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로 피하나이다. (시편 7:1-17)
(주는 나의 피난처)
시편 7편은 본문 안에 역사적 배경과 상황이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표제]에 나와 있는 대로, 다윗의 쓴 것인데,
다윗이 베냐민 사람,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호소하는 기도 시이다.
사울 왕이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그러니까, 구시와 사울 왕이 같은 지파 사람으로서,
다윗이 사울 왕에게 미움과 핍박 받아, 도주하고 있을 때,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호소하며 아뢰었던 [기도 시]이다.
(1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환난과 곤경에 빠졌을 때, 주님께로 피해야 한다.
♬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시편 61: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시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로 피해야 한다.
다윗과 사울왕 누구에게 정당성이 있는가?
서로 서로 자신이 옳다고 하겠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는 이는 하나님 뿐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로 피한 후에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고 있다.
(8절)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하나님은 만민을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다윗은 자기 나름대로 의뢰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정직함이다.
(10절)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정직함을 살피시고 구원의 방패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나는 비록 연약하고, 허물 많은 죄인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히 행하려고 했음을 하나님이 하감하시고,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사울이 왕의 권력으로 나를 잡아 멸하려 하지만,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어 지켜 주실 것을 믿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정직한 자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담대히 피하여 구원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심판을 받는가? 아니면 안 받는가? 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
구원받은 백성이니 멸망에 이르는 즉, 지옥에 떨어지는 심판은 받지 않는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분명히,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다른 심판이 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멸망 심판은 받지 않고,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결정하는
상급 심판이 있다.
그러니까, 두 종류의 심판이 있다.
크고 흰 백보좌 심판과 그리스도의 심판이 있다.
이 두 가지 심판은 인류의 종말에 이루어지게 될 심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에 이루어질 종말론적인 심판이다.
종말론적인 심판, 언제 임할는지 모르는 막연한 종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그렇게 떠밀려 있기만 한 것인가? 아니다.
심판이 정말 있는가? 있다고 해도 징벌이 즉각적으로 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악행하고 죄 짓는 일에 담대하고, 강퍅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종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현세에서도 그 심판이 임하고 진행될 때가 있다.
분명하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어느 날, 종말의 날에 :
악인은 영벌에 처하고, 의인에게는 칭찬과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심판하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치, 종말의 서곡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인은 칭찬과 상급으로 갚아주시고, 악인에게는 징벌과 고통의 심판으로 임한다.
궁극적인 심판이 종말에 분명히 있지만, 먼 미래에 있다고 해서,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담대하게 악행하면 안 될 것은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심판과 갚음이 실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고 악행하는 자들에 대항 경고가 있다.
(11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얼마나 무서운 경고의 말씀인가?
그러므로, 판단하시는 심판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고집부리고, 회개치 아니하면 심판의 칼을 갈으심이여,
활은 이미 당기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다윗이 사울 왕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정직함과 의롭게 살았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지만,
사실, 어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
“나는 당당합니다. 얼마든지 심판하려면 해 보세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롬 3:10)
아무리 내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할 찌라도,
그렇게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과 구속의 은총을 간구할 뿐이다.
(시 26:1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다윗은 내가 완전하게 행했으니, 심판하려면 해 보세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완전하게 행하고, 살았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과 구속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윗은 알았다.
우리는 아무리 정직하게 살았다해도 얼마나 흉허물이 많은지 모른다.
그러므로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구속의 은혜가 필요한 자들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 론)
환난과 시험도 많고,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 살고 있으니,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방패로 삼고,
날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구속의 은혜를 간구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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