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5일 화요일

탕자 비유에 담긴 진리 / (눅 15:11-24) (인간의 행복은 어디 있는가?)

 탕자 비유에 담긴 진리 (눅 15:11-24)

(인간의 행복은 어디 있는가?)

오늘 본문은 저와 여러분이 잘 아는 “탕자 비유”이다.

탕자 비유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비유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의 핵심을 가장 잘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해 주신,

하나의 이야기이며, 주님의 유명한 비유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탕자 비유를 올바로 깨닫는다면 성경의 진리, 기독교의 복음을 깨닫게 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어느 가정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버지는 굉장한 부자요,

지체 높으신 분이시다. 너무 너무 잘 산다. 하인품군도 많은 부잣집이다.

좋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부잣집에서 부족함이 없이 잘 살았으니 얼마나 행복한 가정입니까?

너무 너무 행복한 가정이다.

그러므로 이런 가정에 태어났다는 것이 감사할 일이고, 부요한 집에서 살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할 텐데 본문에 나오는 탕자는 가장 행복한 집에서 살면서도 자기가 복된 가정에서

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예) 마치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미국이 좋은 줄 모른다.

세상이 다 이런 줄 안다.

탕자는 그렇게 좋은 집에서 좋은 부모님에게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이 큰 불행원인이요, 문젯점이다.

오늘날 인간들이 타락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불감증에 걸려서 그렇다.

마치 문둥병에 걸리면 불감증에 걸려 감각이 없다.

불에 타도 모른다. 손가락이 짤라져도 모른다.

이와같이 영적으로도 불감증(不感症)에 걸리면 [3가지]를 모른다.

① 죄를 범하면서도 죄(罪)인 줄을 모른다.

를 지으면서도 망할 줄 모른다.

② 말씀에 대해서도 불감증이 나타난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깨달음이 없다.

말씀을 들으면 뭐합니까? 깨달아야지요.

또, 깨달으면 뭐합니까? 실천(實踐)해야지요

영적 불감증에 걸리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것이 인 줄 모른다.

하나님께서 내게 얼마나 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데도 그것이 은혜

축복인 줄 모르고 감사할 줄을 모른다.

이것이 영적인 불감증(不感症) 환자이다.

오늘 본문의 탕자가 이와 같이 불감증 환자와 같은 사람이다.

그렇게 좋은 집에서 살면 그저 만족하고 기뻐하고 효도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탕자는 자기가 사는 환경이 복된 환경인 줄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엉뚱한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안 계신 먼 나라에 가서 내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그거, 마귀가 준 생각이다.

그래서 어느 날 탕자는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미리 달라고 했다.

그래 가지고,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았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는 이야기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거지요.

그렇게 실컨,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탕자처럼 살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갖고 있던 재산 다 없어지죠?

그렇게 먹고 마시고 허랑방탕 하니, 재산이 남아날 리가 있겠습니까?

재산 다 없어졌다.

더군다나 그 나라에 흉년(凶年)이 들어, 먹을 것도 없다.

친구들도 다 떨어졌다. 돈 떨어지니, 친구 떨어져, 다 떨어졌다.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해서 아무거라도 일해야 하는 데 누가 일거리를 주어야지요?

그러다가 돼지치는 집에 가서 돼지를 치면서 돼지와 같은 생활을 했다.

그런데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실컨 먹고 싶었는데,

그것도 없어서 돼지보다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

나중에는 굶어 죽게 되니까, 할 수 없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돌아왔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영접해 주셔서 다시 회복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 이 탕자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진리가 있는데 이 진리가 매우 중요하다.

(1) 인생의 행복은 나의 욕망을 다 충족시켜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욕망이 있다.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고, 어떤 사람은 박사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고,

어떤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욕망,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처녀들은 좋은 신랑 만나서 잘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각자의 욕망이 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꼬? 나는 얼마나 좋을꼬?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

그래서, 그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애쓰고, 얼마나 많은 노력하고,

얼마나 많이 수고합니까?

그런데 이 탕자 비유 말씀에서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욕망을 다 이루었다고 해서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 (전도서 2:3-8)을 찾아보자.

솔로몬 왕도 이 탕자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전도서는 솔로몬이 나이가 많아 가지고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쓴 글이다.

솔로몬은 내가 어떻게 하면 육체의 낙을 누리면서 살아볼까? 생각했다.

그래서 솔로몬이 자기의 육신의 쾌락이 될 만한 것은 다 해 본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누가 다 해보았습니까?

솔로몬 왕이 다 해 본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갖고 싶어하는 것도 솔로몬은 다 해 보고 또, 가져 보았다.

(왕상 11:3) 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모두 합치면 1,000명이다. 얼굴이나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있을까?

매일 여인을 바꾸어 만나도, 2-3년 걸린다. 무슨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전 2: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11절)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솔로몬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먹어보고, 다 가져보고, 보고 싶은 대로 다 보고,

행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다 보았는데 그 결과가 무엇이라고 했나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다 해보니까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것이다.

(17절) 쾌락이 될 만한 것은 다 추구(追求)했는데 해 보니까,

내게 괴로움이요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이상하지요?

쾌락이 좋아서 쾌락을 추구했는데 결론이 뭐냐?

괴로움이요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그래서 사는 것을 한 하였노라고 했다.

그러니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보고 싶은 대로 다 보고,

가지고 싶은 대로 다 가지고, 해 보고 싶은 대로 다 해 본, 결론이 뭐지요?

괴롭기만 하고, 죽고 싶은 마음 밖에 없는 거래요.

이 말은 이 세상 욕망은 아무리, 아무리 추구해도 만족이 없고 행복이 없다는 말이다.

박사 학위 10개가 아니라, 100개를 가져도 박사학위가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합니까? 재벌부인이 하는 말이 자기는 생과부랍니다.

남들이 볼 때 행복한 것 같은데, 본인은 No,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하게 보이는 것행복한 것은 다른 것이다.

대통령에게 물어보세요. 당신 지금 행복합니까?

신문을 보면서 골치 아프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어떤 여자와 살면 행복할꼬? 천만에요.

솔로몬이 얼마나 지혜가 많은 사람인데 여자를 얼마나 잘 골랐겠어요?

여자를 천명이나 골라 살아봤는데, 일천 여인 가운데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여자하고 결혼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욕망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전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This is the whole duty of man.

(2) 인생의 모든 불행로부터 온다는 교훈이다.

인생의 불행이 무식하고 못 배워서 오는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가난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환경이 나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알고 보면 모든 불행의 원인은 에 있다.

인간의 불행하게 되는 것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부요해도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 행복해 질 수 없다.

죄악으로 가득 찬 가정은 때문에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학박사 부부라 해도 가운데 살면 반드시 행복이 깨어지고 만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가운데 사는 대통령행복할 리가 없다.

높은 지위도 소용없고, 권력도 소용없고, 학위도 소용없다.

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고, 불행의 원인이다.

오늘 본문의 부잣집 아들 탕자 돼지우리까지 들어가고 거의 굶어 죽게 되었습니까?

알고 보면 를 짓게 되어 그렇습니다.

무슨 인가? 아버지의 간섭이 싫어서 아버지를 떠난 죄이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불행은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간섭이 싫어서,

내 마음대로 살아보겠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그것이 원죄(原罪)이다.

그래서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저버리는 죄이다. 이 보다 더 큰 죄는 없다.

우리가 때로는 불의한 짓을 하고, 악한 짓도 하지만,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는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지는 말기 바랍니다.

아무리 가 많아도 하나님만 떠나지 않고, 하나님만 저버리지 않으면 소망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는 소망이 없다.

탕자의 문제는 좀 잘못한 것이 있어도 집 안에만 있으면 괜찮고,

집 안에만 있었으면 소망이 있는데 그가 아버지 집을 떠났어요.

멀리 멀리 떠났어요. 그리고 허랑방탕했어요.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와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마귀의 종이 되었고, 망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탕자는 자살하지 않고 나중에라도 돌아왔길래 다행이지,

자살했거나, 안 돌아왔으면 탕자는 영원히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 !

아무리 어려워도 자살하지 마세요.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사실을 다 아시죠?

자살이 사는 길이 아니다. 피할 길도 아니다. 영원한 지옥에 가는 길이다.

또한 자살반항이다. 하나님께 대한 반항이요, 부모님께 대한 반항이요,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살인 행위이다.

탕자는 아버지의 간섭이 싫어서 아버지 품을 떠나서 내 욕망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지으면서 살았다.

그 결과 돼지만도 못한 불행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3) 우리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으신가를 보여 준다.

본문에서 돌아온 탕자가 주인공이 아니다.

탕자의 아버지주인공이시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해 주신 것은 탕자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해주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죄가 많아도 아무리 악독한 죄를 짓고

세상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못된 죄인이라 할 찌라도,

지금 이 시간, “아버지! 이 죄인이 왔습니다. 날 받아 주세요.” 하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만 하면 받아 주시고 영접해 주시는

참 좋으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 보다 넓고 넓어

성경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을 심으면 이 나오고, 을 심으면 이 나오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을 심으면 을 거두고, 을 심으면 을 거두게 하신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서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속상하게 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만 지으면서 살면 자연히 우리도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말이다.

저와 여러분이 바르게 살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 진노(震怒)하시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너무 너무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죄지은 인간들이 고통당하고 고생 할 때 :

"이 놈들아 잘 됐다. 죄 값으로 다 죽어라. 싸다 싸 망해라. 지옥이나 가라."

이러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가 잘못해서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너무 너무 마음이 아퍼 하시면서 “이제라도,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라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요엘 2:12)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이제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시는 참으로 인애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참 좋으신 아버지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눅 15:7)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겔18:23)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은 아무리 과거에 범한 죄가 많다할 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죄 가운데서

하고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 죄악 가운데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가운데서 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어떤 라도 이제라도 돌이키고, 이제라도 회개해서 이제라도 살게 되기를 기뻐하신다.

본문 (20절)에 보면, 탕자가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탕자가 돌아오니까 탕자 아버지는 아직도 상거가 먼데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끌어 안고 입을 맞추었다.

냄새나는 아들 더러운 자식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더 컸다.

진노삼키시는 아버지였다

과거의 에 대하여 하나도 묻지 않고, 목욕을 시켜라.

제일 좋은 옷을 입혀라. (영광의 회복)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아들 신분의 회복),

발에 을 신켜라. (가족으로 회복).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풍류와 춤을 추어라. 잔치하자고 하셨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에 진실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과거의 모든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으시고

무조건 받아 주시고,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무조건 회복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

(겔 18:21-22)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로 인하여 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이 시대는 컴퓨터가 많이 발달되어서 어떤 죄든지 그 죄가 컴퓨터에 다 입력되어서

언제나 따라 다닌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라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회개(悔改)만 하면, 한번도 죄를 안 지은 사람처럼 천국에서

깨끗한 세마포옷을 입고 서게 된다고 했다. 얼마나 큰 은혜인가?

오직 어린 양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해서 회개만 하면 된다.

(히 10: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컴퓨터에서 까맣게 Block 하고, Delete 키 한번 치면 다 없어지듯이,

저와 여러분이 이제라도 진실로 회개하고 탕자처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돌아와서

를 끊어버리고 살면,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는 하나님께서 [다∼ 용서하시고]

기억도 안 하시고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끝으로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

아버지는 용서하고 받아 주시고 기뻐하시는데,

탕자는 생각하기를 “나는 너무 뻔뻔스럽지 않은가? 너무 염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 그냥 저를 품군의 하나로 받아주세요 하면서,

아버지의 용서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대 믿고 받아들였다.

자격 없는 자를 자격자로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그 아버지의 사랑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탕자는 자격이 없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이 믿음이다.

뻔뻔스러운 것 같지만, 아버지의 사랑받아들이는 이것이 믿음이다.

(예화) 1892년 펜실베니아에서 실제(實際) 있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 후에도 귀중한 판례가 되었다고 한다.

우편물 강도와 살인죄로 사형언도 받은 조지 웰슨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사형집행 직전에 앤드류 잭슨 대통령특사령으로 사형집행 사면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람, 조지 웰슨은 특사령을 거부했다.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사령]이라도, 본인이 수락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판사: 존 마샬)

그래서 결국 사형 당했다.

특사령, 면죄부는 특별한 은혜이다. 사면(赦免)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특사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로 우리에게 내려졌다.

문제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내 것으로 효력이 있다.

받아들이고, 안 믿으면 무효(無效)가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은 이미 용서하셨고, 이미 특사령을 내려 주셨다 할 찌라도,

그 사면장(특사령)을 내가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 놀라운 은혜구원의 은총무효가 된다는 말이다.

탕자가 돌아온 것도 중요하지만, 용서해 주시는 아버지의 용서를 믿고

받아들임으로 자녀의 권세를 회복받고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용서사랑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돌아온 탕자의 믿음 !

여기에 구원이 있고, 새로운 영생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결 론)

오늘 이 설교를 보시거나, 들으신 저와 여러분,

그리고 이 CD를 듣고 계시는 형제, 자매 여러분들이여!

오늘 이 시간 탕자의 비유에 담긴 진리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으시고

돌아오기만 하면, 받아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기 바랍니다.

그래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주가 예비하신, 저 좋은 천국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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