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출 13:17-22, 고전 10:1-4)
오늘은 세례식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오늘은 세례와 연관하여서 다시 돌아가서도 안 되고,
돌아갈 수도 없는 곳에 대해서 말씀드리며 은혜받고자 합니다.
(예화) 우리나라 민담(民譚)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산길을 가던 나그네가 함정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 호랑이를 발견하였다.
호랑이는 나그네를 보자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구슬프게 흐느끼며 간구하는 호랑이가 불쌍하여 꺼내 주었다.
이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호랑이는 한숨을 돌리더니 나그네에게 뜻밖에 요구를 한다.
여러 날 동안 갇혀 있어서 너무나 시장하여 이제는 아사 직전에 있게 되었으니
할 수 없이 나그네를 잡아먹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나그네는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서 재판을 한 번 받아 보자고 했다. 소에게 갔다.
호랑이가 말하기를 내가 배가 고파서 이 사람을 잡아먹어야 하겠다고 했다.
나그네는 억울하다고 했다.
소가 판결하기를 “사람이 나쁘다.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실컷 부려먹고 나서 끝내는
잡아먹기 까지 하지 않는가?"
나그네와 호랑이는 다시 소나무에게 물어 보았다.
소나무도 역시 호랑이를 편을 들었다.
"사람들은 우리 소나무를 때리고 꺾고 자기네 마음대로 하다가 결국은 통째로 베어 버린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쁘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땅바닥에 덜썩 주저 앉았는데,
때마침 토끼가 한 마리 지나가더라는 것아다.
둘은 마지막으로 토끼에게 물어 보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이야기를 한 참 듣고 있던 토끼가 말하기를,
"호랑아 이 사람이 너를 구해주기 전에는 어떤 처지에 있었지?" 물었다.
"하나 하나 재현을 실제적으로 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호랑이가 대답하기를 저기 구덩이가 있지! 하면서 들어가서 이렇게 들어가 있었어!”
하면서 구덩이에 들어가서 토끼를 처다 보고 있었다.
마침내 토끼는 호랑이를 보고 판결을 내렸다.
"너는 거기서 고생 좀 하다가 죽어야 하겠다!"
이 민담은 우리에게 2가지 교훈을 준다.
① 하나는 은혜를 배신한 자, 은혜를 모르는 자는 자유도 누릴 권리가 없다는 것이고,
② 또 하나는 죽음의 자리에 또 다시 들어가는 호랑이의 어리석을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덩이 속의 죽음의 운명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어리석음이다.
그러니까, 다시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또 들어간 어리석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셔서 광야를 돌아서
가나안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이유가 있다.
(출13:17-18)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왜? 하나님께서 홍해 건너게 인도하셨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넘실거리는 홍해를 갈라서 물벽이 좌우로 생기게 하시고
바다 사이에 길을 내셔서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셨다.
그리고 곧 이어 뒤따라오던 애굽의 군대가 그 길로 들어왔을 때,
홍해의 물벽을 다시 허물어서 바닷 속에 그들을 수장해 버린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이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다시 돌아가서도 안 된다.
그렇습니다.
애굽은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될 곳이다.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것을 교훈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1)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은 세례를 의미한다. (고전 10:1-2)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지난 사건을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세례의 의미로 해석한다.
(고전10:1-2)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인도하여 굳이 홍해를 통과하게 하신 것은
애굽적인 것들을 다 죽게 만드신 것이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한다. 바로는 마귀를 상징한다.
애굽에 속해 있던 옛사람, 포로 되었던 노예 근성, 물질적인 생각, 이방적인 생각,
우상을 섬겼던 것들, 그 모든 것을 다 홍해에 수장해 버리고 새 사람, 새 마음으로
가나안을 향해서 가게하기 위하여 홍해를 통과시킨 것이다.
★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죄를 씻는다는 의미도 있고, 물 속에 잠긴다. 수장되었다.
나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하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을 늘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의 자리로 들어간 호랑이처럼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다시 돌아가서도 안 되는 애굽을 나와
홍해 바다를 건넌 존재들이다.
하나님이 열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심판하시고, 결국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함을 받고, 홍해 바다까지 건너온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이미 세례를 받았다.
결코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돔성이 멸망하게 될 때,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눅 9:62)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예화) 뉴질랜드 원주민 피지족이 있다.
동네 한 가운데 Killing Stone (죽음의 바위)가 있다.
우리나라 단두대와 같다.
죄 많은 죄인을 이 바위 위에 묶어 놓고, 머리를 짓눌러 죽인다.
얼마나 비참한가? 흐르는 피를 닦아내지 못하게 한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보여 주여줌으로 죄에 대한 경고를 준다.
그런데 선교사가 여기 원주민을 전도해서 예수 믿게 되면 세례 줄 때,
이 Killing Stone (죽음의 바위)에서 준다고 한다.
그것은 이 바위의 피를 보게 하고, 자, 옛 사람은 이렇게 죽었다고 하면서,
세례의 의미를 이렇게 가르쳐 준다고 한다.
이 선교 방법은 대표적인 케이스로 알려졌다.
그 문화권에 맞게 지혜롭게 대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능 대체(Functional Substitute)라고 한다.
그래서 옛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완전히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을 세례라고 설명한다.
(예화) 사람들은 부흥 사경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는다.
문제는 은혜받기 전의 모습으로 그대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면
은혜받았다고 하는 것이 쓸데없고, 아무 의미가 없다.
결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은혜를 헛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벧후 2:22)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것과 같다.
2) 자유를 잃은 노예상태로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애굽의 삶은 자유가 없는 비참한 노예의 삶이었다.
이제 구원받은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자이지,
마귀와 죄에 속한 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죄의 종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한가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죄라고 하면 도둑질이나, 거짓말, 시기, 욕심, 살인...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죄의 열매이지, 죄의 뿌리는 아니다.
(예) 감기에 걸리면 열이 오르고, 기침이 나오고, 콧물도 나온다.
이런 현상은 감기 바이러스의 증상이고, 열매이고,
콧물과 기침 자체가 감기는 아닌 것처럼,
살인, 강도, 간음, 거짓말... 등등은 죄의 열매이지, 죄의 뿌리가 아니다.
★ 그러면 죄의 열매를 맺게하는 죄의 뿌리(Original Sin)는 무엇인가?
그것을 원죄(原罪)라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스스로 하나님 노릇을 하려는 것이 가장 큰 죄이고, 죄의 뿌리가 된다.
사탄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되어
하나님 같이 되리라” 고 거짓으로 유혹했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 노릇하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 원죄로서 죄 중의 죄이다.
이 원죄로 인하여 죄의 열매, 자범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단의 특성은 무엇인가?
교주가 일어나서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이다.
정말, 그들이 하나님처럼 사랑과 선의 열매를 맺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다 악한 열매만 맺는다.
이단들을 보면 전부가 다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한다. 자신이 구원자라고 떠든다.
★ 정말,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이 되고, 내가 구원자가 되고, 물질이 하나님이 되고,
나의 경험과 실력과 능력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가장 큰 죄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이다.
홍해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속하여 애굽의 종이 되어,
애굽을 위하여 일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홍해 사건을 통하여 분명히 가르쳐 준다.
너희들의 구원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나안(천국)을 향하여
가는 거룩한 백성들이고, 새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 바벨탑의 허구성과 죄성은 무엇인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높은 탑을 쌓아서, 홍수를 면해 인간 스스로 자신들을
구원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망령된 태도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여 언어를 흩어지게 만드셨던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죄의 포로 된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사건을 통하여 바닷물에 잠겨 시체가 된 애굽인과
다시 돌아갈 수없는 애굽 땅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나안을 향하여 오직 전진하게 된 것이다.
3) 세상적인 옛 생활과 옛 습관으로 돌아가지 말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요일 2:15)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하나님 없는 사는 사탄적인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민족과 모세는 다시 닫혀진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애굽의 모든 생활과는 영원히 분리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바다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여행길의 고달픔과 애굽에 두고 온 집과 이웃을
그리워하며 후회하는 연약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홍해 바다가 다시 덮어짐으로 오직 가나안 땅으로 전진만 생각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부추와 마늘, 그리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애굽을 그리워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이것 때문에 광야에서 다 멸망 받았다.
신앙생활 승리는 옛 생활, 애급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다.
내 옛 사람은 세상에 매력을 느끼며,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이미 죽은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한번은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난 어거스틴이 지나가는데 창녀가 부른다.
그 때 어거스틴이 그냥 지나가면서 [어거스틴은 죽었느니라]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이다.
결코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
강패 김익두도 예수 믿고 다시 태어났다.
자기 스스로 부고장을 만들어 돌렸다. [부고장 : 김익두 사망함]
한번은 김익두가 시장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한 아주머니가 물바가지로
머리에 부었다. 그 때, 김익두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예수 믿어 옛 사람이 죽지 않았으면, 당신 오늘 죽었소.”
김유신 장군의 유명한 일화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기생집에 늘 다니는 것을 본 어머니가 가슴치는 것을 보고,
다시는 기생집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김유신이 졸고 있는 사이에 말이 습관대로 기생집에 갔을 때,
칼로 말 목을 칼로 쳐서 죽였다는 이야기이다.
비록 명마를 잃었지만, 그는 명예로운 삶, 귀한 이름을 후세에 남기었다.
죄를 지으면 그 죄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 8:34)
죄를 지으면 죄책에 시달리고, 형벌 의식에 매이고, 절망의 노예가 된다.
소유나 물질에 매여서도 안 된다.
인생을 양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보도록 해야 한다.
정욕에 매여 육체의 요구를 따라 썩어져 가는 불쌍한 심령이 되지 말아야 한다.
(결 론)
오늘 세례 받으시는 분들과 이미 세례를 받고 주님의 제자가 되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세례를 받음으로 죄 씻음을 받음과 동시에 옛사람도 함께 죽는 것이다.
애굽은 세상이고, 바로 왕은 사탄, 마귀의 상징이다.
죄악 된 애굽에서 나와 구원받아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가는 거룩한 백성이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노예가 아니고, 노예근성, 거지가 아니라 거지 근성,
막내 끼, 세상 끼, 무당 끼 이런 것이 문제다.
끼와 근성을 뽑아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문제는 홍해 바다를 건넜는데도, 아직도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게 하셨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바다를 건너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갈 생각도 해서도 안 된다.
세례의 의미는 죄를 씻는다는 의미도 있고,
물 속에 잠겨서, 나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하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을 늘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는 하늘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말고,
죄악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신앙 생활의 승리가 있고, 기쁨이 있는 것이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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