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1일 월요일

제 9 복, 받는 것보다 주는 자의 복. / 행 20:35, 눅 6:38.



제 9 복, 받는 것보다 주는 자의 복. (행 20:35, 눅 6:38)
오늘 말씀 (행 20:35) 하반절에 :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권면하는 설교 말씀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 주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산상수훈의 8복에 이어서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이 있다”는 말씀을 “제 9 복” 이라고 한다.
산상수훈8복에 이어서 제 9 복의 삶을 살면 더 복된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받는 것도 매우 귀한 것이고 축복이다.
그러나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귀하고 복되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다.
(고전 4:7)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인생도, 재물도, 재능도, 가정도, 햇빛과 공기도 다 거저 받았다.
특별히 구원은혜의 선물로 받은 것이다. (엡 2:8)
거저 받은 줄 알면 거저 줄 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부요해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데 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 주는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받기만 한 사람도 없고, 주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인생Give and Take 인생이다.
줄 때도 내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을 나눈다고 생각해야 한다.
마치 내 것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색을 내기도 하고, 빼앗긴 기분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주고도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받는 자도 은혜로 받고, 주는 자도 은혜로 주어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주고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자만이 복이 있다.

왜 주는 것이 복인가?
1) 주는 것은 성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 일수록 받기만 한다. 태아와 신생아는 다 받기만 한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섬기고 베풀기도 한다.
문제는 어른 되었는데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을 심리학에서 “유아기적 고착증”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성인 아이”(Adult Children) 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성인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이 가정의 가장이 되면 그 가정은 불행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 회사의 사장이 되면 그 직장의 사원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이런 사람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면 그 나라 백성은 고통이다.
(예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 (실버스타인) :
한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늘 자기에게 놀러 오는 한 소년을 위해서 자신을 준다.
그늘이 되어 주기도 하고, 열매와 잎을 주기도 했다.
나무와 소년을 서로 서로 행복했다.
그러나 소년은 커가면서 좀 더 다른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나무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돈이 없으니 내 열매를 따서 팔면 된다고 했다. 나무는 행복했다.
소년은 다시 와서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무는 생각하다가 자신의 굵은 가지를 갖다가 집을 지어 보라고 했다.
나무는 행복했다. 왜냐하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소년은 다시 와서 바다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무는 생각하다가 그러면 자기를 베어다가 배를 만들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 때도 나무는 행복했다. 왜냐하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간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이 소년은 늙은 노인이 되어 그 나무 곁에게로 온다.
그러나 나무는 이제 늙어 버린 소년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슬펐다.
그런데 이 늙어 버린 소년은 이제 자기가 피곤해 졌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나무는 아직도 자기에게는 그루터기(나무 밑둥)가 남아 있으니
자기 위에 걸터앉으라고 말한다.
늙은 소년은 그 나무 밑둥에 걸터앉았다.
나무는 행복했다. 왜냐하면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다시 한번 “나무는 행복했다. 왜냐하면 줄수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소년의 행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 소년은 행복을 배우지 못했다.
그 소년은 그 나무와 오랜 세월을 함께 했고 그 혜택을 받았으면서도,
받기만 하고, “주는 것” 의 행복을 배우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은 빼앗는 인생이 행복한 줄 아는데, 이것이 착각이다.
빼앗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주고 베풀 때 행복이 있는 것이다.


왜 주는 것이 복인가?(둘째로)
2) 하나님은 주는 자에게 더 많은 것맡기시기 때문이다.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실 것 같습니까?
자기만을 위하여, 자기 가족들만을 위하여 사용하는 사람에게 맡길까요?
이웃을 돌아보고 베푸는 사람일까요?

(잠 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예화)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유명한 바다가 있다.
하나는 갈릴리바다. 또 하나는 사해바다이다
사해 바다는 문자 그대로 죽음의 바다이다. 사해 바다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살지 못한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에는 싱싱한 물고기들이 많이 산다.
갈릴리 바다는 헐몬산에서 내려오는 물들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요단강을 통해서
물을 내어 보내 주기 때문에 항상 물이 계속 순환되어서 깨끗하고, 건강한 물고기들도 많고
또한 주변에 수목이 우거져 있다.

그러나, 사해 바다는 갈릴리 바다에서 흘러준 물을 받기만 하고, 다른 곳으로 내보내지 않기 때문에 물이 계속 고이기만 한다. 그래서 죽은 바다, '사해(死海)'라고 부른다.
물을 내어 주는 바다는 물고기도 풍성하고 건강하다.
그러나 내어 줄줄 모르는 사해 바다는 짜고 가난하고 물고기 한 마리 없는 죽음의 바다이다.
이것은 영적 원리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남에게 주고 베풀면 더 풍성해 지고, 움켜 쥐면 가난해 지고 죽는다는 교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베푸는 자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시고 풍성하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복음송)
♬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한 닢, 움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 위에 가득하네...
사랑은 참으로 베푸는 것, 섬기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왜 주는 것이 복인가?(셋째로)
3)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내어 주시는 분이시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다.

뿐만 아니라,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햇빛도 주시고, 공기도 주시고, 자연도 주시고, 오곡백과도 주시고,
가정도 주시고, 자녀도 주시고, 교회도 주시고, 성령님도 보내 주셨다.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일생 주는 생애였다. 주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주는 삶의 절정이었다.
우리도 내어 주는 삶을 통해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줄 것인가?
1) 사랑을 주라.
사람은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산다.
어떤 사랑을 주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 사랑을 전해 줄 때, 받는 자도 복이 되고, 주는 자도 복이 된다.

"흘러가는 물도 떠 주면 적선이 된다." 는 말이 있다. 흘러가는 물은 내 것이 아니다.
그래도 봉사 정신으로 떠 주면 이것이 사랑이 된다.

2) 물질을 주라.
사람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질이 필요하다.
옷도 필요하고, 양식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이 있다.

(신 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 고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재물이 있는 자는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손을 펴라고 했다.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며 살라는 말이다.

(행 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이것이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이었다.


3) 복음을 주라.
복음은 사람을 구원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은 지옥 갈 인생을 천국가도록 하는 복음을 전해 주는
것이다. 이 복음보다 더 크고 귀한 선물은 없다.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이요 진리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복음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부활복음의 핵심이다.

(고전 15: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이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 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다.
우리는 이 복음을 주기 위하여 시간도 주고, 재물도 주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인간의 본성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 (행 20:35)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이 있다 하셨다.
주님의 말씀대로 주고, 베푸는 삶을 통해서 복된 인생이 되고, 삶은 더욱 윤택해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다음 시간에는 제 10 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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