.
문제는 아직도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면 회개 할 수 없다.
죄를 죄인지도 모르면, 회개할 수 없다.
지(知)적으로 죄를 깨달아야 한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자신이 병자인 줄 아는 사람만이 의사가 필요하다. (막 2:17)
♬ 사망 길에 빠진 이 몸 ∼ 캄캄한데 헤메며
부르짖는 나의 애원 ∼ 들으소서 내 주여!
주여 나를 돌아보사 고이 품어 주시고
험한 풍파 지나도록 나를 숨겨 주소서.
② 감정(感情)적으로 : (Emotionally) :
죄를 깨달을 뿐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잘못했습니다. So Sorry, 정말 죄송합니다.”
가슴을 치며 자복하고, 눈물로 회개해야 한다.
다윗처럼 눈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게 되는 것이다.
자식이 울면 부모의 마음이 이상합니다.
자식이 울면서 용서를 구하는데 용서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자식이 울 때, 사랑의 격동이 일어나서 용서 안 할 수 없다.
우리가 눈물로 울 때, 하나님의 보좌가 흔들린다.
울면서 내 자아가 깨어져야 한다.
눈치 보고, 위신, 체면 같은 것을 생각해서는 회개를 할 수 없다.
다윗도 왕의 체면을 다 버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나이다.” 하며 통회 자복했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것이다.
죽고 사는 마당인데, 하나님 앞에서 무슨 체통이 필요합니까?
③ 의지(意志)적으로 :
지적으로 죄를 깨닫고, 정적으로 죄를 아퍼하며, 슬퍼 할 뿐만 아니라,
의지적으로 죄에서 떠나고, 돌이켜야 한다.
후회(後悔)와 회개(悔改)는 같은 것이 아니다.
후회 (Remorse) : 아쉬워하는 것뿐이다. 내가 병신같이 왜 그랬을까?
회개 (Repentance) : 눈물을 흘리며 자복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가룟 유다는 후회했고, 베드로는 회개했다.
회개(悔改)는 뉘우칠 회(悔), 고칠 개(改) 이다.
뉘우치고 고쳐야 회개한 것이다.
뉘우치기만 하고, 그대로 죄 된 자리에 있으면, 회개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회개는 잘못된 길에서 방향을 바꾸는 의지적 결단이 중요하다.
[회개] = 슈우브(שׁוּב,히브리어), 메타노에오(metanoeo, 헬라어)
이 말은 모두 [돌이키다, 방향을 바꾸다] 는 뜻이다.
탕자가 집을 떠났다가, 다시 본래 있어야 할 집으로 돌아오듯이,
[회개]란 방향을 돌려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이다.
인간이 있어야 할 제자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가 본연(本然)의 자리이다.
다윗은 거짓 없이, 정직하게 회개하여 죄의 가리움과 정죄를 당치 않는
용서의 은혜를 받고, 행복한 자가 되었다. (1-2절)
(1-2절)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런데, 이러한 인격적인 참된 회개의 배경에는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있다.
인간적으로 회개하려 해도 잘 안 된다.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해 주시고, 성령께서 죄를 애통하는 마음도 주시고,
죄에서 떠나도록 강권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성령을 구하고, 회개의 영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4) 예수님은 죄 문제를 ( 해결 )해 주신 구원자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그리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다.
이제는 그를 믿는 자마다 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 (할렐루야)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결 론)
시편 32편은 다윗의 참회 시(詩)이다.
사람은 죄와 무관(無關)하게 살아갈 수 없다.
이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죽음의 문제도 해결되고, 영생을 얻는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행복도 없다.
★ 오늘 말씀드린 것은 :
① 죄가 무엇인가?
② 죄의 성질이 무엇인가? (5가지 성질)
③ 죄를 어떻게 회개하는가? (회개하는 방법)까지 말씀드렸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한 가지, 실제적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내 마음에 영접하는 일만 남았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1절)
“내 죄를 주께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罪)의 악을 사하셨나이다.”(5절)
다윗처럼 정직한 회개, 참된 회개를 통하여 죄 사함의 기쁨을 누리며,
주 안에서 감사, 찬송 부르며,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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