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0일 일요일

화평케 하는 자의 복 ​ / 마 5:9, 엡 2:13-18


화평케 하는 자의 복 (마 5:9, 엡 2:13-18)
(예화)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오래 전에, 충청도에 있는 이발소에 미국인 손님이 들어왔다.
이발사가 인사했다. 왔시유? (What see you?) = 미국 사람은 뭘 보느냐?고 이해했다.
그래서 거울을 본다고, Mirror(밀어)라도 했다. 영어로 Mirror(밀어)가 거울이다.
그래서 이발사가 그 미국 사람 머리를 싹 밀어버렸다고 한다. (ㅋㅋㅋ 유우머)

서로 서로 대화를 했지만 말의 뜻이 바로 통하지 못하면 싸우고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은 서로 하는 말이 오해가 되어서 화평이 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가만히 보면 교회는 화목하기만 해도 부흥된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화평'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에이레네' 이고, 히브리어 '샬롬' 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사할 때에 '샬롬' 으로 인사한다.

화평이란? 소극적 의미로 분쟁이 없고 싸우지 않는 상태를 말하지만,
적극적인 뜻으로 사랑긍휼용서함으로 화목한 상태를 말한다.


본문은 “화평한 사람”이 아니라, 화평케 하는 사람”을 말하고 있다.
화평케 하는 자 즉, 화평을 이루어 내는 사람, 피스 메이커(Peace Maker)이다.
불화한 공동체, 불화한 인간 관계를 화목하게 만들고, 화평케 만드는 사람이다.

(예화) 싸움을 하는데 3종류의 사람이 있다.
1) 싸움 방조(幇助)자 : 싸움을 일으키고, 이간질해서 싸움을 붙이는 사람.
2) 싸움 방관(傍觀)자 : 누가 싸울 때 구경만 하는 사람이다.
3) 싸움 방지(防止)자 :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다.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다.
오늘 말씀에서 화평케 하는 피스메이커는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화평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또 화평을 말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왜 세상에는 화평이 없습니까?
화평이 무엇인지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평올바른 관계에서 주어지는 선물이다.
1)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욥 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회개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때 화평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을 때에는 결코 평화를 가질 수 없다.

(예) 다윗 왕은 범죄한 후에 잃어버린 평화, 괴로운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 32:3-4)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2) 이웃과의 관계도 올바르게 있어야 화평을 누릴 수 있다.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가족이나 이웃과 화목하지 못하면 평안할 수 없다. 마음을 넓히고 살아야 한다.


(예화) <뱀댕이 속알머리>: 뱀댕이는 15Cm 되는 물고기인데 너무 속이 좁고
성질이 급해서 자기 성질에 기절해 죽는다는 것이다.


3)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화평케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려면 예수님처럼 중보적 역할이 필요하다.

(예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중국에서 두 나라가 서로 싸우는데, 가만히 보니까 더 싸우다간 두 나라가
다 망하게 생겼다. 이것을 알고 지혜로운 사람 하나가 중간에 나타나서
이쪽 나라에 찾아가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비유해 말하면 당신네 나라는 만월같고 저쪽 나라는 초생달 같은데
뭐 큰 나라가 쪼그만 나라를 뭘 치려고 하십니까?"
그러니까 그 왕이 기분이 좋아져서 전쟁을 그만두려는 마음이 생겼다.
이 지혜자가 반대편 나라에 가니까 :
"아니 그 나라는 만월이고 우리는 초생달이라고? 우리를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
"그게 아닙니다. 만월은 이제부터 기울 것이고, 초생달은 이제부터 커질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깐 절대로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오, 그렇군 !"
그래서 안 싸우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지혜를 가지고 화목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불화한 사람들 중간에서 화목케 하는 화목둥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피스메이커이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불화케 하는 트러블 메이커 (Trouble Maker)가 있나니
저희가 사탄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예화) 어떤 부부가 사이가 너무 나빠져서 오래 동안 다투다가 결국은 이혼하게 되었다.
이혼하기로 결정하고 그 다음에 물건을 나누게 된다.
이것은 남편의 옷, 이것은 아내의 옷, 이것은 남편의 구두, 이것 아내의 구두... 등등
다 살림을 둘로 나누는데 마지막으로 딱 하나 남은 것이 있다.
그것은 몇 년 전에 불행하게 외아들이 죽었는데, 이 죽은 아들의 것을 다 없애 버린 줄 알았는데
여기에 아들의 일기장이 하나 발견되었다.
아버지는 이건 내가 가져가겠다고 그러니까 엄마는 "아니요. 내 아들이니까 내가 가지겠다"
서로 다투다가 그 일기장을 열어 보았다.
일기장에는 "아빠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아빠, 엄마 싸우지 마세요."
이혼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간절한 얘기들이 거기 써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죽었다.
이 일기장을 보다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이 아이의 소원을 이루어줍시다." 하고,
다시 화해했다는 이야기이다.


♥ 화평을 위한 실제적인 적용 :
1) 을 조심하라.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이다.
입만 잘 제어하고 다스려도, 화평을 이루며 살 수 있다. 이 이 항상 문제이다.
(잠 26: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말쟁이가 많으면 다툼도 많다.
입을 조심하는 것이 화평의 제일 근본책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의 말만해야 한다.
(약 1:19)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어떤 말을 들었다 해도 즉시로 대꾸하지 말고, 성내기도 더디하라는 말이다.
기도만 하고 말을 적게 해야 한다.

시편 기자의 기도가 필요하다.
(시 141:3)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예화) 감미사내 (=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내 탓입니다.)
T.S.L.M. (=Thanks, Sorry, Love, My Fault.) 이런 말만하는 공통체는 싸울 일이 없다.
(예화) 선반 위에 올려놓은 참기름 병을 며느리가 일어나다가 그만 실수로 떨어뜨려 깨뜨렸다.
어머님, 죄송해요.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니까,
시어머니는 : 아니다. 내가 거기 올려놓는 것이 아닌데... 내 탓이다.
시아버지가 : 아니다. 내가 선반을 좀 높이 만들었으면 안 그랬을 것을 .... 내 탓이다.
아들이 하는 말 : 아닙니다. 제 탓입니다. 제가 키 작은 아내를 얻었으면 괜찮았을 것을...(ㅎㅎ)
그래서 다같이 웃고 화목하게 살았답니다.



2) 잘 듣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 듣고 오해하게 되면 화평이 깨어진다.

(예화) 어느 믿음 좋은 며느리가 있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핍박이 얼마나 심한지 모른다.
시집살이도 힘들고 교회도 잘 못나가게 한다.
그래서 눈물로 기도하고 또 이 찬송을 부르며 살았다.

♬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주님 네편에 서서 항상 도와주리.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심방대원들이 지나가던 길에 들어 왔다.
그 시어머니에게 그러시지 말고 시어머니도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그랬더니 화를 내면서 며느리가 부르는 찬송을 들어보니 도저히 못 나가겠다고 한다.
무슨 찬송인데요? 시어미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이렇게 노래하더라는 것이다.(ㅋㅋ)
잘못 듣고 오해해서 시험에 든 것이다. (단단히 오해 한 것이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 보여주며 오해를 풀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잘 들어야 한다.


3) 사랑의 눈으로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다. 완전한 인간은 없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어떤 허물도 덮어주고 가리워 준다.
(잠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예화) 영어로 시어머니는 Mother-in-law : 즉, 법적인 어머니라는 말이고,
며느리는 Daughter-in-law 법적인 딸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볼 때는 율법의 눈으로 보는 어머니이고,.
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볼 때는 율법을 가지고 보는 딸이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친정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른 것 같다.
시어머니가 율법이 아닌, 사랑의 눈으로 친딸처럼 대해 주면 화목하게 살 줄 믿는다.

옛말에 “죽 먹은 그릇은 딸에게 설거지시키고, 비빔밥 먹은 그릇은 며느리에게 시킨다” 는 말이 있다. 
왜 그런가? 먹은 그릇은 씻기가 쉽지만, 비빔밥 먹은 것은 밥알과 고추장이
묻어서 더 힘주고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아무리 해도 율법적인 면 많은 것 같다.
율법적인 관계는 언제나 비평을 하고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러나 친정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준다.

(예화)  어떤 권사님이 결혼한 아들 집에 갔는데 아들이 아침에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을 준비하니까, 시어머니가 화가 났다. “며느리는 어디 갔냐? 고약한 것 같으니..!
어디, 제 남편을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준비시키다니?” 노발대발했다.
그래서 며느리가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른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 권사님이 딸 집에 갔는데 사위가 앞치마를 두루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더니,
"아이고~ 우리 사위 최고다! 이렇게 자기 아내를 이렇게 사랑하는 이런 훌륭한 사위가
어디 있느냐?" 고 했다고 한다. 참으로 말이 안 된다.
아들이 부억에서 식사를 돕는 것은 도저히 며느리 꼬락서니 사나워 볼 수가 없고,
사위가 딸을 위해서 아침 식사 준비하는 것은 그렇게 예쁘게 보였다는 것이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율법의 눈인가? 사랑의 눈인가? 비판적인 눈인가? 은혜의 눈인가?
하나님이 나를 은혜와 사랑과 용서의 눈으로 보아 주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결 론)
"화평케 하는 자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오늘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화평을 위해 오셨고 피스메이커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 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3-14)
이것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 주셨고, 인간 사이에서도 화평하게 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겨 주셨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화목케 하라는 직책을 받은 자들이다.
나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사이에 서서 불화한 관계, 원수 된 관계를
주님의 사랑 복음으로 화평케 하는 자, 피스메이커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될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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