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감각을 회복하라.
소위 나병이라고 하는 한센병의 권위자 폴 브랜드박사가 어느 날, 영국에 도착
해서 여러 곳을 방문한 후에 호텔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려고 했는데, 발에 감각이
없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겠지만, 그는 의사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발 뒷굼치를 바늘로 찔러 보았다.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다시 더 깊게 찔러 보았으나, 피는 났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힘없이 침대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아, 이제 나도 한셈병에 감염이 되었나보다.
병을 연구하고 치료하던 나 자신도 그 병에 걸렸다는 생각에 슬프고 눈물이 나왔다.
밤잠을 못 이루고 설치며, 밤새 기도하다가... 아침을 맞이했는데, 두려웠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바늘로 찔러 보았다.
피가 나오면서 얼마나 아픈지 모를 정도도 아펐다.
어제는 긴 시간 여행으로 신경 한 곳이 눌려서 일시적으로 감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아침의 아픔은 기쁨의 아픔이었다. 아퍼서 너무 너무 기뻤다.
폴 브랜드 박사는 그 날 아침, 바늘로 찔러보았을 때 너무 너무 아퍼서 감사했다.
아프다는 것은 신경이 살아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아픔과 두려움은 삶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이 주신 예방과 보호 신호탄이다.
무통증 환자가 되면 인생이 망가지거나, 빨리 죽는다.
팔을 비틀어도 안 아프면 부러지고 만다.
뜨거운 불에 가까이 가면 무섭다. 또한, 높은 곳에 올라가면 무섭고 두렵다.
그것이 정상이고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본능이다.
고통과 두려움 그 자체는 원치 않으나,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축복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감각을 상실되는 것이 더 큰 아픔이고 문제이다.
두려움과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죄를 지으면 영적으로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축복이다.
그래야 회개하게 되고, 구원 받을 수 있다.
영적인 한센병에 걸리면, 죄를 지어도 무감각하고 마음의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크고 작은 고통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깨닫게 하려는 뜻과 섭리가 있다.
고통이 와도 그 의미를 모르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다.
성도의 고통은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멧세지이다.
그 고통 안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선하신 뜻이 들어 있다.
그래서 성도의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도는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죽음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하고, 영적인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야 한다.
문제는 영적 감각이 무뎌지고, 죽어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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