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일 수요일

두려워하지 말라. / 사 43:1-7, 41:10.

 두려워하지 말라. (사 43:1-7, 41:10)

[두려움]은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본능이며 선물이다.

[두려움]은 우선, 마땅히 두려워할 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게 하고,

또한,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로 타락된 후에는 :

이런 본능까지 변질 되어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많이 두려워하게 되었다.

또한 아무 근거도 없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타락 이후에는 이 두려움은 인간의 행복과 평안을 빼앗아 가는 저주가 되고 말았다.

[두려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사람에 따라 두려워하는 것도 다르다.

ㄱ) 어떤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한다.

산 사람도 두려워하지만, 죽은 사람은 좀 더 두려워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면 떨려서 말을 잘 하지 못한다.

ㄴ) 어떤 사람은 색깔을 두려워한다. 검은 색, 빨강 색을 두려워 한다.

ㄷ) 어떤 사람들은 소리를 두려워한다.

우뢰(雨雷)같은 소리, 천둥벼락 소리, 민방위 훈련 싸이렌소리를 무서워 한다.

ㄹ) 미리 상상해서 두려워하는 것들도 많이 있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병이 생길까봐 두려워하고, 혹시라도 죽을 까봐 두려워한다.

앞으로 실직되면 어떻게 하나? 해서 두려워한다.

지금은 생활이 안전하지만 앞으로 가난해 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앞으로 나이가 많이 들면 외로워지면 어떻게 하나?

ㅁ) 어떤 때에는 오해해서 두려워하기도 한다.

(예화) 한번은 한 밤 중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올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한 적이 있었다. 순전히 오해였다.

이와 같이 어떤 경우에는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을 오해해서 경계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오해를 해서 그냥 무서워 하는 경우도 있다.

ㅂ)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미신적인 생각을 해서 마음에 겁을 먹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어렸을 때에 무서웠던 경험이 잠재의식 속에 있다가 비슷한 일이 생기면

자신을 괴롭게 하는 심리적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마다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날 받으려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왜 결혼식(結婚式)할 때, 이사 갈 때, 날 받습니까? 그것도 일종의 공포심이다.

(예) 미국에는 13층, 13호가 없다.

한국 사람들은 4호실을 싫어한다고 한다. (병원 4층이 없고, 3층 위에 5층이다.)

이런 것들은 불길하다는 미신이다. 미신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런 미신에 사로 잡혀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기쁨이 없다. 만족이 없다. 평안이 없다. 늘 불안해 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그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예) 마치 고양이 앞에 서 있는 쥐처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몸과 마음이 굳어져서,

도망도 못 가고 잡혀 죽는다. 그 쥐는 고양이에게 잡히기 전에 이미 공포심에 휩쓸려서

신경이 마비되었고, 근육이 제대로 놀지를 못 한다. 이렇게 되니까 움직이지는 못한다.

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신을 잃어서 정상적인 판단도 못하고, 모든 신경이 마비되고, 근육이 마비되고,

생각까지도 마비되어서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예) 서커스단에서 줄 타는 사람들이 한창 줄을 잘 타다가도 어쩌다가 잠깐

아래를 내려다보고 무서운 생각이 들면 떨어진다고 한다.

군인이 전쟁에 나가서 전쟁을 잘하다가도 무서운 마음이 들어오면 패전을 하고 만다.

같은 간호사들이 같은 병원에서 같은 전염병 환자를 대하지만,

병 옮을까봐 두려워하는 간호사는 영락없이 전염이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무서워하면 몸의 저항력이 약해진다.

이와 같이 이렇게 두려움이 주는 영향이 대단합니다.

(예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전에 서반아 왕 가운데 페르디난드 五세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이 어떤 점쟁이로 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왕께서는 마드리갈 이라고 하는 곳에 아예 가지 마세요.

그 마드리갈에서 왕이 장차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왕의 별궁이 있었다.

그러나, 왕은 무서워서 자기의 좋은 별궁을 지어놓고도 21년 동안 못 갔다.

그러다가 한 번은 서반아 지방을 여행하다가 어떤 조그만 촌락에서 하룻밤 자면서

그만 이 났다. 왕은 이 지방이 어떤 지방이냐고 물어보았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 곳은 마드갈레 입니다.>하고 대답했다. <마드리갈>과 비슷했다.

사실은 마드리갈은 아니고 비슷한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왕은 “아이고 이제 나는 죽겠구나!” 하더니

정말 몇 일이 안 되어서 죽었다고 한다.

병이 죽인 것이 아니다. 그 두려움이 왕을 죽게했다는 말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인가?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1절)고 말씀해 주셨다.

어떤 분이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몇 번 나오나 세어보니 365번이래요

또 다른 분이 찾아보니까 366번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1년 365일, 윤년 366일,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고 살라는 말이다.

★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가?

1) 하나님이 우리를 ( 구속 ) 하였기 때문이다. (1절)

[구속(救贖)]이라는 말은 댓가를 지불하고 샀다는 말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구원이 공짜이다.

우리는 그냥 주님을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는 사건이 있었다.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어떤 댓가를 지불하였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급에 10가지 재앙이 있었는데, 마지막 재앙이

장자 재앙이었다. 모든 초태생은 다 죽는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도 이 재앙을 면제받기 위해서는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했다. 그래서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고 그 피 값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우연히 출애굽 사건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유대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3-4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이 유다백성을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구스와 스바를 속량물로 주고 데려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바사(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고레스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나님은 열방의 왕을 이용해서 예루살렘의 성을 재건하게 했으며

자기 백성을 향한 뜻을 이루어나가셨다.

우연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대신해서 주고 속량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에는 [댓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는 댓가가 지불 되었다는 사실이다.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값으로 속량함을 받은 것이다.

피 = 생명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의 생명을 주고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사신 것이다.

(고전 6:19-20)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외아들을 주고 그 피 값으로 사시고 구속해 주셨다.

그렇게 해 놓고 <너는 내 것이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의 ( 소유 )이기 때문이다. (1절 하)

우리를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셔서 구속하여 주셨으니,

우리는 자연히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서 우리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했다.

(예화) 구약에서 성막을 지을 때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사 지혜와 총명을 주어서 성막을 만들게 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셨다.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어쩌다 보니 예수 믿게 된 것이 아니다.

[어두운 데서 불러내었다] 이 말은 우리가 전에는 와 죽음의 법 아래 있었고,

흑암의 권세 아래 있던 나를 불러내 주셨다는 말이다.

세상에서 방황했던 나, 지옥을 향해 달려가던 나, 세상 풍속을 따라 죄악에 뒹굴던

나를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다.

어두움에서 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 백성으로 불러 주셨다.

수 많은 사람 가운데서 지명하여 직접 불러 주셨다.

아담아!, 사무엘아!, 다니엘아! 사울아 사울아! 광삼아 --!

내가 양심적이고 인격적으로 고상하고 똑똑하고 착하고 잘나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연약하고, 허물되고, 경건치도 했고, 원수 되었지만(롬 5: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 확신이 있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는 이 확신이 있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렇습니다.

누구의 것이냐? 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누가 입은 옷이냐? 누가 신은 구두냐? 누가 먹던 숟가락이냐?

1962년 마릴린 먼로가, 케네디 대통령 생일날 입고 왔던 드레스를

1999년에 경매에 붙혀 졌는데, 130만불에 팔렸데요.

오래 전에 김영삼대통령이 LA에 있는 영동 설렁탕 집에 와서 식사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대통령이 드신 뚝배기 그릇과 숟가락을 따로 구별해서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누가 사용했느냐? 누구의 소유이냐? 에 따라서 가치가 올라간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조성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절 하)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우리와 ( 함께 ) 하기 때문이다. (5절)

얼마나 신나는 말씀입니까?

한 번 따라합시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명령>하시면서,

동시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 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 놀랄 것도 없다.

확신이 있는 사람은 가장 강한 사람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성경에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 축복의 말씀임마누엘의 복이다.

(물질도, 건강도, 장수도 아니다.)

① 아브라함이 들은 최고의 칭찬이 있다.

이방 사람, 아비멜렉과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했던 말이다.

(창 21:22)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보다 더 귀한 칭찬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이 무엇인가?

(창 26:24)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야곱에게도 주신 약속의 복도 임마누엘의 복이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④ 요셉도 (창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80세가 넘은 모세를 불러 애굽으로 보낼 때에도 --

(출3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면서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최상의 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해 주시는 이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는 내 인생을 책임 질 수 없다.

그러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내 인생의 미래를 다 아시는 주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영혼을 책임 져 주실 분은 예수님 뿐이다.

본문에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가고, 성벽은 무너졌고 성전은 불타고 없어지고,

설렁해진 예루살렘 도시의 모습은 처참하다.

유대 나라는 이렇게 끝나나? 내 인생 이렇게 끝나나?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너 자신을 보지 말고,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 얼마나 위로되고, 소망과 힘이 되는지는 모른다.

(결 론)

두려움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두려움이 있어야 자기 생명도 보호가 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한 분여호와 하나님뿐이다.

그 외에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도 두려워 하지 말고, 어떤 권력자도 두려워 말고, 사탄 마귀도 두려워 말고,

장래의 일도 두려워 말고, 심지어 죽음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마 10:28) 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Fear, 두려워) 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팬대믹으로 인하여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

노후 생활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의 연속이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

1)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1절 하)

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 때문이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평강의 왕이시고, 사탄은 두려움의 영이다.

두려워하면 영적 전쟁에서 패배한다.

미디안과 싸울 때에도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 떠는 자는 돌려보내라고 하셨다.(삿 7:3)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 :

(수 1:9)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주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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