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 없는 것 한 가지. (요일 4:16-21)
사랑 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사랑 안에는 모든 것이 있다.
사랑 안에는 용서가 있고, 오래 참음이 있고, 희생이 있고,
기쁨과 행복 등등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18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요일 4:18)
(유무머, 예화) 어느 어머니가 이 성경 구절을 너무나 좋아 하였다.
요즈음은 문자나 카톡을 많이 한다.
이 어머니가 아들이 결혼하여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난 날, 밤에,
새로 맞이한 며느리에게 카톡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문자 멧세지를 보냈다.
[결혼을 축하한다. 요한1서 4장 18절을 보아라.]
그런데 실수하였다. 그만 [1서]를 빼고 말았다.
[결혼을 축하한다. 요 4장 18절을 보아라.] 고 보낸 것이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이런 데까지 신경을 써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궁금하여 성경을 펼쳐 보았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그래서 며느리가 당황하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이다. (ㅋㅋㅋ)
우리는 (요한일서 4:18) 제대로 찾아 읽어 봅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그렇습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아낸다.
마치, 빛이 어두움을 내어 쫓는 것처럼,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예화) 닭장 안에 토종닭들이 많이 있었다.
사람이 토종닭을 잡으러 닭장으로 들어갔다.
장대를 잡고 닭을 구석으로 몰면서 약 병아리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미 닭이 사람에게 달려든다.
금방이라도 물어 뜯을 것 같은 자세이다.
장대로 한 대만 치면 작살 날 닭이었으나 정말 겁이 없었다.
어미는 자식을 향하여 온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예화) 갓난아기가 담아있는 바구니를 독수리가 물고 올라갔다.
독수리는 그 아기가 있는 바구니를 산 꼭대기에 물어 놓았다.
아무도 그 산까지 올라갈 수 없었다.
등산가도, 젊은이도 가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두려움을 물리치고 손에 피가 나고, 무릎이 까지고,
넘어지고, 아무리 위험해도 올라갔다.
왜 그럴까요? 어머니는 자녀를 온전히 사랑하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가장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가장 용감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심리학자들은 두려움의 종류는 75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예화) 사나운 개가 있다.
개가 어떤 사람에게 짖어대며 달려들까요?
심리학자들의 연구는 놀랍고 흥미롭다.
개는 두려움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든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심장이 정상인 사람에게 개는 달려들지 않는다고 한다.
두려워 심장이 쿵탁 쿵탁 두근거리면서 도망가면 쫓아와 달려든다고 한다.
오히려, 확, 돌아서서 쳐다보면 개도 멈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말한다.)
여하간, 두려워하면 형벌이 따르고,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 어떤 사람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3가지 말씀드린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2. 사명의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3. 부활을 믿고, 천국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과 사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하여도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독생자까지 내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예화) 블레셋 나라 이스라엘을 점령하려고 쳐들어 왔다.
블레셋 나라에는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무패의 장수가 있었다.
사울 왕을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서 숨어 버렸다.(삼상17;11)
그러나 다윗만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윗은 두려움이 없이 담대하게 외쳤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17:44-47)
그리고 다윗은 물맷돌 5개를 가지고 담대하게 골리앗 앞에 나아가 승리했다.
하나님을 믿고, 그를 온전히 사랑하면 결코 두려움이 없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1)
계속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2. 사명의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자기 생명이고, 목숨일 것이다.
사명은 목숨보다 더 귀하다.
그래서 사명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결박과 핍박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서 올라간다고 그렇게 고백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명의 사람은 결박과 핍박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도 사명이 있다.
사명이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반드시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
문제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카알 힐티 [사명을 발견한 날은 생일보다 중요한 날이다.]고 했다.
사명을 발견하고 나면 그 날부터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사람은 그냥 사는 사람이고,
사명의 사람은 삶의 의욕이 넘치고, 삶의 모습이 다르다.
(예화) 식물 인간이 된 고령의 어머니가 병원에 누워 계셨다.
의사의 말은 이제 어머니는 회복 가능성이 없고,
산소 호흡기로만 숨을 쉬고 계시니, 가족들에게 상의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였다.
뉴욕, 한국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살던 자녀들이 모여서, 가족회의를 하고,
결국 산소 호흡기를 빼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산소 호흡기를 뺏는데 안 죽는다.
몇 일이 지났는데도 안 돌아가신다.
빨리 장례식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안 돌아가시는 것이다.
병실에 다시 다같이 모여 있을 때, 큰 아들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큰 아들 : 어머니, 빨리 죽으세요. 나 때문에 못 죽는 거지요?
나 예수 믿을테니까 편안히 죽으세요. 천국 가세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식물인간 어머니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니 눈을 감고 천국 가셨다.
그 어머니는 구원받지 못한 이 아들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큰 아들 전도하고 죽은 것이다.
살아 있음은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예화) 천로역정을 쓴 죤 번연이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날이 있었다.
군대 생활할 때 보초로 서서 경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일이 생겼다. 그래서 친구를 세워놓고 일을 하고 왔다.
적이 몰래 들어와서 친구를 죽여 버렸다.
번연이 돌아와 보니 친구가 적에게 살해되어 시체가 되어 있었다.
죤 번연은 그 때 사명을 받았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신 것은 나를 통하여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갔다.
감옥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천로역정을 썼다.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바울도 그랬다. 바울은 예수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자기 말대로 죄인의 괴수였다.
그 날도 바울은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 곳까지 찾아가서 잡아 죽이려는 지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바울에 대한 계획을 알려 주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바울은 그 때부터 사명의 사람이 되었다.
자기에게 맡겨준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려고 충성 다했다.
(예화) 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감옥에 있었다.
그래서 구두를 닦으며 살아야 했다. 구두 닦기 소년이다.
이 아이는 구두를 닦을 때마다 늘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닦았다.
그래서 구두를 닦을 때 사람들은 항상 기분좋아 하였다. 즐거웠다.
어느 날 손님이 물었다.
얘야, 너는 뭐가 그리 좋은 일이 있어서 늘 그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노래하니?
이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는 게 아니에요. 희망을 닦고 있어요.
이 아이가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됐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이다.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쫓아낼 수 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3. 부활을 믿고 천국을 믿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초대 교회 때, 카타콤의 순교자들을 보라.
그들은 사자들의 밥이 되어 죽어 지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부활과 천국을 믿었기 때문에 순교할 수 있었다.
(예화) 여우가 굴속에서 새끼를 낳았다.
큰 구렁이가 여우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굴로 들어온다.
어미 여우가 굴 입구를 막아서서 구렁이와 싸운다. 피투성이가 되었다.
혼자 뱀에 물려 뱀독으로 퉁퉁 부어가면서도 처절하게 싸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비켜주지 않는다. 마침내 뱀은 물러갔다.
정말 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
정말 사랑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결 론)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사랑 안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두려움이 없다.
① 하나님을 사랑하고,
②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알고,
③ 부활과 천국을 믿는 사람은 :
어떤 고난도, 역경도, 핍박의 두려움도 이길 수 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특별히, 부활과 천국을 믿는 자들은 믿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아주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여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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