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 목요일

하나님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 시편 3:1-8.

 하나님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시편 3:1-8)

본문은 표제에 나와 있는 대로, 이 시편 3편의 배경은 :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고난의 시]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편의 배경은 국가에 반란이 일어난 상황이다.

그 반란 주동자가 다윗 자신이 낳은 아들 압살롬이다.

모반의 소용돌이로 온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다.

국가 반란 사건이 고통이지만,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

반란 주동자바로 내가 낳은 자식이라는 것이다.

정말, 창피스럽고,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이다.

언제 반란자들이 다윗을 공격해서 몰살시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드린 기도이다.

그런 가운데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5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었는가?

그것은 다윗의 신앙 때문이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 누구를 의지하고 믿었는가?

(3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이 말씀 안에 3가지가 나온다.

① 나의 방패시요 :

반란군들이 언제 칼과 창과 활로 공격해 올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방패가 되신다.

② 나의 영광이시요 :

정말 아들의 반란으로 수치스러운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 되신다.

③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

낙심되어 머리가 떨어진 나의 머리를 다시 들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안히 자고, 깨었다.

문제는 과연 나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나의 방패로 살고 있는가?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시련, 시험, 환난의 문제, 또는 질병의 문제와

또는 인간관계의 문제, 모든 고통공격에서 :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는 [나의 방패] 이라고 믿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도 이런 말씀을 주셨다.

(창 15:1)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실추된 나의 명예회복시켜 주시는 나의 영광이시요.

고개 숙인 나의 머리를 들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의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닫.

다윗이 반란 주모자 [압살롬]에 대하여 원망하고, 미워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아들이 아버지의 보좌를 찬탈하고자 반역했지만,

다윗은 그 아들, 압살롬을 원망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워지게 된 것은 :

아들 압살롬 때문이 아니고, 내 죄 때문이다고 다윗을 생각했다.

가 무엇인가? 바로 밧세바 사건 때문이다.

그러므로 압살롬의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라는 말이다.

압살롬의 반란의 문제가 아니고, 내 죄가 문제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자신이 지었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나를 용서

주셨다고 하는 확실한 믿음이 없었다면 다윗은 결코 평안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압살롬이 더 무섭고, 더 저주스러웠을 것이다.

비록 다윗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나를 받아 주셔서,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나의 영광이고, 나의 머리를 들게 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압살롬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도 예수님처럼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이렇게 기도했을지 모른다.

나중에 반란이 평정되면서, 자기 아들 압살롬이 요압장군에 의하여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부짖는 다윗의 눈물에서 압살롬을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음을

엿 볼 수 있다.

그래서 반역자 아들이지만, 그를 불쌍히 여겼고,

이런 와중에서도 평정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나를 용서해 주셨고, 받아 주셨기 때문에

결코 사람을 원망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된다.

(잠 29:25) 사람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다윗의 이러한 자세가 신앙의 안목이다.

요셉에게도 이러한 신앙적인 안목이 있었다.

요셉이 자기를 팔아 버렸던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창 45:8)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분명히 형들이 요셉을 팔았다. (Sold out) 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해석했다.

나는 팔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나를 특사로 앞서 (Sent) 보내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신앙적인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형들을 품으며 용서할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 속에 있다고 하는 신앙적인 안목이 요셉에게 있었고,

다윗에게도 있었다.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

나를 앞서 애굽으로 보내주셨다고 하는 신앙 고백이다.

분명히 요셉 형들의 악의가 있었고, 압살롬의 반란이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의뢰하였기 때문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결 론)

결론적으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8절) 구원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는 구원축복인데,

구원도 여호와께 있고, 축복도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8절)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위기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 뿐이다.

(시 62:8)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그렇습니다.

다윗처럼 고난역경 속에서 했던 (시편 3편)의 기도를 드리면서 :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십니다고 하는

이러한 믿음과 신앙적 안목을 가지고,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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