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했으나 지혜로와진 청지기 (눅 16:1-9)
성경은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한다.
정말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들을 줄 아는 지혜가 있다.
지식과 지혜는 같은 것이 아니고 소유와 행복도 같은 것이 아니고,
지위와 평안도 정비례하지 않다.
솔로몬은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다.
그는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
“What do you want?"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이렇게 물으시는 기회에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다.
그것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다고 했다.
그는 모든 것에서 지혜를 배우는 지혜가 있었다.
(그래서 잠언과 전도서 같은 지혜서도 쓰게 된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선한 사람에게서도 배우고, 악한 사람에게서도 배운다.
순결은 비둘기처럼, 지혜는 뱀같이 하라고 했다.
오늘 본문은 오해하기 쉽고 해석이 난해한 본문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상고하면 이해가 되고 귀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악한 청지기를 통해서 지혜를 배우라는 것이다.
그 악한 청지기가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 악인의 악이 정당화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악한 청지기로부터 지혜를 배우라는 것이다.
[본문의 내용]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는데 그가 그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주인에게 들렸다. 그래서 주인이 이 불의한 청지기를 불러 말한다.(2절)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즉, 파면 당하리라는 말이다.
이 때에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육신적으로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정신적으로 부끄럽구나”
그래서, 이 불의한 청지기는 하나의 지혜를 생각해 낸다.
우리 주님이 칭찬한 것은 바로 그 지혜였다.
비록 과거에는 그 청지기가 불의한 자였으나, 이 순간에는 지혜로워졌던 것이다.
그러면, 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이제라도, 남은 시간, 남은 기회를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즉,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4절) :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기름 100말이니이다.
그러면 네 증서에다 50이라 쓰라. 이것은 공문서 위조이다.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밀 100석이니이다
그러면 여기 네 증서에다 80이라 쓰라. 이것은 횡령이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내가 직분을 빼앗긴 후에 그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고 생각했던 것이다.(4절)
(8절)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칭찬하신,
이 불의한 청지기로부터 배워야 할 지혜가 무엇인가?
1) 과거의 죄를 ( 인정 )하는 지혜가 있었다.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이 무엇이냐? 일이 끝난 지 오래 되었다.
이미 세월이 다 흘렀다. 주인에게 불충성했던 것도 사실이다.
게을렀던 것도 사실이다.
실패한 그대로 사실을 사실로 인정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회개의 용기이다. 잘하라는 말이 아니다.
인정하는 것이다. 시인하는 것이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해야 다시 일어날 수 있다.
ㄱ) 없고도 있는 척
ㄴ) 할 수 없으면서도 할 수 있는 것처럼
ㄷ) 되지 않고도 된 것처럼.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
벌써 끝났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심판에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내가 전에 행한 일이 그러니, 저러니... 변명하고 싶지 않는 지혜가 있었다.
그러나 오래 전에 인류의 조상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사실을 인정하기 전에
변명하기에 바뻤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나이다.
주체 의식이 없는 자이다.
자기가 해 놓고도 남이 시켜서 그랬다고 한다.
★ 죄(罪)는 [4가지 단계] 로 깊어 간다고 한다.
① 죄는 죄를 ( 짓는 ) 죄가 있고
② 죄는 죄를 ( 계속 )하는 죄가 있다.
처음이 어렵다. 죄는 2번째부터는 보다 쉬워지는 특성이 있다.
내친 걸음이니까?
③ 죄는 ( 변명 )하는 죄를 더한다. 그러면 점점 더 추해진다.
④ 죄의 원인을 ( 전가 )하는 죄를 더 한다고 한다.
그러나 본문의 청지기는 이것이 <네 죄다>고 했을 때 즉각적으로 인정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변명하기 바쁘다.
잘못됐지만...? 그런데요...? 환경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고, 나라를 탓하고,
가족을 탓하고, 마침내는 하나님까지 탓한다.
이것이 네 잘못이 아니냐? 할 때 이 청지기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즉각적으로 시인을 했고, 인정했다.
깨끗하게 인정하는 지혜와 용기가 이 불의한 청지기에게는 있었다.
다윗도 정직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나단 선지자가 [당신이 그 사람이요!] 책망했을 때,
다윗은 [내가 그 죄인입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위대한 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2) ( 끝 )이 있음을 아는 지혜가 있었다.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음을 알았다.
재물도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젊음도 언젠가는 약해 질 것이다.
건강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지위도 언젠가는 내려 앉아야 한다.
목숨도... 다 끝이 있다.
원천적으로 내 것은 없었다. 나는 청지기 였으니까.
알렉산더 대왕은 왕좌에 앉아서 누가 다음에 이 성을 점령할 것인가를 생각했답니다.
내가 앉던 왕좌 자리도, 내가 살던 집도, 내가 사용하던 모든 귀한 것들을,
언젠가는 빼앗기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때가 올 것을 내다보았다.
여기에 [기독교인의 고난관] 이 있다.
고난도 잠깐있는 것이고, 반드시 고난의 끝이 있다고 믿는다.
고난은 잠깐이요. 영광은 영원한 것이다고 믿는다.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그래서 어떠한 고난도 반드시 끝이 있음을 믿기에 성도는
끝까지 참을 수 있는 인내력이 있다.
그리고 고난 후의 나타날 영광의 크기는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롬 8:18) 생각하건대 (원어적으로 계산해 보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이 옵니다. 반드시 온다. 한해도 시작이 있었고, 끝도 있다.
사람이 출생했으면 죽는 날도 반드시 있다.
(전 3:1-2) 범사가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고 했다.
반드시 끝이 있고 그 뒤에는 영원한 세계가 있다.
이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
영원무궁 세계가 반드시 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죽으면 끝]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잠 6:6-8)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 개미의 지혜이다.
젊을 때는 노후를 준비하고, 살아있을 때에는 영생의 나라를 준비하며
사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끝이 있음을 알고, 끝을 준비하는 지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바르게 갖는 자만이 오늘을 충성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
3) ( 남은 )시간을 ( 활용 )하는 지혜가 있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남은 것을 생각하는 지혜가 있었다.
Last Chance, 마지막 기회를 살린 것이다.
없는 것 중에서도 있는 것을 생각했고, 끊어진 중에서도 남은 것을 생각했다.
사형선고를 받아도 아직 남은 시간은 있는 것이다.
어떤 유능한 젊은 청년이 몸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6개월 형 암선고를 받았다. 그 때부터 이 젊은이는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먹어도 맛이 없고, 누굴 만나도 즐겁지 않았다.
그가 실의에 차서 거리를 방황하다가 어떤 아이가 꽃밭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아이와 이 청년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얘! 이 아저씨는 이제 죽게 되었단다. 이제부터 6개월 밖에 못 산다.” 고 하니까.
이 아이가 하는 말이 “그래도 6개월은 있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6개월은 있지 않은가?
여기서 그는 6개월 동안 아주 귀한 일을 하고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습니다.
없는 중에도 있는 것이 있다.
모르는 중에라도 아는 것이 있다.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이 있다.
6개월 밖에 없다고 할 때는 절망이지만,
6개월은 있다 할 때 새로운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네 보던 일을 셈하라”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직분을 빼앗긴 후에 있을 일을 미리 ( 준비 )하는 지혜가 있었다.
이것을 우리 주님께서 칭찬해 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남은 시간에 용서할 수 있고, 남은 시간에 사랑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에 기회는 있는 것이다.
(예화) 1976년 오래 전 일이다.
미국 L.A.에서 피아노 독주회가 있었는데 매우 놀라왔다.
이 사람은 왼손 하나로 피아노를 연주한 것이다. 아직도 한손은 있었다.
두 손이 다 끊어진 사람이 발가락으로 붓글씨 쓴 것을 보았다.
아직 발은 있지 않은가?
시각 장애자가 된 소경이 눈은 보지 못하지만, 아직 손은 있다.
손으로 점자 성경을 읽을 수 있다. (강영우박사처럼.)
(예화) 한국의 슈바이쳐로 불리우는 장기려 박사 이야기.
그는 부산에서 40년 외과의사 생활을 하신 신앙인이시다.
북한에 5남매와 아내를 두고 월남하였다. 한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기 위하여 나는 혼자 살다 가겠노라”고 했다.
얼마나 굉장한 고백인가?
40년간 의술로 봉사하셨다. 무상으로 수술을 많이 해 주었다.
입원비를 못 내서 퇴원 못하는 사람에게 도망가라고 했는데,
새벽에 와보니 아직도 안가고 있다.
그래서 뒷문을 열어 주면서 빨리 도망가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자기 돈으로 물어 주었답니다.
도망시킨 일은 잘못되었지만, 지혜가 있었다.
그는 이 시점에서 자비를 베푸는 것뿐이다.
오랜 세월 다 보냈다. 이제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 남은 시간에는 자비를 베푸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오늘까지 충실하지 못했다할 찌라도 이제부터라도
내 인생의 남은 세월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오늘 우리는 놀라운 지혜를 얻은 것이 된다.
(결 론)
모든 것에 끝이 온다. 종말이 있다.
본문의 청지기는 불의했다. 불의한 청지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은 지혜가 있었다.
무슨 지혜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있는 지혜가 있었고,
끝이 있음도 알고, 남은 기회를 살리는 지혜가 있었다.
이것을 주님께서 칭찬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말론적인 지혜로 영생의 나라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줄 믿습니다.
이런 지혜로 이제라도, 남은 세월, 앞으로의 삶을 잘 선용하여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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