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소서. (시 51:1-12)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소서. (시 51:1-12)


하나님 마음에 했던 다윗 왕간음죄를 짓고 이것을 은폐하려고 살인죄를 지었다.

백성들은 전쟁에 나가 목숨 걸고, 흘리며 전투하고 있는데 다윗은 낮잠을 자고,

왕궁 지붕을 거닐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데려다가 간음죄를 지었다.

이것을 은폐(隱蔽)하려고 밧세바의 남편이며, 충성스러운 장군 우리아를 죽게 했다.

아무도 모르고 완전 범죄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을 가리 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를 지적하고, 심판할 것을 말씀했다.

범죄는 하나님을 업신여긴 결과를 낳았다.

ㄱ) 칼이 네 에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삼하 12:10)

ㄴ) 와 네 재앙을 일으키고 (삼하 12:11)

ㄷ) 네 처들을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가 백주에 동침하리라.(삼하 12:11)

그 때 다윗이 어떻게 반응했나요?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를 범하였노라.

내가 를 지었습니다. 죄를 인정했고, 고백했다. 자백했다.

다윗은 한 국가의 이다.

그 당시 승승장구하던 한 나라의 이다.

그런데 다윗의 범죄만천하(滿天下)에 드러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다. 왕좌에서 쫓겨날 찌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정직하게 인정한다.

나단 선지자, 이 노인네를 감옥에 잡아 넣거나, 호통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울 왕사무엘를 지적했을 때 변명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다윗 왕과 사울의 차이다.

(삼상 15장) 하나님이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명령하셨는데, 불순종했다.

아각 왕의 양과 소들 중에 좋은 것을 남겼다.

(삼상 15: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나는 다 죽이려 했는데 백성들이 그랬다변명(辨明)한다.

또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살려 두었다고 변명한다.

사실은 탐욕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변명하기에 바뻣다.

또 한번은 (삼상 13:11-12) 그 당시에는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번제를 사울 왕이 행했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가 왔을 때, 사울 왕은 또 변명한다.

백성들은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은 치러 오고, 등등

그래서 부득이하여 (해서는 안 될) 번제를 드렸나이다고 변명했다.

즉,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예) 회사에서 어쩔 수 없어서 고사(告祀) 드리고... 라고 말한다.

부득이하여 거짓말하고, 편법 쓰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다윗은 변명하지 않고 인정했다.

◉ (시 51:4) 내가 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다윗이 사람(밧세바와 우리아)에게 를 지었는데 주께만 범죄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1) 하나님만이 모든 선악의 기준이 되고, 하나님만이 심판자 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과 관계가 있다. 살인죄, 간음죄, 불효, 거짓말, 도둑질....

그러나 사람과 관련된 이지만, 그것은 곧 하나님를 짓는 것이다.

(예) 요셉도 (창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得罪)하리이까?

그렇습니다.

모든 죄사람에게 지은 죄라도 그것은 하나님께도 가 된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죄>라 해도, 하나님이 죄 아니라고 하면, 죄가 아니다.

이것을 기독교 윤리학에서는 “신명론”이라고 한다.

(예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번제로 받치라 했을 때,

아들을 번제로 받치려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안 받치면, 가 된다.

아말렉을 다 멸하라 했는데, 불순종하여 멸하지 않은 것이 가 된 것과 같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죄] 아니라 해도, 하나님[죄]라고 하면가 된다.

(왜 주께만 범죄했다고 했는가?)

(2) 하나님의 원수로 하여금, 크게 비방거리를 얻게 했기 때문이다.

(삼하 12: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그러니까,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공의에 손상을 입힌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소속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를 짓고 범죄하면 :

그것은 곧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비방거리를 얻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그래?...) 욕을 먹는다.

차라리,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하나님의 이름모욕(侮辱)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마 5:16) 이같이 너희 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렇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내가 주께 범죄하였음을 인정하고 눈물로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사는 길이다.

(시 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은유적 표현이지만, 침상이 떠내려 갈 정도로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회개한 것이다.

(12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회복시켜 달라는 말은, 전에는 구원의 즐거움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 [구원의 즐거움] 이다.

(Cf) 대학 합격의 기쁨, 결혼의 기쁨, 출산의 기쁨, 승진의 기쁨, 돈 버는 기쁨 등등

기쁨의 종류가 많다. 그러나 최고의 기쁨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기쁨인 줄 믿습니다.

잠깐 있다가 지나가는 인생이다.

얼마 안 있다가 죽으면 우리는 천국 갈 것이다. (할렐루야...!)

구원받지 못한 인생은 아무리 많은 재산명예권력을 가졌다 해도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되니,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지옥에 떨어지면, 다시 나올 수도 없고, 또 죽을 수도 없다.

백만년이 지나도 끝이 없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러므로, 예수 믿어야 한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아 구원 얻고, 천국가야 한다.

(행 16:31) 주 예수믿으라, 그리하며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요 3:16) 누구든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지옥)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요1:12)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 모든 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는 구원 받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

죽었던 영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둠의 자식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고아가 아닌 성령님과 동행하며 산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기쁨 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

그러므로 행복의 기준[구원]이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하나님의 사람이 가지는 행복의 기준세상적인 성공, 물질, 명예가 아니다.

구원이다.

그러므로 너 구원 받았느냐? 할 때 :

YES 할 수 있으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비록 내가 지금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져 있고, 병들고,

가난하다 할 지라도, 구원 받았으면 행복자이다.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다윗은 구원의 기쁨최고의 기쁨인 줄 알았다.

(시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가려진 자이 있도다.

죄 사함 받은 기쁨은 영혼의 기쁨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다윗구원의 즐거움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다윗은 전에도 늘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았던 신앙인이었다.

사울에게 늘 쫓기는 신세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경험하며 구원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예) 사울의 군사들이 다윗을 완전히 포위해서 꼼짝없이 잡히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하는 수 없이 사울은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 곳 바위 이름을 셀라하마느곳(분리의 바위) 이라고 이름하였다. (삼상 23:28)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다윗이 를 지으니, 구원의 즐거움이 다 사라져 버리고,

영혼의 기쁨도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상하게도 죄를 지으면 구원의 기쁨이 다 사라지고 만다.

순간적인 짜릿한 쾌락은 준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이고, 멸망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히 11:25) [잠시 죄악] 이라고 했다.

(잠언 9:17)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죄의 낙, 쾌락이 있으니, 죄를 짓는다.

그런데 그 쾌락은 아주 잠시이고, 순간이다.

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영원한 행복을 잃어버리는 미련한 죄인들이다.

문제는 그 죄로 인하여 영혼의 기쁨사라진다. 영혼으로 신음하게 만든다.

성도가 죄 지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서 근심하신다.

그래서 내 영혼무거운 짐으로 짓눌림을 받는다.

(시 32: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하였도다

뼈가 마를 정도가 된 것이다.

(시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구원의 즐거움회복할 수 있는가?

인정하고 자복하고, 해결 받음으로 구원의 즐거움회복 되는 것이다.

진정한 참회를 통하여 주님의 보혈정결함을 받는 것이다.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는 것이다.

(시 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하리이다

나의 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우슬초는 줄기에 털이 많은 식물로서 물을 잘 흡수한다.

그래서 정결 예식을 할 때 우슬초어린 양의 피를 묻혀서 뿌린다.

그래서 다윗은 어린 양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가 흰 눈보다 희리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타락한 죄성이 있음을 다 아신다.

그러므로 쉽게 넘어지는 것도 아신다.

하나님은 한번도 완전한 사람을 찾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죄성(罪性)이 있고,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를 지었을 찌라도, 우리가 우리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요일 1:9)

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1)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서 우리 를 용서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회개만 하면, 기뻐서 즉각적으로 를 사해 주시분이시다.

(시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를 아뢰고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하셨나이다.

몇 칠 생각해 보고,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회개하는 그 즉시, 그 즉시....

자백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기억도 안 해 주신다고 했다. (히 8:12, 사 43:25)

(2) 용서해 주실 때 정말, 정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신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 86: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내가 자백해야만 용서해 주시나요?

그냥 용서해 주시면 안 되나요? 이유가 있다.

1) 내가 나의 죄를 깨닫고, 다시는 같은 죄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죄모르기 때문이다.

2) 사탄의 참소를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다.

사탄은 계속적으로 우리의 죄를 고발하고 참소한다.

3) 구원즐거움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이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

죄에 매여 끌려 다니고 죄책감에 눌려 산다.

그러나 회개하면 죄에서 해방되고, 구원의 즐거움회복되기 때문이다.

(결 론)

(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다윗은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하면서 또한,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붙들어달라고 기도한다.

붙들어 달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그렇게 살게 해 달라는 말이다.

자원하는 마음은 귀한 마음이다.

신앙생활은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원해서 할 때 행복하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도 다 사라진다.

그래서 신앙생활마지못해서 하게 된다.

마지 못해 하는 것은 를 지었거나, 율법적으로 받을 까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예) 구역장, 순장, 주차 위원, 주방 봉사, 물질 헌신을 하는데,

전에는 기쁨으로 했는데, 왜 지금은 그 기쁨이 없나...?

지금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분명하지만,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린 성도가 있다면,

왜 그럴까? 자문(自問)해 보시고, 이 시간 회복의 은혜를 받게 되기 바랍니다.

죄 짐에 눌려 있는 자들에게 이 시간, 성령께서 회개의 영으로 임하여 주셔서, 다윗처럼

구원의 즐거움회복되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주님을 섬기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서

구원해 주신 주님께 찬양하며 영생복락누리시기 바랍니다. (아 멘)

다같이 일어나서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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