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8일 월요일

“새 사람, 새 생활”으로의 변화 / 빌레몬서 1:8-18

  사람, 생활”으로의 변화 (몬 1:8-18)

(전에는 무익, 이제는 유익한 자)

새해가 되었다.

작년이 그들의 인생에 마지막이었던 사람들은 약 1억명 정도가 된다.

그들은 작년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년, 1월 1일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올해 [마지막 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금년, 한해는 얼마나 소중한 1년이 될까요?

교통사고, 자연재해, 질병이나 사고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죽든지,

1초에 3∼4명이 죽고, 1분에 약200명이 죽고, 1시간에 만명 정도가 죽고,

하루 평균 25만명이 죽는다고 한다.

그 안에 누가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한편, 1초에 3명 이상이 출생하여 지구 인구가 유지되고, 조금씩 증가한다.)

20( )년 이라는 새해를 맞이했다.

성도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결심하며 변화되어

새롭게 살고, 새 생활 살기를 바랄 것이다.

문제는 변화(變化)변질(變質)같은 것이 아니다.

변질되지 말고 변화되어야 한다.

썩는 것변질이고, 이 되는 것은 변화이다.

나쁘게 변하는 것은 변질이고, 좋게 변하는 것은 변화이다.

사울바울이 된 것은 변화이다.

방탕아 어거스틴이 성 어거스틴이 된 것은 변화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스승을 팔아 버린 것은 변질된 것이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변질되지 말고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대로이고 싶습니까? 아니면?

지금보다 못한 존재전락(轉落)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지금 보다 나은 변화를 원하십니까?

기독교변화시키는 종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 죄인의인으로, 땅의 사람하늘의 사람으로,

소망없는 사람을 소망의 사람으로, 무능한 자를 능력의 종으로,

무익한 사람을 유익한 사람으로, 절망의 사람을 소망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변화되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정말,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변하는 사람이 있다.

좋게 변하는 사람이 있고, 안 좋게 변질되는 사람이 있다.

많이 변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 변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 본문에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나온다.

(11절) 오네시모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다.

이 말은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말이다.

새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를 다시 오네시모의 주인이자, 바울의 친구인 빌레몬에게로 보내면서

부탁하고 있다.

(16절) 이후로는 (오네시모를) 과 같이 대하지 말고,

사랑 받는 형제로 대해 주라는 부탁이다.

오늘 본문에는 등장 인물이 오네시모, 빌레몬, 사도바울 3명이 나온다.

이 3사람의 관계를 잘 알아야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절) 사도바울이 빌레몬에게 동역자라고 부를 정도로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이다.

또한 빌레몬은 생활 형편이 매우 부요한 사람이다.

그런가하면 오네시모빌레몬은 서로 대조가 되는 사람이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로서 중죄(重罪)를 짓고 도망해 나왔다가

사도바울이 갇힌 로마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비교해 보면 :

빌레몬

오네시모

자유인

노예, 종.

축복받은 사람

저주받은 사람.

부자

죄짓고 붙잡힌 중죄인

그 당시

(1) 종으로서 주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도둑질)

(2) 주인의 아내를 건드렸거나 (즉 간음 죄)

(3) 주인의 아들을 구타했을 때에는 :

일고의 여지도 없이 사형시키던 시대였다고 한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어떤 중죄를 지었는지, 종살이가 싫었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하다가 로마에 사도바울이 갇혀 있는

그 감옥으로 잡혀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바울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다.

“주 예수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복음기쁜 복된 소식(멧세지)를 들은 오네시모는 :

“정말 나도 자유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바울의 복음을 듣고

오네시모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변화를 받아 강도새 사람이 되었고, 믿음의 아들로 변화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친구, 빌레몬에게 편지를 쓴 것이 [빌레몬서]이다.

오네시모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18절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한다.

(18절)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내가 지은 죄 값예수님께서계산해 주시고 지불해 주신 것과 같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

오네시모를 이렇게 변화시킨 요소는 무엇일까?

오네시모어떻게 해서 이렇게 변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1) ( 사도 바울 )을 만남에 있다.

인간은 만남이 참으로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행복하게도 되고 불행하게도 된다.

만남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을 만남으로 새 사람이 되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기 때문에 새 사람이 되었고 복된 인생이 되었다.

만남의 축복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참으로 잘 만나야 할 대상들이 있다.

ㄱ) 자식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

신앙생활도, 인격도, 정서도, 부모님을 잘 만나면 될 수 있다.


ㄴ) 부모자식을 잘 만나야 한다.

악한 자식을 만나면,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한숨짓게 된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효도해야 한다.


ㄷ) 친구도 잘 만나야 한다. 잘못된 친구를 사귀면 잘못된 것을 배운다.


ㄹ) 학생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물론 선생님도 제자를 잘 만나야 한다.

ㅁ) 그리고 부부의 만남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부모와 함께 오래 삽니까? 부부가 더 오래 삽니까?

결혼을 위하여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날마다 사람들을 만난다. 인생은 만남이다.

따라서 금년에도 만남의 축복을 위하여 날마다 기도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만남의 성경적 원칙이 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축복이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나야 할 분이 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 연결되는 고리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영적 지도자, 목회자와의 만남이다.

만일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오네시모는 영원히 타락하였을지도 모른다.

오네시모는 바울이라고 하는 영적인 거성만났기 때문에 변하여 새 사람 되고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

부부나, 부모, 자녀, 스승, 친구의 만남은 윤리 문제요. 현세의 문제이지만,

목회자와의 만남은 구원, 영생, 진리, 생명, 영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참으로 중요하다.

양들이 험악한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도 상하고, 지쳐 있다가 내 영혼의 안식처인

주의 전에 나와서 위로부터 오는 새 힘을 얻고 영의 안식과 마음의 평안과

신령한 기쁨을 되찾고 돌아가야 할 곳이 주의 전, 교회이다.

그런데 도리어 마음에 상처를 입고, 돌아가게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래서 성도간에 화목해야 한다.

교회를 화목한 분위기로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 영혼의 축복안식을 위하여 기도를 해 드리는 것이다.

목사님도 사람인지라. 충격을 받으면 설교가 잘 안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따라 합시다.) 목사님에게 충격 주는 말을 하지 말자.

나는 일평생 주의 종을 잘 받드는 성도가 되겠습니다.

신자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목사를 잘못 만날 때 어려워지고,

목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양을 잘못 만나면 곤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목회자는 참 좋은 목회자가 되기를 기도하며 힘쓰고,

성도는 가장 좋은 이 되겠다고 기도하며 힘써야 할 것이다.

여기에 만남의 축복이 있다. 잘 만나면 축복이 된다.

오네시모는 믿음의 거성, 사도바울만남으로 새 사람이 되었고,

전에는 무익한 자였으나, 이제는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2) 복음을 듣고 (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변화 받아 새 사람이 되었는데 그것은 :

그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오네시모는 받아들였던 것이다.

ㄱ) 만일 바울이 오네시모에게 헬라 철학을 가르쳤다면 해답이 없었을 것이다.

ㄴ) 오네시모가 불교사상을 받았다면 산 속에 암자바위에 앉아 있다가

깊은 사색 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ㄷ) 만일 유교사상을 전했다면 나 같은 인간은 암만해도 상놈 양반 될 수 없다.

그리하여 사회 폭동이나 일으키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복음을 듣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변화된 것이다.

(롬1:16)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했다.

지금도 세상 이야기나, 철학사상을 듣고 싶어서 교회에 온 것이 아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말씀 듣는 가운데 은혜도 받고, 변화되는 것이다.

(예화) 100년 전 우리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될 무렵 시골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셨다. 그런데 그 시골에서 부흥회가 열렸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부흥집회 다녀오라고 했다.

다녀왔을 때 할머니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 들었소?”

다른 것은 잘 모르겠는데 부흥사 목사님이 소코리 소코리 합디다.

궁금해서 그 다음 날 담임목사님에게 물어보았다.

아! 그거요. 부흥 강사님이 쏘크라테스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그렇습니다.

소코리, 소꼬리, 쏘크라테스 이든지 할머니에게 무슨 유익이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을 때 :

죄인이 의인이 되고, 사형수가 믿음의 아들도 변화된다.

복음은 깡패 김익두를 부흥사로 변화시켰으며,

방탕아 어거스틴을 성(聖) 어거스틴으로 변화시켰고,

복음은 절망의 사람을 소망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모든 슬픈 자를 기쁘게 하고 위로하는 능력이 있다.

사람의 변화가 어디서 오는가? 복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사회법이나 사회 제도가 조금의 질서는 잡을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오직 복음만이 사람의 마음심령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3) 오네시모가 ( 회개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는 것인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더라도,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회개이다.

회개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신다.

우리가 전도한다.

그런데 왜 누구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누구는 믿지 않는 것인가?

이것을 우리로서는 모른다. 이것이 해답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회개하는 자에게만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을 들은 후 믿고 <이 죄인이 왔나이다>고 하면서

회개할 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4) 끝으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 은혜 )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오네시모를 바울과 만나게 했으며?

누가 바울을 통해서 복을 듣게 했으며?

누가 오네시모를 회개시켰는가?

누가 믿음을 선물로 주셨는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면 오네시모가 강도짓 한 것도 하나님이 시켰나요? 그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선(善)하시므로 악한 생각, 악한 행위를 계획하지 않으신다.

그러면 누가 시켰을까? 타락한 내 본성과 악한 영인 마귀이다.

마귀는 오네시모를 멸망으로 이끌었으나, 하나님은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것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인간의 변화, 새 사람으로의 변화]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가장 어려운 일이 인간의 변화이다.

도저히 변화될 수 없는 죄인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은혜받기 과 은혜받은 후, 예수 믿기 과 예수 믿은 후,

변화 받기 과 변화를 받은 후, 성령받기 과 성령 받은 의 삶은 완전히 다른 삶이다.

전에는 세상을 향하던 사람이 이제는 하늘나라 향해 살고,

전에는 어두움에 속해 살던 사람이, 이제는 빛 가운데 살고,

누가 이렇게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을까요?

무엇이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요?

하나님이 하셨고, 하나님의 은혜였다.

(결 론)

오네시모가 전에는 무익한 자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함으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16절)

오네시모의 새 사람으로의 변화는 :

1) 사도 바울만났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에게는 큰 축복이 되었다.

2)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들려주었고,

3) 오네시모는 복음을 듣고, 회개함으로 새사람이 되었다.

4)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 사람, 새 생활변화 받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새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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