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9일 토요일

부끄러운 이력서 / 삿 13:5-7, 15:15-16, 16:19-21, 16:28-31.

부끄러운 이력서

(삿 13:5-7, 15:15-16, 16:19-21, 16:28-31)

(시 90:10) 우리의 연수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의 인생이 마치는 날 :

우리는 각자 삶의 보고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삶의 보고서, 혹은 사역 보고서를 가지고 서게 될 것이다.

혹은 나의 삶의 경력을 말하는 이력서(履歷書)를 가지고 서게 될 것이다.

사도바울, 베드로, 스데반집사, 죤 칼빈, 루터 ... 같은 분들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이력서를 가지고 섰을 것이고,

가룟유다, 십자가의 강도, 디오드레베(요3서 1:9), 아놀드 힛틀러 같은 사람은

부끄러운 이력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섰을 것이다.

성경에는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흠이 없는 신앙인이 있었는가하면,

삼손처럼 부끄러운 전기(傳記)를 남기고 간 사람도 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삼손의 전기를 대할 때마다 아쉬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두려움이 앞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가나안으로 들어온 후 정부조직이 생기기까지

과도기가 있었으며, 그 때 임시정부 수반자들을 가리켜 사사라고 부른다.

이들 중에 삼손의 전기가 있다.

삼손의 이야기는 자랑스러운 이력서는 아니다.

그의 전기는 부끄러운 이력서이다.

★ 왜 부끄러운 이력서인가?

ㄱ) 그의 인생이 짧아서인가? 아니다.

그의 나이는 잘 알 수 없으나, 삿16:31(끝에) 보면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20년을 지내었다고 했다.

사사로서 20년이라는 것이 짧은 것만은 아니다.

반드시 길어서만이 훌륭한 이력서를 남기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의 공생애 기간에 그 누구도 남길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시었다.

ㄴ) 초라해서냐? 그것도 아니다.

더욱 화려하면 좋겠으나, 삼손의 삶이 초라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의 삶이 화려하지 못했다고 부끄러운 것이 될 수는 없다.

ㄷ) 조건이 나빠서냐? 그것도 아니다.

그는 좋은 조건 속에서도 부끄러운 이력서를 남기었다.

그러면, 왜 부끄러운 이력서인가?

다음의 3가지 면에서 부끄러운 이력서이다.

1) 나실인으로서 부끄러운 이력서를 남긴 사람이다.

(삿 13:5)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고 했다.

여기에 나실인이란 이름이 나온다.

나실인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다. 나실인은 구별된 사람이다.

(민 6:1-8)나실인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다.

나실인은 삼가 포도주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야 한다.

나실인나실인답게 살아야 항다.

삼손나실인으로 태어났고, 하나님이 구별해 놓은 사사였다.

그런데, 삼손은 나실인답게 살지 못해서 부끄러운 이력서를 남긴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해 주신 영적인 나실인이다.

영국의 귀족이나 행동을 함부로하지 않는다.

귀족은 귀족답게 언행을 조심한다.

1982년 7월 29일에, 찰스 황태자와 결혼한 다이애너 스펜서가 결혼한 후에

했던 그녀의 고백은 궁중생활이 매우 피곤하였다고 했다.

왜냐하면 궁중에서의 생활이 귀족답게 살아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치 노아의 방주가 물에 있지만, 물에 빠지지 않는 것 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우리는 구별된 천국 백성이요, 같은 제사장이요,

영적인 나실인으로서 나실인답게 살아야 한다.

(사 32:8) 존귀한 자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고명한 자고명한 자답게 사는 것이다.

왕자는 왕자답게, 공주는 공주답게, 신자는 신자답게 사는 것이다.

미국에서 대한민국대사를 보냅니다.

그러면, 한국주둔 미국대사는 한국에서 살지만, 소속은 미국이다.

그는 미국인으로 미국인답게 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소속은 천국 백성으로서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한다고 나도 따라서 해야 할 것 없다.

세상 사람들이 평복을 입어도 왕의 제복을 입어야 한다.

(살전 4:3, 5)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

그러나 삼손은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구별해 놓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는 방법이 따로 있다.

이방인들은 호색하며, 서로 속이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갈 길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방법이 아니다.

(엡 5:18)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은 세상 쾌락을 대표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에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을 나는 예수 믿기 때문에 못하고, 안하는 것들이 많다.

거기에는 죄된 것들이 많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러울 것이 없고, 아쉬울 것도 없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따라 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다.

삼손 !

그는 태어나기는 잘 태어났다.

신앙인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건장한 남아로 태어나기는 잘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나실인으로서 부끄러운 이력서를 남기고 말았다.

2) 받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사람이다.

세상에는 건강이 없어서 일 못하는 사람도 있고,

가진 것이 너무 없어서 일 못하는 사람도 있고,

지식이 없어서 일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자인데, 있는 자 못지않게 잘해 내는 사람도 있다.

같은 수옥자이면서도 뛰어났던 요셉이 있고,

같은 군인이면서도 골리앗을 쳐 죽인 다윗이 그 예(例)가 된다.

그러나 재능, 권력, 지능, 힘이 남들보다도 월등하면서도

없는 자 보다도 못한 과오와 부끄러움을 남긴 그 사람이 삼손이다.

인적, 물적 자원이 많이 있으면서도 일하지 않는 사람은

특권 받은 자로서 부끄러운 사람이다.

(예를 들어) :

ㄱ) 궁궐같은 집에 살면서도 파출부 아주머니 감사헌금보다도 못내는 가난한 부자

ㄴ) 건강하면서도 불구자보다도 봉사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

ㄷ) 지성인이면서도 무식한 사람보다도 무례한 지식인.

이런 사람들은 남들보다 많이 받았다는 것이 부끄러운 자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삼손 그는 많이 받은 자이다.

그러나 그의 정욕을 쓰지 못할 곳에, 써서는 안 될 곳에 다 써 버리고,

자신도 부끄러웠고,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우는 안타까움을 남기고 간 것이었다.

삼손축복축복으로 활용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많이 있음으로 실패했다.

그는 건강함으로 죄를 범했다. 힘이 있으므로 죄된 삶을 살았다.

그는 많이 받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이력서를 남긴 사람이었다.

3) 맡은 자로서 부끄러운 사람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

삼손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삿 16:17)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삼손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고, 사명도 알고 있었다.

삼손이 첫 번째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잘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는 사사였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는데, 이방 여인에게 빠져서

그는 자신의 의무에 충성하지 못했다.

삼손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릇 행하였다.

그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욕에 사로 잡혀서 육신을 좇아 살았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오늘을 사는 이유를 분명히 확인하며 사십시다.

지금 왜 나는 사는가? 왜 나는 살아 있는가?

세상 연락을 즐기고, 그 흉악한 죄에 빠져서 있으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니다.

지나간 세월들을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맡은 자로서 부끄러운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삼손은 맡은 자로서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무능(無能)배임(背任)은 다른 것이다.

무능은 능력이 없어 못하는 것이지만, 배임직무유기이다.

(결 론)

성경에 사사 삼손의 전기를 기록해 놓았을까요?

삼손을 정죄하고, 삼손을 비웃으라고 기록한 것은 아닌 줄 압니다.

우리는 삼손을 정죄할 자격도 없고, 비웃을 자격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삼손보다 그 이상의 죄인들인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까지 삼손이 탕자 그 이상의 삶이었다할 찌라도,

그는 이제 마지막 순간에 목놓아 회개하며, 기도했다. (삿 16:28-30)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자신의 불의를 시인하며

회개했을 때, 또 다시 하나님의 긍휼은혜가 임하였다. 아름다운 결말이다.

그러므로,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여기서 삼손의 이름이 나온다.

성경은 그가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비록 부끄러운 삶을 살았지만, 마지막 순간회개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우리도 주 뜻대로 살기로 결심했지만, 우리의 결심과 약속과는 달리,

나실인으로서, 혹은 받은 사람으로서, 혹은 맡은 자로서 부끄러운 삶

살지는 않았는지를 돌이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지나간 우리의 삶이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이 없고,

한편 부끄러운 전기를 써내려 왔다 할 찌라도,

그래도 아직 늦은 것이 아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종말론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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