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8일 금요일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 마 5:7, 빌 2:7-8, 약 2:13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마 5:7, 빌 2:7-8)
탈무드에서 <긍휼>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이웃집에 가서 낫을 좀 빌려오라."고 부탁을 했다.
이 아들이 이웃집에 갔다 와서 하는 말이 "낫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거절당하고
왔다. 며칠 후에 바로 그 이웃집에서 이 집에 을 빌리러 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낫을 빌려주라." 했다.
이 때 아들은 항의를 했다. "며칠 전에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는데요."
그 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삶의 지혜를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빌려줄 수 없다. 이것은 복수(revenge)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려 준다고 말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빌려주면 이것은 증오(hatred, detestation)다.
거절당했다고 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아무 상관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낫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빌려주는 마음으로 빌려주면 이것이 긍휼(sympathy)이다."
라고 가르쳤다.
이 세 가지 대답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세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까?
① 복수의 삶 : 원수 갚기 위해서 한 평생 사는 사람이 있다.
② 증오의 삶 : 나라를 증오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를 증오하고,
미움과 증오로 사는 사람.
③ 긍휼의 삶 : 사랑과 긍휼과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삶.
이것이 참된 인생의 삶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세 차원에서 설명이 된다.
1) 상향적인 사랑이다.
내 위치보다 더 높으신 분을 향하여 위로 받치는 사랑이 있다.
이것은 존경이라고 하고 부모님에게는 공경이고, 하나님께는 경외 라고 말합니다.
그 분을 높이는 그런 사랑이다.
2) 수평적 사랑이다.
친구를 대하듯이 일대일로 주고받는 그런 의미의 사랑이 있다.
3) 하향적인 사랑이다.
나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것이고, 불쌍히 여기는 하향적인 사랑이다.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면 긍휼 없는 심판을 받으리라.
(마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이와 같이 하시리라.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마 9:13)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한다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긍휼을 배우라고 하셨다. 긍휼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긍휼이 무엇인가?
[긍휼] 영어로 Sympathy 인데, (Sym + pathy) 합성어이다.
Sym = 함께, Pathy = 고통 이다.
[긍휼] 이란 말은 '고통을 함께 한다' 는 뜻이다.
(예화) 어려움에 처한 어떤 형제가 있다.
그 형제의 입장에서 함께 느끼고, 함께 아퍼하고,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아픈 마음동일시하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와 동일시 되려고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신학적 용어로 성육신(incarnation)
이라고 하는데, 성육신의 사건 속에 하나님의 긍휼이 들어 있는 것이다.
(빌 2:7-8)에서 이것을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처지가 되시기 위해 4가지를 하셨다.
1) 자기를 비우셨다 :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영광과 특권을 다 포기하셨다.
2)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
3)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과 시험을 몸소 체험 하셨다. (히 4:15)
4) 그래서 주님은 시험 당하는 자들을 도우신다. (히 2:18)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고, 하나님의 동일시 하기 이다.
이렇게 우리와 동일시하기까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이 명령하셨다.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긍휼히 여겨라.
나처럼 긍휼히 여기는 자는 이 있도다.
이 말씀을 볼 때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시 103: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불쌍한 눈으로 봅니다.
오늘 주님은 산상수훈 (7절) 말씀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나님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현대인 성경)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면 그 사람도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는 것이다.
콩 심으면 콩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고,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게 되듯이,
내가 긍휼을 베풀면 장차 긍휼을 받을 수 있는 씨앗을 심게 되는 것이다.
(엡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그 크신 긍휼을 입은 사람들이다.
언제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 사랑이 확증되었다.(롬 5:8)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십자가의 피로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시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시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하셨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이렇게 엄청난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다.
(엡 2:4-5)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큰 긍휼을 입었기기 때문에, 주님의 긍휼의 힘을 가지고
남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예화) 영국에 토마스 무어경이라는 믿음 좋은 귀족이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이 무고하게 중상모략을 받고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그가 사형 선고를 받는 재판정에서 남긴 유명 한 말이 있다.
재판관이 사형 언도를 했다. 참 억울하게 죽는 것이다.
그 때 무어경이 재판관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 재판관님, 오늘만은 내가 당신을 친구라고 부르게 해주세요.
친구여, 당신과 나와의 관계는 바울과 스데반의 관계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스데반 을 미워해서 돌로 쳐 죽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이 예수 믿고 나서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서 스데반과
가장 가까운 친구로 손잡고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사형을 언도했지만, 당신도 예수 믿고 나중에 저 하늘나라에서
나와 함께 손잡고 영원토록 기뻐하고 행복하게 사는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재판관이 충격을 받고 '나는 당신에게 사형을 언도하는데 당신은
어찌해서 이렇게 선한 말을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 때 토마스 무어경이 유명한 말을 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나에게 먼저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먼저 입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받는 은 무엇인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다.
긍휼을 심으면 긍휼을 받게 될 것이다.
(예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영국을 전승으로 이끈 위대한 정치가인 처칠경은
놀라운 이 긍휼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 아버지는 상당히 부자였는데 아버지 농장에 방학 동안에 와서 놀다가 농장에 있는
연못에 빠져서 죽게 된 것을 농장에서 일하던 소년이 뛰어 들어와서 물에 빠진 처칠을
구했다. 처칠 아버지는 너무 고마워서 "그래 내가 너에게 뭘 해줄까?"
그 소년은 대답하기를 "나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집이 가난하고 돈이 없어 의과대학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칠의 아버지가 너무 고맙다고 이 사람을 의과대학에 보내어서 졸업할 때까지
돈을 대주었다. 그리고 잊어 버렸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처칠은 성장해서 영국의 수상이 되었다.
제 2 차 세계대전 전쟁이 일어나 가장 어려운 때에, 그만 처칠 수상이 폐렴에 걸렸다.
그 당시에는 폐렴에 걸리면 다 죽는다. 그래서 큰일이 났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영국의 유명한 알렉산드 플레밍 박사란 분이 페니실린을 발명했다.
페니실린 맞으면 폐렴은 치유된다. 그래서 알렉산드 플레밍 박사가 찾아와서 처칠경에게
페니실린 주사를 놓고 처칠은 치유되고 살아났다.
그 때 알렉산드 플레밍 박사가 인사를 하면서 "저를 몰라보시겠지요?
수상께서 어릴 때에 연못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제가 뛰어 들어가서 건져 드렸습니다.
아버님께서 보은으로 나에게 의과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게 해 주셔서 의과대학도
졸업하고 의학박사가 되고 이 페니실린을 발명하여 처음으로 수상께 페니실린
놓았습니다"
만일, 처칠의 아버지가 이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서 긍휼을 베풀어 의과대학에 보내어
공부를 시켜주지 않았다면, 폐렴에 걸려 죽어가는 그 아들 처칠경이 페니실린 주사도
맞지 못하고 죽었을지 모른다. 긍휼을 베풀면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결 론)
긍휼히 여기는 자는 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며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신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값없이 긍휼을 받았다. 조건 없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려면 너희도 긍휼히 여기며 살라는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 6:38)고 하셨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고 긍휼을 배워서, 그 사랑과 긍휼이 나의 성품이 되어
긍휼의 사람이 될 때 여기에 자유가 있고, 더 큰 긍휼을 받게 될 것이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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