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자유가 있는가?
(요 8:32-36, 갈 5:1, 롬 6:17-18)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말함과 동시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씀하고 있다.
신학적으로 전자는 칼빈주의에서 강조하고, 후자는 알미니안에서 강조한다.
성경에는 분명히 이 두가지 사상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이 말씀은 인간이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성경에는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의지가 있다고 본다.
(신 30:19)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고 하셨다.
자유가 있으니, 택할 수도 있고, 안 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인격이다.
기계는 프로그램대로 작동한다. 시계 태엽을 감아두면 그대로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기분 나쁜면 안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인간에게 자유가 있는가?
온 세상은 하나님의 법칙과 원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바람도, 구름도, 식물과 동물도, 무생물까지도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에
따라 움직이고 생성소멸한다. 힘이 쎈 코끼리도 자연에 순응하며 산다.
포악한 호랑이도 자연의 범위 안에서 머물러 산다.
자연으로 식물이 자라고, 자연에 모든 동물들이 순응한다.
그런데, 생명의 시작과 더불어 놀라운 신비가 있다면,
사람만이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만이 자연을 넘어선다. 자연을 거스린다.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은 그대로 창조했지만,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자유의지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만이 마음대로 하신다. 하나님만이 마음대로 결정한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실 적에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인 자유의지 마저도 창조해서 인간에게 주셨다.
“C. S. 루이스” 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자유의지를
만드는 작업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문제는 이 자유의지가 심지어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마저도 거부할 놀라운 권세를 가졌다.
그것을 간파한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꼬이자, 그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꾀임 속에 자유의지가 이용되었다.
그 이후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다. 자기 정욕과 욕심을 따라 자유의지가 쓰여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죄의 종이 된 것이다.
사탄의 종이 되었고, 정욕의 종이 되어 버렸다.
참으로 슬프고, 불행한 일이다.
(요 8:34)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것이 아니라, 죄에 팔려갔기 때문에 저절로 죄를 짓는 것이다.
갓난 아기가 죄를 배워서 짓는 것이 아니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를 짓는다.
시기, 질투, 욕심, 거짓말, 음란한 생각, 탐욕, 교만, 흘기는 눈, 살인, 간음, 악독
어느 하나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저절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 7:21-23)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의 열매를 맺는다.
인간은 죄의 종이다. 자유가 없다.
죄를 안 짓고 싶은데, 자꾸 죄를 Enjoy하며, 즐기고, 죄를 짓는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롬 7:16-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 바울처럼, 나도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자유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악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탄식한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래서 이 죄의 속박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죄에서 자유케 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오셨고, 죄 팔려간 우리를
십자가의 피 값으로 리뎀션(속량)하여 주셔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다.
(고전 6:20)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롬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결 론)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께 소속되어 진리의 종이 되는 것이 참된 자유이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의 종으로 살든지, 하나님께 소속되어 의의 종으로 살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무소속은 없다. 어두움의 종이냐? 빛의 종이냐? 이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자유하고, 새는 공중에 날아야 자유하고,
나무는 땅에 뿌리를 뻗어야 자유하듯이, 다 자신이 자유할 수 있는 소속이 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께 속할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그러므로, 내 자유를 버릴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요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분명히 나는 기계가 아닌, 인격체인데, 내 뜻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
그렇다고 숙명론도 아니고, 운명론도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믿는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인류 역사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고, 개인의 인생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요셉의 인생을 보아도 그렇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잠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러므로, 종이 상전의 손을 바라봄같이(시 123:2),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주의 은혜로 붙잡아 주시기를 기도하며, 내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사는 것이 참 자유인의 삶이고, 가장 복된 인생이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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