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찌끼. (고전 4:6-13)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귀한 이름과 별명들이 많다.
예를 들면 :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사신, 하나님의 성려의 전, 양자 됨, 등등
이런 말들은 얼마나 귀하고 우리의 자긍심(自矜心)을 일으켜 주는 말들인가?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정반대의 불명예스런 별명을 붙여 주고 있다.
1)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이름 : (13절)
(13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9절)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했다
또한, 9절에는 "미말"에 두었고 세상의 "구경거리'(조롱거리)가 되었노라고 했다.
무엇이 세상의 더러운 것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예) 세상의 범죄 조직이 더럽습니까?
죄악의 추한 모습, 살인, 강도, 모함이 더럽습니까?
마약쟁이가 더 더럽습니까?
문둥병 환자가 더럽습니까?
시궁창이 더러운 것입니까?
이 세상에 참으로 더러운 것이 많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
인간의 마음이 가장 부패하고 더럽다.
그러면, 인간이 더 더러운가? 아니면 마귀가 더 더러운가?
사도 바울은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이 되었도다. 고 했다.
더러운 것이란? 쓰레기장의 폐물이다.
쓰레기 찌꺼기. 한 여름에 냄새나는 오물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귀한 종이요,
하나님의 사도인데 "더러운 것" 이라고 했다.
게다가 불명예와 치욕을 더해서 "만물의 찌끼"가 되었노라고 했다.
성도 여러분!
찌끼를 아십니까?
설거지통의 찌끼, 찌꺼기, 몸의 떼와 같은 것이다.
찌끼는 야망도, 질투도, 명예도, 불평도, 다툴 것도, 샘낼 것도,
가진 것도 없다. 자존심도 없다.
그러므로 걱정도 없고, 더 이상의 고통도 없다.
왜냐하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찌끼는 더 이상, 무시 당할 것도, 밟힐 것도 없다.
찌찌보다 더 낮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끔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아도, 찌끼보다는 대우받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것, 가장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존재가 무엇인가?
그것은 찌끼이다. 더러운 오물이다.
(9절) 이하 계속해서 너희와 우리를 비교하고 있다.
우리는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고,
(미말은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해 있는 비천한 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구경거리(조롱거리)가 되었고,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미련하되 너희는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우리는 비천하되 너희는 존귀하고,
또한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 없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가 되었노라고 했다.
이것보다 더 낮아질 수 있을까요?
만물의 찌끼는 더 이상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너희가 위대하냐? 우리는 찌끼다.
너희는 위대하고 우리는 '만물의 찌끼'이다는 말이다.
(고후 11:23-28)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사도는 이처럼 낮아지고 비참해졌다.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로다.
(엡 3:18) 나는 성도 중에 가장 작은 자로다.
(고전15:8) 만삭되지 못한 자로다.
사도 중에서 ➜ 성도로, 성도에서 ➜ 인간 중에서도 팔삭둥이로 :
바울은 이렇게 자기를 낮추었다.
고린도 교회는 자유가 없었다. 모두가 왕 노릇 하려 했다.
다른 사람을 가난하게 하는 자들뿐이다.
그러나 사도는 다른 사람을 부요케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해 졌고,
다른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만물의 찌끼가 되었다는 것이다.
더 낮아질 수 없는 자리가 찌끼의 자리이다.
(예화) 휴지통은 이렇게 말한다. “휴지는 저에게 주세요.”
휴지란? 코 푼 종이, 화장실에서 밑 딲은 종이, 쓰레기...
이런 모든 더럽고, 버리고 싶은 쓰레기는 나에게 주세요.
휴지통은 주변을 깨끗케하기 위하여 더러운 모든 쓰레기를 담는다.
(예화) 링컨 대통령은 자기 경쟁자가 링컨을 욕하니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 사람 볼 줄 아는 구먼...”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말, 링컨은 훌륭한 인격자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만물의 찌끼이다.
2) 왜 하나님이 우리를 그처럼 낮추시는가?
그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이다.
사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찌끼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을 부요케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하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스스로 낮아지게 된 것이다.
마치, 그토록 낮아지셔서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처럼,
사도는 만물의 찌끼처럼 낮아지고 비참해졌다.
바울이 못 배웠나요? 가문이 나쁘나요?
무엇이 부족해서 이렇게 "찌끼"처럼 되었나요?
세상은 바울을 미워했어도, 바울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찌끼가 된 것이다.
바울은 세상에 대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다.
우리가 주의 일(목회)을 하거나, 전도하다보면 마음이 상하고, 아니꼬울 때도 있다.
그 때마다 바울처럼 “만물의 찌끼” 가 됩시다.
찌끼는 '자존심"도 없다. 아니꼬울 수도 없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찌끼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길 수 있다.
(예화) 시카고에서 목회하던 한분 목사님이 계셨다. (실화, 간증을 직접 들었다.)
목회하던 중에 한 성도가 목사님에게 오해하여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어,
목사님이 그 가정 아파트에 심방을 가셨다.
그런데, 문제는 문도 안 열어 주는 것이다.
대문에서 10번 쫓겨났다고 한다. 시카고 겨울은 매우 춥다.
밖에서 1시간 이상을 서서 기다리면서 문 열어 주기를 바랬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목회자가 [ 찌끼] 가 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
목사가 왜 이래야만 합니까?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반기지 않아도, 자존심을 버리고,
찾아가고 또 찾아간 것이다. 찌끼는 자존심도 없다.
3) 이 방법이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이다.
누가 이처럼 찌끼가 되셨습니까?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더러운 나를 위하여 가장 거룩하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스스로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라고 생각했다.
다윗은 벌레만도 못한 자라고 고백했고, 야곱은 지렁이 같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요?
그래야만, 세상의 어떤 수모와 모욕과 비방과 핍박에도 참고,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모든 자존심을 삼키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 론)
오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 뜻을 알게 되면 우리는 은혜가 되고,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내가 스스로 낮아져서 “만물의 찌끼”로 사는 성도는 :
하나님이 높이시고, 위로해 주시고 더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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