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2일 금요일

사랑은 깨달아야 사랑이다. / 롬 5:6-11, 요일 4:9-11.

      사랑은 깨달아야 사랑이다. (롬 5:6-11, 요일 4:9-11)


인간의 행복이란?

사랑을 깨닫는데 있다. 사랑이 확인되면 행복하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사랑을 받으려고, 스킨쉽을 하고,

을 잡고, 안기려 하고, 또한, 그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

[아가와 엄마의 사랑]

아동 심리학에서 하는 말이 있다.

자녀들이 어떤 때는 부모의 관심을 끌고, 그 사랑을 확인해 보려고,

일부러 사고를 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사고를 치다가, 반응이 없으면 더 큰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내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좋아한다.

그렇게 사랑을 느낄 때 인간은 행복하다.

이것이 행복의 기본이다.

문제는 그 사랑을 알고, 깨달아야 하는데,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사랑해 주어도 고마움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좀 어렵더라도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면, 문제될 것 없다.

문제는 이 사랑이 무너질 때, 인생도 무너지고, 살 맛도 없어지게 된다.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말씀은 정말 귀한 말씀이다.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그 사랑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고, 확증한다고 했다.

내가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6절)

내가 경건치 않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고,(6절 하)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나를 위해 죽으셨고, (8절)

내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10절)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것을 깨닫고 잊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이 말씀에서 [그 때]가 중요하다. 어떤 때 인가?

연약할 때, 불경건할 때, 죄인되었을 때,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런 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말이다.

내가 의롭게 살고, 하게 살고, 봉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상으로 사랑을 받는 거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 ∼∼ 때문에 (Because of) 하는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 그럼에도 불구하고 (in spite of) 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이런 것이다.

[독생자를 내어 주신 사랑]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이와 흡사하다.

내가 잘해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다.

공부도 잘하고, 건강한 자녀도 사랑하지만,

부모는 몸이 하고, 신체장애가 있는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를 더 사랑한다.

우리 엄마는 내가 실수도 많고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를 많이 사랑한다'고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가페(Agape)사랑은 부모의 스톨게(Storge)사랑보다 더 크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 비유가 나온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 유산을 미리 받아내서 집을 나가 허랑 방탕하게 살았다.

돈 떨어져, 친구 떨어져, 다 떨어졌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먹지 못할 정도로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아버지께로 돌아온다.

돌아올 때에 아직도 상거가 먼데, 탕자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입을 맞추고,

허그하고 데리고 들어와 “목욕을 시켜라, 좋은 옷을 입혀라, 반지를 끼워라, 을 신켜라,

를 잡아라.” 하며 환영 잔치를 한다.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

아들은 너무 부끄러워서 :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를 지었기에 저는 아들 자격이 없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너무 너무 기뻐하며,

“내 아들은 죽었다 살았고, 잃었다가 얻었노라. 이렇게 기뻐하고 환영한다.

그 때 탕자는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혹시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돌아올 걸...”

탕자는 자신이 집을 나갔으니, 아버지도 나를 버렸을 것이고,

내가 아버지를 잊었을 때 아버지도 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더라는 것이다.

내가 집을 나가 방황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돌아왔기 때문에 용서한 것이 아니다.

이미 다 용서하고 기다린 것이다.

예수님께서 탕자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렇게 보여주신 것이다.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향

문제는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버지의 그 사랑을 깨닫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면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더 아프시겠는가?

사랑은 깨달아야 사랑이다. 깨닫기 전에는 사랑인 줄 모른다.

깨닫기 전에는 부모가 매질하면 채찍일 뿐이다.

그러나, 사랑을 깨달으면, 육체의 가시도 은혜이고, 질병도 사랑이고,

고난도 사랑이고, 모든 것이 사랑으로 해석된다.

깨달을 때까지는 사랑이 아니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기까지 내어주신 사랑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엄청난 사랑 안에 있는 [나]라는 존재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받고 있는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도 나 자신 사랑해야 하고, 또 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마땅하다.

(요일 4:11)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요 13:3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미국에 작가 아서 고든 이라고 하는 분이 있다.

그가 사는 이웃 집에 젊은 내외가 살고 있다.

서로 오고가면서 가까이 지내었다.

그런데 이 아서 고든의 집에 적이 큰 걱정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이웃에 사는 이 젊은 내외가 결혼 파국을 맞았기 때문이다.

늘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은 가구를 때려 부수는 요란한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이 부부들이 찾아와서 남편은 아내를 보고, 아내는 남편 을 본다.

이렇게 계속 불화한 가정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정말 고통스럽다.

남의 부부 일이니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늘 마음에 부담이 되고, 걱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이 젊은 부부의 가정에 서광이 비추인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졌다.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다.

너무 신기해서 물어 보았다.

이렇게 가정이 변화하게 된 특별한 비결이 있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들이 대답하기를, 사실 자신들도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존경하는

나이 많은 어느 내과 의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 해결책이 있는데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행하기만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가르쳐 준 것이 8단어이다.

그 여덟 단어는 :

So I love him, though I love him.”

So I love you, though I love you.”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도 사랑하노라. 라는 말이다.

So I love you, though I love you

이 한 마디 말을 듣고 와서 그대로 입으로 외우면서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도 사랑하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가정이 새로운 가정이 됐다는 이야기이다.

(결 론)

사랑은 깨달을 때까지는 사랑인 줄 모른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불경건하고, 우리가 죄인되었고,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in spite of)사랑해 주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그래서 사랑하고,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랑하고 있다.

이 사랑의 확실한 증거가 십자가이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그 사랑을 믿고, 그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을 섬기며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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