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8일 금요일

복음의 핵심 요소 [4기둥] / 요 3:16

      복음의 핵심 요소 [4기둥] (요 3:16)

기독교란 무엇인가?

기독교요한복음 3:16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 구절 속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들어 있고 복음이 요약되어 있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 (요 3:16)작은 복음이라고 했다.

(요 3:16)특징은 문체가 단순하지만, 그 진리는 참으로 깊다.

이 요절은 누구든지 쉽게 외울 수 있고,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다.

(요 3:16)에 담겨 있는 [복음의 핵심적인 진리, 4기둥]을 살펴 봅시다.

1) 복음의 근원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다.

그러니까 복음의 근원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주어이다.

복음을 믿는 우리 신앙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제일행동을 말한다.

구원이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구원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고, 그가 독생자를 주신 선수적인 사랑(롬 5:8)에 있고,

우리 인간편의 노력이나 결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앙의 시작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가 우리에게 찾아오셨다.

♬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내 내 영혼 거듭난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제일 행동복음의 근원이 있고, 믿음의 기초가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제일 행동이 있기까지는 거기에 도울수 있는 인간의 행동은

전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믿음의 시작이 내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제일 행동에 응답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이시며, 인간 생활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이 물질적인 세계는 물론 영적 세계까지도 다 만물의 근원자이시다.

열매가 있으면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으면 씨앗이 있다.

그렇다면 그 씨앗은 어디서 생긴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창조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이 제 1 원인이라는 말이다.

계속 추적해 들어가면 제 1 원인창조주 하나님이 된다.

우연히 만들어 졌다는 말은 말이 안되고, 참으로 무식한 말이다.

이와같이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그 사실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불교와 다른 자연 종교는 인간이 도를 구하여서 오도(悟道)하고 성불(成佛)하는

경지에 나간다고 본다. 즉, 그들의 구원은 인간에게서 출발하여 하나님께로 간다.

땅에서 출발하여 하늘을 향해 간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계시 종교)는 그와 정반대이다.

구원의 시작하나님이시다. 하늘에서부터 을 향해 열린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주신 그 사건에서 신앙의 근원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할찌라도, 하나님의 창조와 과학자들의 업적에는

근본적인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무(無)에서 유(有)창조하셨고, (Creation/바라)

과학자는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재료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to Make/아사)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려 지구 주위를 돌수 있게 한 것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우주의 물리적 법칙과 원리, 역시 하나님이 창조해 놓으신 것으로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의 하는 일이란?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물질과 법칙에 토대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과학의 세계만이 아니다. 인간의 만사(萬事)가 다 그렇다.

더욱이, 우리 신앙의 문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님이 먼저 보이신 계시,

그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 주신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것임을 말한다.

(엡 2:8)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 복음의 내용 :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믿음]이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제 1 행동에서 출발되었는데,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제 2 행동 [믿음]이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그를 믿는 [믿음] 밖에 없다.

율법주의자들처럼 행함이 아니며, 불교도들처럼 오도(悟道), 과학자들처럼

탐구(探究)도 아니며, 도덕주의자들처럼 수양(修養)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이 우리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과연 놀라운 복음이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로 여기시고...

하박국 선지자는 역경에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진리를 받았다.(합 2:4)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자마다 모세가 높이 쳐든 놋뱀을 믿음으로 보는 자마다 살았다.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이런 일들은 구약에서 보여주신 복음의 예표들이었고, (요 3:14-15)

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밝히 보여 주셨다.

주님의 지상 생애를 통해서 직접 강조하신 것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것이고, 오순절 이후 성령을 통해서 지금도 계속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인류에게

[믿음]을 주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하는 대교리를 밝히고 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의식화되어 생명을 잃은 교회에 대하여 개혁의 기치를 들고,

그가 외친 강령은 역시 [오직 믿음, Sola Fide]였다.

그러나, 수시로 이 복음의 진리가 등한시 되고, 무시되고, 감소되어 왔다.

복음3대 적(敵)은 :

의식주의(형식주의)

율법주의(공로주의)

금욕주의(고행주의)이다.

[믿음의 길]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되거나, 감축될 수 없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이와같이 [저를 믿으면] 라고 하는 인간의 제 2 행동은 :

오직 [믿음]인 동시에 그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독생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복음이지만, 그 대상잘못 찾으면 오히려 가 된다.

다신교를 따르는 모든 이방 종교에서는 [무엇이든지 믿으면 된다]고 하는 바,

믿음 자체에 중점을 두지만, 유일신을 믿는 우리 기독교 신앙에는 신앙에 앞서서,

그 신앙의 대상이 절대로 중요한 조건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은 창조주이시며, 유일의 신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으로

인류의 유일한 신앙의 대상이시다.

아브라함도, 바울도, 어떤 성현이나 위인도 우리 신앙의 교사는 될 수 있어도,

신앙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요 3:16 하) 누구든지 (예수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행 16:31)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나이아가라 폭포 상류에서 배가 뒤집혔다. 땅 밖에서 밧줄을 던져 주었다.

어떤 사람은 지나가는 통나무를 붙잡았다. 이 사람은 떨어져 죽었다.

무엇을 붙잡느냐가 중요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한다.

오직, 신앙의 유일한 대상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제 1 행동을 대하는 인간의 반응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곧 구원의 길이다.

3) 복음의 범위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복음의 범위[누구든지]이다.

남녀노소(男女老少), 지위고하(地位高下), 동서고금(東西古今), 인종나이,

민족의 차이없이 누구든지 다 이 복음초청되어 있다.

① 마태복음유대인을 대상으로,

② 마가복음이방인을 대상으로,

③ 누가복음전인류를 대상으로,

④ 요한복음은 세계 모든 민족을 초월하여 기록하여 주셨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이 복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명상을 강조한다.

인도같은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여 나무 그늘에 앉아

공상하기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불교가 그런 지역에서는 적합할지 모르나,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가는 뉴욕같은 지역에서는 적합하지 못하다.

회교도들의 낙원에는 가만히 앉아서 먹을 수 있고,

거기에는 눈 큰 여자가 많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아랍세계의 유토피아를 말하고 있지,

다른 나라에서는 통할 수 없는 그들만의 이상(理想)일 뿐이다.

아라비안나이트, 그리이스 신화, 고대 동양의 전설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 것들이 재미는 있을 지 모르지만, 현대인의 마음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이 수천년전에 기록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의 마음에 감동과 은혜를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동서고금(東西古今)과 기타 모든 인간의 차이초월한

불변의 진리이다. 땅위의 모든 철학이나, 종교그 시대와 지역의 제한을 받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시대와 지역과 인종을 초월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누구든지]복음이다.

이 되면 집집마다 자기 집의 전등불을 킨다. 그러나 은 여전히 어둡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태양이 떠올라서 모든 집에 환한 빛을 비추어 주듯이,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하는 주(主)께서 모든 사람의 주(主)가 되시어,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0:12)

예수님야만인주(主)가 되시는 동시에 문화인구주도 되신다.

예수님어린아이이 되시며, 늙어 죽어가는 분소망이 되시고,

땅 위의 어느 지역과 모든 시대민족환경의 차이를 막론하고,

모든 자의 구주가 되신다.

그래서 복음의 범위[누구든지]이다.

그 안에 여러분이 들어 있다.

4) 복음의 목적 :

복음의 목적[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 얻는 이익이 많다.

그러나 신앙의 근본적인 목적영생에 있는 것이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어떤 이들은 현세의 문제도 급한데, 언제 내세의 문제까지 신경쓰겠느냐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세주의, 기회주의로 살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신앙을 하나의 수양이나, 마음의 위로나, 현세의 행복을 위한

것으로만 보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곳에 현세의 문제 역시

해결이 없는 것이다.

소경은 멀리 내다 보지 못함으로 그 걸음에 자신이 없다.

그는 건전한 두 다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리를 자신있게 내 딛지 못한다.

마음에 영생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의 생활은 이렇게 불안하고 위험한 것이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금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빌 3:20) 우리의 시민권하늘에 있는지라.

(벧전 1:4) 우리의 소망은 썪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라.

요한계시록에는 이 세상 끝에 있는 영원한 나라의 모습과 영생을 누릴

성도의 복락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기독교가 현세를 결코 무시하거나, 염세적이지 않다.

오히려,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밝고

기쁘게 살아간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차게 살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려고 힘쓰며 산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되게 인간 생활을 행복되게 기여한 분들은 거의 예외없이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중요한 것은 주객(主客)의 문제이며, 선후(先後)의 문제이다.

영생이 신앙인의 주목적(主目的)이며, 먼저 그의 나라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

현세의 모든 축복도 더하여 주신다고 하셨다. (마 6:33)

부우스는 임종시에 최후에 한 말 : 하나님의 약속확실하다”고 했고,

무디 목사님 : “속세는 멀어지고, 천국이 가까이 다가 온다.”

스펄천 목사님 :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

찰스 핫지 목사님은 곁에서 울고 있는 딸에게 “울지 말라, 죽음은 이별이 아니고,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잠시 후에 다시 만나자.”

이 모든 분들은 위대한 목회자요, 부흥사요, 설교가요, 신학자였지만,

내심(內心)에는 이런 확고한 영생의 보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놀라운 업적과 사역을 이루었던 것이다.

(결 론)

오늘 (요한복음 3:16)이 담고 있는 복음의 진수를 말씀드렸다.

① 복음근원 : 독생자를 보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제 1 행동

② 복음내용 : 거기에 응답하는 우리의 반응은 [믿음]이어야 하고,

③ 복음범위 : 이 복음의 범위와 대상 [누구든지] 예외 없고,

④ 복음목적 : 궁극적인 목적[영생]이다.

4가지의 진리가 집모퉁이의 4기둥처럼 튼튼히 서서, 우리 신앙의 집

견고해 지기를 바라며, 이 귀한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주가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아 멘)

아직도, 예수님영접하지 못하신 분이 계시면,

이 시간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예수님영접하고 믿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 결단하고 예수님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요 1:12)

천국 백성이 되어, 영생선물로 받게 됩니다.

(요일 5:12) 아들(예수님)이 있는 자(영접한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