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9일 월요일

광신적인 신자가 될까, 두렵습니까? ​(갈 5:22-26)

 광신적인 신자가 될까, 두렵습니까? (갈 5:22-26)

예수를 믿게 된 것큰 복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다.

과유불급 (過猶不及)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나치면 모자람과 같고,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인가?

문제는 가끔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 직장도 버리고, 가정도 뒤로 하고,

학교도 가지 않고 비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을 본다.

열심히 신앙 생활하다가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염려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 (22-23절)에서 대답해 준다.

(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사랑희락화평오래 참음자비

양선충성온유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를 심고, 시간이 지나면 열매가 맺어진다.

이와같이 성령을 받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인생은 정말 행복하고 복된 사람이다.

그러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이런 열매를 맺으니, 염려할 것 없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성령의 9가지 열매3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① 하나님과 관계된 열매 : 사랑, 희락, 화평.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서 희락하고, 하나님 안에서 화평의 열매를 맺는다.

② 이웃과 관계된 열매 :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이웃과의 관계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인내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양선(선량)하게 대할 수 있는 인격의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③ 나 자신과 관계된 열매 : 충성, 온유, 절제.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성실한 충성의 사람. 혈기 부리지 않는 온유한 사람.

그리고 절제의 열매를 맺는다.

이 마지막, 절제의 열매가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게 될 때, 광신자가 될 까봐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면 비정상적인 광신적 신도가 되지 않게 하는 절제의 열매가 있다.

절제의 열매 Self-Control (자신을 다스리고, 통제함)이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사랑근신하는 마음이니라.

여기의 마음푸뉴마(영)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영)두려워 하는 마음(영)아니다.

오직 능력사랑근신하는 마음(영)이다.

(예화) 코로나로 스트레스 받고, 두렵게 하는 것은 사탄이 주는 마음이다.

성령이 주시는 마음평안이고, 능력사랑근신의 마음이다.

여기의 근신(謹愼)의 마음도 Self-Control 이다.

경성(警醒), 각성(覺醒)과 같은 의미로서, 정신을 차려 조심하는 것이다.

마치 성령을 받았다고 황홀경(怳惚境), (Ecstasy,엑스타시)에 빠진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정상적인 신앙은 자기 정신을 잃은 몽롱한 상태가 아니다.

믿음이 좋다는 말이 막무가네로 행동하고, 비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정신이 똑똑하고, 아주 인격적(人格的)이다.

지성(知性)이 분명하고, 상식(常識)이 있고, 무례(無禮)하지 않고, 예의가 바르고,

가정충실하고, 헛 소리 하지 않고, 정말 모든 삶의 본(本)이 되는 생활을 한다.

가정도 버리고,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만 하는 것이 믿음 좋은 것이 아니다.

남편을 뒷바라지 하고, 자녀를 돌보고, 학생은 학업에 열중하고,

직장인은 자기 업무에 성실하고, 이웃과의 관계가 원만하다.

성령이 주시는 마음절제가 있고, 경성하고, 근신이기 때문이다.

무절제하고, 비상식적이지 않고, 사랑과 절제의 사람으로 붙잡아 주신다.

(롬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사망이요 영의 생각생명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세상 영, 사탄의 생각을 말한다. 그 결과는 사망이다.

성령의 생각은 나를 소성케 하는 생명과 마음의 평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이 생명이고, 평안의 삶이다.

문제는 어떻게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 수 있는가?

성령은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가?

두 개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엡 5:18-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찬미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찬미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두 성경 구절결과는 똑 같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말씀 충만같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말씀의 인도를 받는 것과 같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록된 말씀은 볼 수 있다.

그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안에 성령의 인도가 있다.

말씀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 말씀 안에 인생의 정로(正路)가 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이요 생명이라

주님의 말씀영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 == 성령] 이다.

(요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예수님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 것은 성령을 한량없이 받았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말씀성령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은 성령의 인도가 아니다.

말씀의 역사성령의 역사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화) David 보스 선교사와 R.A. 토레이 성공회 신부님이 계셨다.

한국 교회를 위해서 일평생 헌신해 주신 아주 훌륭하신 목사님들이다.

토레이 신부님은 기도도 많이 하시고, 성령 운동도 많이 일으키셨고,

성령의 은사도 많이 받으신 목사님이시다.

그런데, 성령 운동하는 분들을 보면 처음에는 불같은 열정으로 시작했다가

30년 40년 지나면서 그 뜨거웠던 불이 식어버린다.

그런데, David 보스 선교사토레이 신부님에게 물었다.

토레이 신부님은 어떻게 50년이 넘도록 계속해서 뜨거울 수 있습니까?

아주 간단하게 한 마디로 대답하셨다. 그것은 “말씀 묵상” 입니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지만, 장작이 계속해서 공급되지 아니하면 불을 꺼지고 만다.

계속해서 장작이 공급(供給)되어야 이 활활 타오르고 꺼지지 않는 것처럼 :

성령의 불이 계속해서 뜨겁게 타오르기 위해서는 말씀의 장작이 계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말씀 묵상성령의 불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비결이다.

말씀성령은 같이 간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다.

(결 론)

신앙이 좋다는 것은 축복이고 좋은 것이다.

그렇다고 광신적인 신앙이 되어서 가정도 돌보지 않고, 교회 일에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믿음도 아니고, 성령의 인도도 아니다.

정말 좋은 믿음,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주 인격적(人格的)이다.

상식(常識)이 있고, 무례(無禮)하지 않고, 예의가 바르고, 가정충실하고,

헛소리 하지 않고, 정말 모든 사람의 본(本)이 되는 소금으로 산다.

성령의 열매에는 절제가 있고, 성령이 주시는 마음근신이다.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은 :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이상적인 삶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사는 삶이다.

보이지 않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싶으면,

에 보이게 기록된 말씀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면 된다.

날마다 말씀읽고, 말씀묵상하며, 큐티하면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

받으며, 생명평안의 삶을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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