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일 금요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 요 11: 1-27.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요 11: 1-27)

(옆 사람에게 주님의 부활하심을 축하하며 인사합시다.)

Happy Easter ! (주님의 부활을 축합니다.)

어떤 사람이 묘지를 걷다가 한 묘비의 글을 읽게 되었다.

첫 줄 : 나도 당신처럼 있었소.

둘째 줄 : 나도 당신처럼 웃고 있었소.

셋째 줄 : 당신도 나처럼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묘비에는 : 오늘은 요, 내일은 당신입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 동서고금(東西古今) 없이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내가 누리던 재물, 명예, 권력, 지식 등등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빈 손으로 떠난다.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죽음>을 어찌 할 수 없다.

우리는 하루도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잠 27:1) 너는 내일 일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10년, 20년 계획을 세워도,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문제죽지 않을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다가 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찾아가고 긴장한다.

또 나이가 들면서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가까운 지인 가운데,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놀란다.

“왜? 죽었노? 나이도 많지 않은데... 믿을 수 없어...”

그러면서도, 자신의 죽음은 준비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문제다.

그러다가 이라도 걸려서 죽음이 찾아오면 좌절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죽음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로 인하여 더욱 슬프게 된다.

그런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놀라운 해석을 갖고 있다.

<죽음>새로운 시작이라는 해석이고, 믿음이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영원한 세계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의 나라, 천국의 시작이고,

불신자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 지옥의 시작이다.

얼마나 무서운가? 예수 믿어야 한다. 전도해야 한다.

(살전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자는 자”라고 말한다.

죽은 사람자는 사람차이가 무엇인가?

죽은 사람은 깨어나지 못하지만, 자는 자는 반드시 깨어난다.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깨어나고, 일어나는 때가 있다.

(요 5:28-29) 무덤 속에 있는 자가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고전 15:51-53)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이 없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감정과 행동이 다르다.

참된 <믿음><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산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은 성도는 슬픔과 두려움 없이,

<죽음>이 와도 사도바울처럼 오히려 기대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만일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바라는 것이 이 세상 뿐인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간과 물질을 드려가며 신앙 생활한다.

그런데 부활도 없고, 천국도 없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라는 말이다.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부활소망기대를 갖고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만일 이런 소망기대가 없다면 더욱 불쌍한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계속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죽음]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 있었다.

ㄱ)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다. (막 5장)

ㄴ) 나인성의 과부의 외 아들을 살리셨다. (눅 7장)

ㄷ) 죽은 지 3일 된 나사로를 살리셨다. (요 11장)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으셨지만, 오히려 2틀을 더 유하시고 지체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요 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어난 병이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할 때 :

내가 되고 형통하고, 성공해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나사로의 죽음처럼 질병아픔실패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주권 가운데 그의 영광을 위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을 때 모든 두려움과 슬픔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이 죽을 병이 아니라고 했는데, 나사로가 죽었다.

장례식도 다 마치고, 시신은 굴 무덤에 묻었고 조객들은 하나 둘씩 떠나가고 있다.

그제서 뒤 늦게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마르다마리아가 주님께 달려와서 말한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똑 같은 말을 한다.

(21절)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2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이 말은 “왜 이제 오십니까?” Too late 원망조의 말이다.

진작 오셨어야지요? 좀 신경을 써 주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텐데요.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정말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말씀이다.

(결 론)

부활 주일 아침을 맞이하여 우리 주님의 부활하심을 감사드리며 경배합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이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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