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 수난 예언 시 (시 22:1-24)
구약 성경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메시야의 수난에 대한 예언의 말씀으로 가장 대표적인 말씀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이사야 53장이고, 또 하나는 오늘 본문 시편 22편이다.
(사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늘 상고할 시편 22편의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예언 시이다.
정말 놀랍다.
예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현장의 사건을 보고 보도하듯이, 미래의 사건을
역사의 기록처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사야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기록하였고, 다윗은 1,000년 전에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생생하게 예언하고 기록했을까? 정말 놀랍고 신비로울 뿐이다.
물론,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것은 [표제]에 나왔듯이 다윗이 쓴 시이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사울 왕의 정적(政敵)이 되어서 도망다녀야 했다.
그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그렇게 외치셨다.
(마 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이 버림받으심, 유기(遺棄)의 절규를 하셨는데, 다윗이 1,000년전에 예언한 그대로다.
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나?
우리를 받기 위해서 독생자를 버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위한 희생적 죽음, 대속적 죽음이 되는 것이다.
(14절)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다고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셔서 물과 피를 쏟으셨다.
두 손과 발에 못 박히셔서 온 몸의 체중으로 내려앉아서 뼈마디 조이트가 빠지고,
주님의 마음은 촛밀 같이 녹아지셨다.
(7-8절)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이 말씀도 그대로 성취 되었다.
(마 27: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15-17절)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몸은 십자가에서 만신창이 되셨고, 혀는 말라 입천정에 붙었다.
악한 무리들이 둘러 주님의 손과 발을 대못으로 박았다.
(18절)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이 말씀, 주님의 속옷을 제비뽑는다는 예언도 그대로 성취되었다.
(요 19:23)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한 젊고 똑똑한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그 대학생이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예언의 성취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잘 알기 때문에, 구약 성경에 기록한 대로 그대로 하고나서,
마치, 구약을 성취한 것이라고 한다고 의심했던 것이다.
머리가 스마트하니까, 그렇게까지 의심했던 것이다.
구약 성경을 그대로 하고, 예언을 성취한 것처럼 말한다고 의심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의심과 불신이 이 (시편 22:18) 말씀 앞에서 깨어졌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어가시는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로마 군병들에게 그것을 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 말씀 앞에서 깨진 것이다.
그래서 똑똑한 젊은이가 예수님의 인격과 생애와 예언의 성취를 믿게 된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 시와 십자가 사건 앞에서 질문해야 한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과 피를 쏟으시고,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이 녹고, 손과 발에 대못이 박혀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롬 5:8)에 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지만,
우리가 아직 죄인(罪人)되었을 때에, 아무 가치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원수되었던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화목제로 삼으신 것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과의 불화(不和)를 청산하고, 화목(和睦)케 하기 위함이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이끌어 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과 사랑과 대속적 죽음을 힘입어서 죄 용서를 받아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고, 천국백성이 된 것이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다 표현 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 찬송가 (304장, 구404장)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후렴]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결 론)
시편 22편은 다윗의 고난 시이면서, 메시야에 대한 예언 시이다.
구구절절이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한다.
주님의 고난에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닫고,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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