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고로다. (욘 1:1-16)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과식해서 소화 불량이 일어난 것이고, 불이 났으니 연기가 나고,
잘못했으니 채찍을 맞는 것이고,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인을 부정하려고 하면, 치료도 없고, 문제 해결도 없다.
원인을 정확하게 인정하지 않는 한, 같은 문제로 같은 고난은 반복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근본 원인 치료없이 악순환(惡循環)은 계속 되고,
원인을 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고치지 않는 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문제가 사람인가? 가난인지? 교육의 문제인지? 정치의 문제인지?
도덕적 양심의 문제인지? 아니면, 보다 중요한 신앙적인 문제인지?
즉, 하나님과의 문제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 본문은 역사적 사건이다.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다시스로 가던 배가 있었다.
그런데 돌연히 큰 풍랑을 만난다.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되었다. (4절 하)
선원들은 풍랑을 이겨보려고, 온갖 방법과 노력과 기술을 동원해 보았다.
그러나, 이 풍랑은 경제 문제도 아니고, 기술 문제도 아니었다.
(7절) 그들이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는지을 알아보자고 했다.
(잠 16:33)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그래서 제비를 뽑았는데, 제비가 요나에게 당하게 되었다. (7절 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풍랑을 만난 사건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여 주고,
무엇인가를 말씀하려 하심을 깨달을 수 있다.
문제의 해결이 인간적인 노력으로 헛수고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문제가 뭐냐?
직선적으로 말하면, 죄 때문이다. 풍랑을 만난 것은 죄 때문이었다.
나타나지 않은 죄, 감추어진 사건으로 그 동안 이 배는 파선 직전까지 놓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죄 문제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죄악이 주장하는 배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개인이든지, 가정이든지, 국가이든지... 문제의 최후 요인(要因)인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해결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도 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큰 여리고성을 간단하게 정복하고, 이스라엘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에 치솟을 정도였다. 이 여세를 몰고 조그마한 성(城), 아이성을 쳐 들어갔는데,
참패(慘敗)하고 말았다.
이 때, 여호수아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수 7:7-13)
이스라엘이 아이성 사람들 앞에서 참패하게 된 요인은 :
무기 문제도 아니고, 전략 문제도 아니고, 사기(士氣) 문제도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아간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얼마나 큰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보여 준다.
니느웨성은 요나가 기뻐하지 않는 성이다.
원수의 나라이다. 니느웨가 그 죄로 멸망 직전에 있었다.
이 때에 40일 동안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
하나님은 요나를 불러서 선지자로, 선교사로 파송하신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성으로 가기 싫어했다.
그 이유는 이방 백성 니느웨가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방 백성이 이스라엘과 똑같은 대우 받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사악한 니느웨 성에 들어가기가 무섭고 겁에 질려 가기 싫었다.
가장, 큰 이유는 원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성은 40일이 지나면 스스로 망할 것이다.
니느웨 성이 망하기를 바라는 요나에게는 다 된 일에 내가 왜 가나? 하고
도망가는 길이었다. 불순종하고 도망가는 요나.
그 때, 요나는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다.
“마침” 이라는 말이 아이러니칼하게 여겨진다.
이제 큰 풍랑을 만난 배에서, 풍랑의 원인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은 애를 썼다.
그러나 그 원인의 괴수는 배 밑창에 내려가 잠을 자고 있었다.
모르기는 몰라도, 피곤해서가 아닐 것이다. 일부러 눈을 감은 것 같다.
참아 눈 뜨고, 이 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요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깨웠다.
흉용(洶湧)한 파도가 자기 때문인 줄을 자각(自覺)케 하셨다.
그래서, 12절에 요나가 대답한다.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 내가 아노라”
★ 우리의 고민은 여기 있다.
아무도 나 때문이라는 사람은 없다.
실패는 사생아라는 말이 있다.
안 될 일에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11절) 사람들이 요나에게 묻는다.
“나를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12절)
여러분!
이런 회개(悔改)와 이런 참회(懺悔)가 참으로 아쉽습니다.
요나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시요”라고 한 것은 회개의 철저함을 보여준다.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참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바다에 던지워져도, 결국 자기는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가는 것 밖에
다른 것이 없음을 믿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이제 요나는 자기가 바다에 던지워져도 하나님께서 살리실 수 있음을 믿었다.
(잠 28:13)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느니라.
(시 51:17)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어떤 공동체(가정, 교회, 회사, 국가)에서든지,
어떤 좋은 일이 생기면, 나 때문에 잘 된 거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나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 죄는 5단계로 깊어 간다고 한다.
① 처음에 죄를 짓는다.
② 그 죄를 계속 반복하는 죄가 있다.
③ 죄를 정당화하는 죄가 있다.
④ 죄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죄가 있다.
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죄를 더한다.
이렇게 5차원의 죄로 깊이 빠져가면서, 풍랑의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누가 주인인가? 책임지려는 사람이 주인이다.
주인은 언제나 책임지려고 한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은 주인이 될 수 없다.
의자가 말하지 않고, 책임지는 자가 주인이고,
위치가 주인이 아니고, 책임을 느끼는 자가 주인이다.
(예) 우리 아이가 잘못된 것은 나 때문이요 라고 말하는 자가 부모이다.
그 아이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참으로 내 탓이라는 자가 자유인이다.
책임진 주인만이 자유할 수 있다.
책임이 없는 한, 영원히 자유할 수 없다.
언제나 문제의 열쇠가 나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문제가 나 때문임을 알게 될 때, 풍랑은 잠잠해 지고,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문제가 있을 때, 이유가 뭐냐? 내 죄 때문이다.
나를 진실하게 하기 위해서 이 사건이 있게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예화) 서울의 어느 교회가 다투고 분쟁이 생겼다.
모두 나 때문이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교회가 분쟁된 것은 “나 때문입니다” 라고
저마다 고백하며, 참회할 때 싸움은 끝날 것이다.
[요나]는 "요~ 나(我)" 이다.
만일, 무슨, 무슨 문제가 생겼으면, 내 탓이로소이다.
교회가 어지럽고, 시끄럽다면, 내 탓이로소이다.
오늘 아무개 성도가 교회 못 나왔다. 그것은 내 탓이로소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 아무개 때문이다. 누구 누구 때문이다.
목사 때문에, 장로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이렇게 말하면 해결이 안 된다.
(눅 13:4)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
하나님은 시간, 시간, 사건,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고 계신다.
요나서를 통해서, 특별히 풍랑 만난 파선 직전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양보될 수 없는 하나님의 멧세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가 탄 배는 큰 배였다.
그러니까, 그 배 안에는 요나보다 더 큰 죄인들도 많이 있었다.
살인, 강도, 도둑놈, 우상숭배자 등등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 “요나” 한 사람에게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도망가는 요나, 한 사람 때문에 풍랑이 있었던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들의 죄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하게 된 것이다.
갖가지 죄인들이 있어도, 문제는 요나 때문에, 배가 풍랑을 만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요나가 탄 배는 흔들려야만 했다.
(결 론)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원인을 부정하면, 치료도 없고, 문제 해결도 없다.
풍랑의 원인은 요나의 죄 때문이었다.
요나는 니느웨성을 미워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백성들을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요나를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요나가 불순종하니까, 풍랑은 불가피(不可避)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때로는 풍랑을 주실 때도 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처럼 보여도, 참으로 잘하신 것이다.
내 뜻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필요하니까, 하신 것이고,
내 생각에는 납득이 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사랑이었다.
(사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대상 21:17) 다윗이 통회하여 가로되,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다윗은 우리 민족이 재앙 받는 것은 나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명하여 인구 조사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치소서, 죄인은 나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내 속에 숨어 있는 요∼ 나(我)
깊이 잠든 요나 같은 죄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죄를 회개하고 뽑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 자복할 때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아픔은 있으나 생각이 없고,
고통은 있으나 원인을 생각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문제는 나 때문인 줄 알고, 하나님께 자복하고,
나를 바다 속에 던질 때, 풍랑은 멈출 것이다.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 내가 아노라. (12절)
이러한 자백이 있을 때, 여기에 구원이 있고 주의 은혜가 임할 것이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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