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가운데 평안을 누리라 (막 4:35-41)
오래 전에 영국에서 [평안]을 주제로 한, 미술대회가 열렸다.
평화로운 산과 조용한 연못들, 아름다운 전원 풍경, 즐거운 가정의 모습 등으로
그린 아름다운 그림들이 많이 출품되었다.
그러나 1등 작품은 비바람이 불고 먹구름과 폭풍우 가운데 천둥이 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를 그린 그림이었다.
언뜻 보면, 그 그림은 도무지 평화를 느낄 수 없는 그림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비바람, 폭풍이 부는 가운데, 그림 한 쪽 끝에 작은 바위가 있고,
그 바위 곁에서 한 어미새가 조용히 앉아서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이 1등에 당선되었다.
참 평화는 아무 문제가 없는 가운데 평안이 아니라,
폭풍우 가운데서도 누리는 평화가 참 평안이라는 것이다.
성화 가운데, 목자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 양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어린 양이 목자의 품에 안겨서 목자의 눈을 쳐다보며 행복 해 하는 그림이다.
어머니 품에 안겨서 고이 잠자는 아기의 모습과 같다.
다윗은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모시고, 자신은 양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다.
양은 목자 한 분이면 됩니다.
그가 계시면 만사가 만족이고, 어떤 근심도 걱정도 없다.
그가 계시어 만족하고, 그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나는 홀로가 아니다.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그 곳이 낙원이고, 거기에 안식이 있고, 천국이다.
주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움이 없다.
(예화) 한 수도사가 살다가 죽어서 예수님을 만났다.
자신의 일생을 보여 주시는데, 나의 일생이 쫙∼ 보인다.
그런데 발자국이 둘이다. 나는 가족도 없는데 발자국이 둘이다.
왠 일인가? 그 때, 주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했었노라.
하나는 네 발자국, 또 하나는 내 발자국이었노라.
주님!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한 사람의 발자국 밖에 없다.
그 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주님은 어디 갔었습니까?
그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다.
네가 너무도 힘들어해서 내가 업고 갔었느니라.
수도사는 자기가 혼자 살아 온 줄 알았다.
일평생을 외롭게, 고독하게 혼자 살아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주님이 늘 함께 하셨다.
그래서 감사했다는 <모래 위의 발자국> Footprints in The Sand 이라는 시이다.
문제는 이 귀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이다.
I am not alone (나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분이 계시고,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이 사실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주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주님이 나와 동행하여 주시고, 넘어지면 일으켜 주시고, 힘들 때는 업고 가 주신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하고, 매 순간 순간 느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품 안에서 평안함을 느끼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참된 신앙생활인 것이다.
오늘 본문에 이러한 평안이 있다.
이것이 신앙의 극치라고 생각이 된다.
(38절)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다.
갈릴리 바다는 자주 풍랑이 일어난다.
(37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큰 풍랑이다. 영어로 말하면, 크다는 말에는 그 차이가 다르다.
(Big ➤ Large ➤ Great ➤ Tremendous ➤ Mega)
여기의 큰 광풍은 메가급 광풍을 말한다.
(예화) 총신대학교 졸업반 때 수학 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부산까지 기차로 가고, 부산에서 제주도까지 배 타고 갔다.
한 밤중에 밖으로 나가서 바다를 보았는데, 바다 색깔이 검고
파도가 넘실거리는데, 정말 무서움을 느낀 경험이 있다.
지금 제자들이 탄 배에 물이 들어와 배가 점점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평안히 주무시고 계신다. (38절)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요?
(시 127:2)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졸리기는한데, 잠이 안 오고, 누었는데 잠이 안 오면 큰 일이다.
건강해야 자고, 평안해야 자고, 죄책이 없어야 잘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잔다.
배가 흔들리고, 배에 물이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평안히 주무시더라.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고물> 배의 뒤쪽 부분이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는 배가 더 흔들렸을 것이다.
물결, 풍랑과는 상관이 없이, 평안함과 고요함을 누리며 주무시더라.
[채근담] 어록집에 이런 말이 있다.
“고요한 중에 고요함은 고요함이 아니고, 소란한 중에 고요함이 참 고요함이다.”
평안할 때 평안함보다는 불안할 때 평안함, 전쟁 속에서의 평안함이 참된 평안이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 고요하게 주무셨다.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운다.
(막 4:38-39)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바다를 꾸짖으셨다.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령하셨더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치 귀신아! 물러가라 하셨을 때 물러간 것처럼, 바람과 바다에게 명령하셨더니
잠잠해 졌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나님이심과 창조주이심을 자기 계시하신 사건이다.
창조주가 명하시니 자연이 복종한 것이다.
예수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다.
(41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그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세상 풍랑이 문제가 아니다.
[믿음] 없는 것이 문제이다.
문제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고 “믿음”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세상의 문제가 아니고, 환경의 문제도, 경제문제도 아니고,
믿음이 없어서 흔들리는 것이다.
(예) 자녀도, 역사도, 생명도, 미래도... 다 하나님 손에 있다.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다 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예화) 사도 바울은 276명이 탄 배가 유라굴라 광풍을 맞아서 파선 지경에 이르렀고
14일 동안이나 풍랑 가운데 있었으나 그는 말한다.
(행 27:25)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너무 너무 죽을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호들갑을 떤다.
왜 믿음이 없느냐?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믿음 없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분명한 확신이 있으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분명히 믿고 있는 것이 있다.
예수님은 이 풍랑 가운데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셨다.
왜 그럴까요?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나는 이대로 죽을 내가 아니다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은 만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왔노라.
나는 앞으로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왔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물에 빠져 죽으면 구원의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므로 이렇게 죽을 내가 아니다는 말씀이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가?
큰 풍랑이 일고, 파도가 심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
만백성을 구원할 사명이 있는데, 아무리 큰 풍랑이라도 나는 죽지 않어?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정도의 풍랑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임시적 목적지와 궁극적 목적지가 있다.
지금 바다를 건너는 것은 임시적 목적지이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지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화) (요 16장) 예수님 앞에는 고난의 십자가, 죽음의 십자가가 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가노라 고 말씀하신다.
(요 16: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겟셋마네 동산에서 피 땀 흘리는 기도,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고,
채찍과 고난의 길,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서,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 시점 앞에서, 주님이 바라보신 것이 무엇인가?
이 모든 고난과 십자가를 넘어서, 저 멀리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나는 아버지께로 가노라.” 저 멀리를 바라보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마시지 않겠느냐? 그리고 십자가를 지신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 내게 주신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절대로 안 죽는다.
사명이 있는 한, 절대로 안 죽어요. 죽으면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그래서 목숨보다 사명이 더 귀하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이러한 영적 원리를 깨닫고,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풍랑 많은 세상에서 제자들에게 현장 실습 교육을 하신 것이다.
풍랑 속에서도 평안하게 주무시는 예수님의 믿음을 배워야 할 것이다.
(결 론)
오늘도 인생의 풍랑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들어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메가급 큰 풍랑 속에서도 평안히 주무시는 예수님의 믿음을 배워야 한다.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인생의 큰 풍랑과 고난이 있다 할 찌라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감사, 찬양하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주가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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