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 (창 5:21-24, 히 11:5-6)
LA에서 뉴욕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①자동차 ②기차 ③비행기 ④걸어서
정답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가장 빨리 간다.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인가?
① 숯불갈비 ② 사시미, 스시 ③짜장면 ④ 호텔 부페
정답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으면 뭘 먹든지 맛있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 동행하느냐? 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
그래서 인생의 동행은 매우 중요하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며 살았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삶은 어떤 삶인가?
(1) 세상 속에서 평범한 삶이다. (22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계룡산이나 수도원에 들어가서 사는 삶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생활(日常生活)속에서 : 학생이라면 공부하고, 사업가는 사업하고,
농부는 농사일을 하고, 각각 자신의 생활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생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너무 거창하고 신비스러운 삶이 아니다.
(22절)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며....
특별한 기록이 없다. 농사짓고, 가정생활하면서 자녀를 낳았다고 했다.
(예화) 밀레의 <만종> 이라는 그림이 있다.
노동의 신성함도 느낀다.
믿음의 부부가 열심히 농사를 짓다가 저녁에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오자,
일하던 손길을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모습이다.
(오늘도 일할 수 있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이런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다.
누구와 동행하기 위해서는 3가지가 같아야 한다.
① 뜻 ② 방법 ③ 속도 : 그 중에서도 뜻과 마음이 맞아야 한다.
(아모스 3: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여행을 해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함께 여행하기가 참으로 불편하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아주 간단하다.
내 뜻은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면 된다. 너무 너무 간단하다.
문제는 내 욕심을 못 버리고, 내 뜻대로 해 달라고 떼 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미래를 모르고, 또 온전하지 못하다.
거듭났어도 죄성(罪性)이 남아 있어서 그릇 판단하기 쉽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시니,
불완전한 나의 뜻은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지혜이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며 살 수 있는가? 아주 쉽다.
주님이 싫어하는 것은 나도 하지 말고,
주님이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면 된다.
이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예화) 고스돕 치는 것, 하나님이 좋아하시겠다 싶으면 하세요.
주일 날 등산가는 것, 하나님이 좋아하시겠다 싶으면 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 싫어하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 말씀대로 살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된다.
그리고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다윗처럼) 먼저,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 이렇게 할 까요? 저렇게 할 까요? 갈까요? 말까요?
본래 죄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여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내 뜻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3) 에녹의 인생의 전환점 :
(21-23절)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365세를 살았더라
그가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 전에 하나님과 멀리한 것은 아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 계기가 므두셀라를 낳은 것과 연관된 것이다.
므두셀라 = 무트(죽다) + 솰라흐(보내다)의 합성어 이다.
즉, 그 아이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 므두셀라 이름의 뜻이다
그런데 어떤 부모가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짓겠습니까?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이름을 죽는다는 이름으로 지을 부모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이런 이름을 지을 수 없다.
이렇게 추상해 볼 수 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에녹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 세상에 인간 창조한 것을 후회한다.
사람들의 영혼은 죽었고 육체가 되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죄만 지으며 사는구나.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할 것이다.
언제 그 심판을 하는고 하면?
너에게 아들을 하나 낳게 해 줄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므두셀라>라고 해라.
그 이름의 뜻은 그 아들이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에녹이 <므두셀라>가 아플 때 마다, 에녹은 두려웠을 것이다.
아기가 감기만 걸려도, 므두셀라가 몸살이 나도...
아이쿠! 이 아들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데....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에녹은 하나님이 천국으로 데려갔지만,
마침내 그 어느 날 므드셀라가 죽었고, 그 날에 하나님의 홍수 심판이 임했던 것이다.
정말 그랬는지 성경을 찾아 봅시다.
1)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25절)
3)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다.(28-29절)
4) 노아가 600세 되는 해에 홍수가 임했다.(창 7:6)
그것은 므두셀라가 죽은 나이가 969세(27절)이다.
그러므로, 므두셀라가 죽은 그 날에 홍수 심판이 임했다.
에 녹 (65세) 증조부
* * * * * * * * * * * * * * * * * * * * *
므두셀라 (187세) 할아버지
라 멕 (182세) 아들
+) 노 아 (600세) 손자 (창7: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므두셀라 (969세) : 홍수심판 (창 5:27)
187세(할아버지) + 182세(아들) = 369년 + 손자(노아) 600세 나이 = 969세
그러므로 아들 므두셀라가 죽던 그 날,
노아가 600세 되는 그 날에 심판이 임한 것이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그 심판을 의식하면서부터
영적으로 깨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나의 인생도 끝이 있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죄나 지으면서
아무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심판이 있다는데... 두렵고 떨림으로 살게 될 것이다.
왜 아무렇게 죄 짓고 사는가?
인생의 끝과 심판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
(4) 하나님을 즐거워(Enjoy)하는 삶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세상이 모르는 신비스런 행복이 있다.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enjoy 하는 삶이다. 영적인 희열이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니 길이 평탄하고, 어려움이 와도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감싸주시는 사랑을 느낀다.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 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죄를 짓나 보고 있다가 벌이나 줄려고 두 눈 부릅뜨고,
살피시는 분이 아니시다.
물론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오히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마음 아퍼하시고, 돌이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생각을 스바냐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했다.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 때문에 기쁨이 넘치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했다. (시 43:4)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큰 기쁨이 되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살았다.
♪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예화) 열심히 일 하는 사람과 일을 즐기는 사람 중에 누가 이길까요?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일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열심이 있는 신자라도, 신앙을 즐기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
신앙이 좋다는 말은 열심보다는 하나님을 더 많이 즐거워 한다는 말이다.
교회 일에 열심이 있는 사람보다도 신앙생활을 누리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신나고, 늘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한다.
세상에서 주는 재미보다도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기쁨이
훨씬 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 즐겁다.
♪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소요리 문답 제 1 문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돈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 명예를 얻어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 목적이다.
에녹이 살던 시대도 악했고, 경건치 않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세상 속에서
에녹은 요동하지 않고 세상과 구별된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결 론)
최고의 인생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다.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1) 에녹은 평범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다.
2) 동행하려면 내 뜻은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은 나도 싫어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면 된다.
3) 에녹 인생의 전환점 :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경건하게 살았다.
4)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Enjoy)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도 에녹처럼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어느 좋은 그날 아침에,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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