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신세를 지자 (눅 7:36-50, 창 28:18-22)
인간은 하나님의 신세를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신세를 진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에게 신세 지고, 빚지는 자들을 좋아하신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사람과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보답하려는 두 종류의 사람들 뿐이다. 사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 외에는 필요 없다.
우리는 본래 멸망 받을 죄인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신세를 힘입고,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다.
(롬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다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성도들은 다 주님께 빚진 자들이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7장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 나온다.
이 여자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으로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마귀의 노예가 되어 괴로움과 번뇌 속에서 살았던 불쌍한 여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일곱 귀신으로부터 해방받아,
참 자유자가 되어 모든 것이 변했고, 구원받아 새 사람이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 정말 비참한 여인이었으나,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이 여인은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께 가장 큰 신세를 진 사람이다.
만일 막달라 마리아가 그 인생 가운데서 예수님을 못 만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평생 귀신에 붙들려 살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예수님께 큰 신세를 입은 후에, 그 은혜에 고마워 하는 가운데,
어느 날,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오신 것을 알고, 가만히 주님께로 가다와,
그 발 앞에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우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던 것이다.
이런 섬김은 막달라 마리아가 지난 날에 받은 은혜와 신세가 너무 크고, 감사해서
자신에게 있던 정말 귀한 옥합 향류를 주님께 부으며 봉사했던 것이다.
이것은 교회 안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즉, 교회 안에는 은혜를 받고자 하거나,
받은 은혜 고마워 보답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창 28장) 야곱이 형<에서>의 칼을 피하여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도망가던 중에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서원기도를 한다.
“하나님!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이 말은, 제가 이렇게 신세를 지겠사오니, 그렇게 하시오면)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보답하며 살겠습니다고 서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어떠한 인물도 하나님이 쓰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신세를 지게하고,
그 신세를 보답하며, 일생을 주님을 위해 살게 하신다.
(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제일 먼저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셨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숭배 동네이다. 그래서 그 곳을 떠나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를 신앙촌으로 만드시고,
주님이 그 곳에 오실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먼저 빚을 지게 한 후에 쓰실려고 본토 친척 집을 떠나라는 것이다.
본토 친척집을 떠난 아브라함은 이제는 의지할 곳이 없다.
그는 오직 하나님 한 분외에는 의지할 대상이 없다.
하나님께 신세를 지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떠나게 하신 것은
나에게 신세지고, 내가 공급하는 힘으로 살아라 하는 말이다.
나는 정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세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쓰신다.
그러나 아직도 내 힘으로 해 보려고 하는 사람은 온전히 쓰임 받지 못 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날 도울 자가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다.
(예화) 우리나라에 한경직 목사님, 김창인 목사님, 조용기 목사님....
그들은 모두 다 폐병에 걸려서 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 ! 제발 저를 살려만 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주님을 위해서 일생을 받치겠습니다하며 하나님께 신세를 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고 모두 다 주님이 귀히 쓰시는 종들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주님 앞에 쓰임을 받고 내 아버지의 심정을 잘 알기 위해서 :
우리에게 신세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더 큰 은혜를 입어야 한다.
(예화) 내가 고등학생 때 우리 교회 고신렬장로님의 간증을 들었다.
그는 육군대령 출신이다. 그 분이 6.25 전쟁 때 완전히 포위 당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께 신세지기를 원했다.
“하나님 ! 살려만 주십시오. 내가 여기서 살아나가면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나이다.”
그가 기도하는 중에 큰 빛을 보게 되었고, 그 빛을 따라 나왔더니, 무사히 포위망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고 교회에서 간증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가 극적으로 살아 나와서,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믿음의 일군으로 사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코너로 몰아넣기도 하시고, 죽을 자리까지 몰아치기도 하신다.
심한 불치병에 걸리게도 하신다. 고난 속에 살게 하신다.
그리고 그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게 만들고
“하나님께 신세를 지겠습니다” “주여 도와 주세요, 살려 주세요” 라고 부르짖어 기도로
강청(强請)하게 한 후에, 살려 주시고, 헌신케 하신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사용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세를 지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나 신앙의 선배들을 보십시오.
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철저하게 신세를 진 사람들이다.
하나님께 철저히 신세를 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신앙 생활과,
신세져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다르다.
(예화) <한나>라는 여인이 있었다. 자식이 없어 늘 괴로워하며 살았다.
이제 그녀는 하나님께 신세 지기를 원했다.
(삼상 1: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께 신세지기를 원하는 한나의 기도였다.
(예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왜 애굽의 종살이를 살게 하셨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다른 사람이 국토가 없을 때 ,택한 백성은 국토가 있고,
다른 사람은 굶을 때 양식이 있고, 다른 나라는 전쟁이 있을 때 평화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어떻게 하나님이 간섭하는 나라가 종살이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노예 살이에서 이스라엘은 민족이 시작된다.
노예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해방될 길이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노릇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우리를 이 종의 자리에서 자유케 하소서. 하나님 외에는 구원 할 자가 없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 신세를 입자.
우리를 구원해 주시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백성으로 만드시려고, 종살이를 시킨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신세를 지고 애굽에서 나왔을 때 홍해가 가로 놓였다.
또 다시, 하나님의 신세를 져야 한다. 광야 길을 가게 되었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과 기술이 필요 없는 곳이다.
하나님의 신세를 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만나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 광야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신세지는 백성으로 몰아가신 것이다.
그리고는 그 백성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 신세를 지기 원치 않는 사람은 하나님도 필요치 않는다.
나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자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귀히 쓰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자기에게 신세를 지게하고 나서, 그 신세를 갚도록 하고 보답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심정을 잘 알아야 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제일 모자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체면 차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체면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세를 져야 한다.
염치 불구하고 신세져야 한다.
세상 사람은 남의 빚지기 싫어하고 남의 도움 받기를 싫어한다.
세상에서는 독립심이 강한 사람을 칭찬 할 찌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 빚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 앞에 신세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모자라는 사람이 없다.
내 힘과 내 경우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종종 있다.
(예화) 폐암으로 죽어가는 젊은이가 있었다.
예수 믿는 형이 편지를 썼다. 아우야 ! 예수를 믿어라.
아니요. 형님! 나중에 믿겠소이다.
어떻게 이런 꼴로 하나님께 나가겠습니까?
이 동생은 자신의 힘과 내 노력으로 하나님께 떳떳이 나갈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경우과 예절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려고 한다.
그러나 그 인간의 경우와 예절을 가지고 갈 곳은 지옥 밖에 없다.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경우가 바른 사람은 예수 못 믿는다.
나는 먹보다도 더 검은 죄인인데 무슨 면목으로 천당에 가겠다는 겁니까?라고 말한다.
아주 예의 바르고, 경우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경우가 바른 사람이라면 자기 경우와 체면을 가지고 지옥 밖에 갈 곳이 없다.
이 세상에서는 경우 바른 사람을 좋아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마치 예수 믿는 사람은 경우가 없고, 뻔뻔스러운 사람이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경우가 바른 사람 인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 바른 경우와 체면을 가지고 갈 곳은 지옥 밖에 없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체면을 버리고, 경우를 버리고, 뻔뻔스럽지만, 체면 불구하고,
“주여, 나는 이런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죄인을 받아 주소서” 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무슨 일이든지 체면 불구하고, 하나님께 신세를 지고, 도와달라고 하는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더해 주시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게 해 주신다.
체면 불구하고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는 구원을 받았다.
체면 불구하고 요단강에서 7번 목욕을 한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 고침을 받았다.
염치 불구하고 큰 소리로 주님을 불렀던 소경 바디메오는 눈을 뜨게 되었다.
경우를 따지지 아니하고 지붕을 뜯어 내린 중풍병자와 그 친구는 고침을 받았다.
체면 불구하고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요청하십시오.
염치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세를 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신세지게 하고 싶어 하신다.
내게 와서 신세지라는 것이다. 도와달라고 애청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뭐가 부끄럽습니까?
자식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신세 좀 지기로 서니, 뭐가 그리 부끄럽다는 것인가?
나이와 상관없이 신세를 지라는 것입니다.
뻔뻔스럽게 구하시고 신세 지십시오.
(예) 탕자가 체면무릎쓰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체면이 있지 어떻게 돌아가?
그렇게 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예화) 신학교에 가면 맨 하나님께 신세진 자들이다.
천당에 가면 하나님께 신세를 지고 빚진자들이 다 모여서 그 신세를 감사해서
찬양하는 곳이 천국이다.
하나님께 신세 질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쓰임 받기 전에 먼저 주님께 신세를 입어야 한다.
주님께 빚질 줄 알아야 한다.
목회도, 사업도, 공부도... 나 혼자 힘으로 할 때 그 사람은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세를 입고 나가고자 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벌써 하나님께 크게 빚진 자들이다.
(결 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신세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발 내게로 와서 내 신세를 힘입고 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시면 먼저 빚진 자가 되라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
처럼 많이 탕감을 받았다는 말은 많이 신세를 졌다는 말이다.
많은 신세를 입은 줄을 아는 사람은 많이 사랑하게 되어있다.
하나님께 더 크게 신세 지고, 그 신세에 감사하고 보답하며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께 신세를 지며 삽시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좀 주세요.
간청하던 가나안 여인처럼, 하나님께 신세지지를 원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절대로
멸시치 않으시고, 신세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민 6:25) 하나님은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느니라.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예화) 최수동씨는 해병대 월남전 출신이다.
월남전에서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기고 살아왔다.
교회 집사이지만 가짜 신자였다.
1982년 39세 때,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 감독으로 있었다.
밤마다 술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중장비 사고로 먼저 왼쪽 다리 떨어져 나가고, 다시 오른 쪽 다리도 잃었다.
하나님, 진짜 살아계시면 살려 주세요.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두 다리 잃고 여러 번 자살 시도했다. 9번 수술을 했다.
목 발없이 걸을 수 있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다.
마음에 평안이 왔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족으로 걷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신세 지고 지은 복음성가 가사가 있다.
“♪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이 복음성가는 가사마다 본인의 간증이 들어 있다.
(1절) 자신의 죄악된 과거의 삶을 생각하면서 썼고,
(2절) 탕자를 살려주신 자신을 생각하면서 썼고,
(3절)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겠다는 결단이다.
하나님께 많은 은혜, 많은 신세를 지고, 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많은 신세를 지고 사는 사람이 복 받은 인생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복된 인생으로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 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