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7일 목요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 마 5:6, 요 7:37, 시 107:9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마 5:6, 요 7:37, 시 107:9)
사람에게는 4가지 목마름이 있다.
1) 육신적인 목마름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물이 절대 필요합니다.
태아 : 90%, 신생아 : 77%, 어린이 : 70%, 어른 : 60%, 노인 : 50%가 이다.
갈증은 배고픔보다 더 참기 힘들다.
밥 없이는 40일까지도 산다. 그러나 물 없이는 10일을 못 넘기고 죽는다.

2) 지식의 목마름이 있다.
그래서 독서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갈증이 있는 학생들이 공부도 잘 한다.
3) 사랑의 목마름이 있다.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사랑과 애정을 먹고 산다. 사람이 밥으로만 살 수 없다.
사랑을 먹어야 건강한 사람이 된다. 
(예화) 고아원 아이들
4)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목마름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영적인 갈증을 해결 받아야 행복하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건강한 크리스챤이 되기 위해서는 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로운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전에는 세상의 재물과 명예에 목마르게 구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에는 변하여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중생한 사람의 변화이다.

주리고 목마른다는 말은 인간에게 가장 갈급하고 애타하는 것의 표현이다.
그래서 그것이 채워지기까지는 다른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만족이 없다는 말이다.
굶고 주리고 목이 말라 죽게 된 사람에게 금덩어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오페라 극장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찿기에 가급함 같음을 말한다. (시 42:1)

(예화) 골프 치는 사람들을 보면, 골프에 주리고 골프에 목마른 사람들이다.
우리는 골프가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리고 목마름을 느끼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배고파도 고픈 줄 모르면 병든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양식에 배고픔을 느끼고 은혜를 사모한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밥이 필요한데도 전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거식증이라고 한다.
아주 무서운 병이다. 거식증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
못 먹어서 빼빼 말랐는데도 밥이 안 먹힌다.
예수 믿으면서도 영적인 거식증에 걸리면 말씀 안보고, 기도 안해도 배고프지 않다.
영적인 거식증에 걸리면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이런 것이 영적인 나병과 같다. 신경 계통이 마비가 된 것이다.
몸의 경보 장치가 고장이 난 것이다. 치료 받으려면 영의 병원인 교회에 와야 한다.
교회와서 함께 예배드리는 가운데 영적인 갈증을 해결 받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세상 것으로는 결코 배부름이 없다. 만족이 없다.
그것은 얻으면 얻을수록 바닷물처럼 점점 더 갈증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채워지면 참 만족배부름이 있다.

사람은 의(義)를 따라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할 때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짐승에게는 부끄러움이 없으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는 수치심이 있다.
사람은 자기의 죄와 잘못을 깨달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인간이기 때문이다.

칼라일은 말하기를 <수치심이 모든 덕의 기초가 된다>고 했다.
어거스틴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수치이다>고 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은 의(義)를 사모하게 되어 있다.
얼마나 갈증을 느끼십니까?
사람이 왜 만족이 없고 행복이 없습니까?
스스로 거짓되고 의로움이 없으니 부끄러운 것이고 힘이 없는 것이다.

성도의 부끄러움이란?
옷을 잘못 입었다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죄를 지어 부끄러운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성도는 얼굴이 못생겼다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요, 돈을 적게 번다고 수치도 아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이 살려 달라고 하는데도, 그냥 팔아버렸기 때문에
나중에 요셉 앞에 섰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고 부끄러웠다.
형들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예수님이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실 때
베드로는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히려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까지 했다.
그래서 베드로는 부끄러웠다.
주님과 함께 고난받을 줄 모르고 두려워했던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회개도 하고 새로와질 수 있다.
불의와 거짓을 버리고, 의를 사모해야 한다.
의롭고 진실하게 살면 부끄럽지 않다.


ㄱ)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신나는 순간이 있다.
애굽 바로 왕이 이스라엘을 핍박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반전이 이루어지면서
애굽 왕 바로가 박살이 나기 시작합니다.

ㄴ) 에스더서에도 반전의 역사가 나타난다.
악한 하만이 권력을 휘두르면서 모르드개를 괴롭혔는데 어느 순간부터
또 역전이 이루어지면서 하만은 자기가 세운 장대에 자기가 매달려 죽는다.
성경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책이다.
죄악은 심판하고 의로운 사람의 손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는 책이다.

ㄷ) 의로우신 하나님은 믿음의 청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건져 주셨다.

ㄹ) 의로우신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건져 주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셔서 의로운 욥, 의로운 요셉, 의로운 다니엘을 구원해 주셨다.

그러나 성경에서 의(義)의 크라이맥스예수 그리스도의 부할이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대 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이 거짓 증거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생각했다. 좋아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하나님의 승리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의의 승리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
2) 해갈 방법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갈을 받아야 한다.
(암 8:11)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육신은 물과 양식을 먹어야 살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산다.

(마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왜 심령이 컬컬하고 답답하지요? 생수의 말씀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초가 물을 못 받으면 메말라 죽듯이, 말씀의 은혜 받지 못하면 영혼이 마른다.

(벧전 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의(義)의 길로 인도하는 등이고, 빛이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이요 내 길에 이니이다

(예화) 사람이 아무리 미리 많이 해 놓아도 안 되는 것 3가지가 있다.
1) 잠 : 아무리 많이 잠을 자도 또 졸리다.
오늘 많이 잤다고 내일 안 졸리는 것 아니다.
2) 운동 : 오늘 아무리 많이 운동해도 내일되면 또 해야 한다.
3) 식사 : 미리 많이 먹어 두지 못한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내일 되면 또 배고프다.
이와 같이 말씀도 매일 매일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
오늘 성경 100장 읽었다해도, 내일 다시 또 말씀을 읽어야 한다.
매일 매일 영의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하고, 매일 매일 신령한 생수를 마셔야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
3) 해갈 방법 : 영과 진리의 예배를 통해서 해갈이 된다.
동물들은 예배가 없다. 제사드리는 법이 없다. 짐승은 숭배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사람이 사는 곳에는 신을 찿고 예배 행위가 있다.
아무리 미개한 부족 국가에 가도 종교적 제사 행위가 있고,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 문화 민족도, 자기 나름대로의 신에게 제사행위, 예배행위가 있다.
창조 때부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앙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문제는 참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돌, 나무, 태양, 혹은 짐승을
신으로 모시고, 거기에 제사하거나,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제사드리는 것이 문제이다.


(예화) 수가성 여인에게도 인생의 목마름이 있었다.
주님은 이 여인의 목마름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을 만나는데 있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데 있다고 하셨다.

(요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적으로 갈한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말씀성령으로 우리의 영이 해갈된다.
예수님으로 채워지고, 말씀으로 채워질 때 배부르고, 만족하게 된다.




(결 론)
문제는 영적인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알콜에 중독되고, 마약을 한다.
목마를 때, 물도 물 나름이다. 썩은 물을 마시면 안 된다.
콜라 같은 것을 마셔도 안 된다.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진다.

생수를 마셔야 한다. 예수님이 생수이시다.
(요 7:37)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셔서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
배부르다는 말은 포만감을 말한다. 배부르다는 것은 행복함을 말한다.

영적으로 배부르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을 말한다.
성령은혜로 충만한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으로 충만해 지니까 세상의 좋은 것을 다 배설물처럼 버렸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하나님은 그 영혼을 만족케 해 주신다고 하셨다.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의에 주리고 갈급한 심령이 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강수로 만족하고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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