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5일 화요일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 마 5:1-3, 시편 109:9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 5:1-3, 시편 109:9)


마태복음 5-7장은 : 산상수훈(山上垂訓) 혹은 산상보훈(山上寶訓) 이라고 한다.

예수님 공생애 초기에 가르치신 보화와 같은 말씀이라는 뜻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귀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은 더욱 귀하다.

이런 말이 있다.

ㄱ) 크리스챤들에게 무엇을 믿는가? 사도신경의 내용을 믿는다.

사도들은 성경을 기록한 자들이다.

그들의 신앙고백을 우리도 믿는 것이다.

ㄴ) 크리스챤들의 비젼은 무엇인가? 주기도문의 비젼을 마음 속에 갖고 있다.

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 지는 것을 꿈 꾸고,

②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꿈 꾸고,

③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꿈을 꾼다.

ㄷ) 크리스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구약에는 십계명이 있고..., 신약 : 산상수훈의 교훈대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면 복이 있나니...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행복자로다.

최선의 삶의 표준이고, 천국 백성의 생활 모습이고, 천국 백성이 누릴 이다.

◉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천지 만물을 6일 동안 만드시고,

마지막 날에 인간을 만드셨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으나, 인간은 고운 흙으로

보이는 육을 먼저 만드시고, 그 속에 생기를 넣으사 생령이 되게 하셨다. (창 2:7)

즉, 보이지 아니하는 심령을 우리 속에 넣어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거울로 볼 수 있는 나거울로 볼 수 없는 내가 있다.

겉 사람이 있고, 속 사람이 있다. 육이 있고, 영(심령)이 있다.

◉ 그래서 인간이란? 이 두 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사람이다.

어느 하나만 중요하게 보면 안 된다.

육을 무시한 채 영혼만 귀히 여겨도 안 되고,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고

영혼을 무시하고 보이는 육신만 귀히 여겨서는 안 된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인간의 이 두 가지를 다 귀히 여기는 것이 정상적인 성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받은 성도는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심령을

둘 다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성도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육은 흙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땅을 밟고,

흙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맨 땅을 걸으며 살다가 땅을 좋아하고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예화) 부동산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지요?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창조 때부터 사람은 땅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사람은 땅 때문에 싸운다. 국가의 전쟁도 땅 때문에 일어난다.

사람은 땅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예화) 음식도 땅에서 나오는 감자같은 요리가 몸에 좋다고 한다.

(예화) 걷는 것도 닥닥한 아스팔트 위를 걷지 않고, 흙을 맨발로 걷는 것이

무릎이나 건강에 좋다. 잠을 잘 때에도 고층 아파트에서 자는 것보다,

사람은 땅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땅에서 육신의 쉼과 안식을 얻는다.

왜냐하면 육은 땅에서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욕심이 지나쳐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 육은 땅을 사랑하며 땅에 것을 취하며,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땅의 도움을 받으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흙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사람은 땅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예화)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다가도 다시 땅에 발을 디딜 때 마음이 편하다.

비행기를 타도, 한정된 시간을 날다가 다시 땅에 내려오게 올 때 안정감을 느낀다.


◉ 문제는 인간은 흙에서 나온 육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 있다.

위로부터 온 심령이 있다. 신령한 속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속사람은 땅에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땅에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믿고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면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우리의 영혼이다.

◉ 우리에겐 이 함께 존재해서 :

하나는 위엣 것을 좋아하고, 또 하나는 땅에 것을 좋아한다.


사도 바울이 괴롭다, 나는 곤고한 자로다 고 하는 것이 그 말이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두 가지 : 땅에 것을 좋아하는 육신하늘에 것을 좋아하는 영혼 :

이 중간에 서서 하나는 이리로 가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저리로 갈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괴로움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이 괴로움을 잘 극복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이 잘 훈련된 성도이고, 축복된 성도입니다.

육신이 잘 되기 위해서 미국까지 이민 오셨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살 수 없다.

영적인 삶도 있기 때문에, 이쪽으로 갈려고 하면 저게 문제이고,

저 쪽으로 갈려고 하면 이쪽이 문제이다.

그래서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두 가지를 다 귀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ㄱ)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계신가 하면 땅에 계신 내 아버지도 계시고,

ㄴ) 내 영혼이 있는가 하면 내 육신도 있고,

육신의 양식이 있는가 하면 영의 양식도 있다.

성경은 전부 인간의 삶에 대해서는 이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다.

ㄷ) 고향이 한국에 있는가 하면, 내 영혼의 고향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ㄹ) 겉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 사람이 있고, 육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신령한 눈이 있다.

♪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합소서 ♫

ㅁ) 육의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신령한 아름다움이 있다.

ㅂ) 육의 건강이 있는가 하면 영의 건강이 있다. (요삼서 1:2)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다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며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살아야 된다.

◉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만 그렇다.

동물은 육신의 것 하나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사람은 둘 다 귀하다. 어느 한 쪽만 귀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사는 것이 좀 어렵다.

안 믿는 사람들보다 사는 것이 두 배나 힘이 듭니다.

돈을 벌어도 교인들은 돈 벌기가 어렵다.


(예) 직업도 아무거나 가질 수 없다. 정직하게 벌어야지요. 주일 지키며 벌어야지요.

11조하며 벌어야지요. 선교헌금도 내야지요. 어려운 사람들 구제도 해야지요.

쓸데가 안 믿는 사람들 보다 두 배로 많다.

버는 것 자체가 힘이 듭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만 보고 벌거든요.

육에 유익하다고 하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데, 성도들은 아무리 많이 벌린다 해도,

영과 육에 둘 다 맞추어 가면서 벌어야 하기 때문에 돈 버는 것을 아무거나 못 한다.

아무 직업이나, 아무 사업이나 못 한다.

그래서 미국에 온 교인들이 세탁소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예화) 미국에 오셔서 돈만 벌려고 한다면 당장이라도 벌 수 있을 텐데....

아이고! 내가 장로인데 그럴 수 있나? 내가 집사인데 그럴 수 있나?

그런 고민 때문에 돈을 잘 못 벌고 고생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두 가지를 다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아껴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나오면 내라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 정말 아껴 살 수 밖에 없다.

믿음으로 살면서 육신도 잘 되어야 하고, 영의 축복도 받도록 교회 생활에 충실하려고 하니까, 인색하게 굴 때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인색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아껴 쓰는 것이다

철저하게 산다는 것인데 안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인색하게 보인다.

하나만 맞추기도 어려운데, 성도는 이 두 가지를 다 맞추려 하니까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이다.

(예화) 그래서 결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인들이 결혼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인물 좋고 건강하고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닌다고 하면 O.K. 한다.

교인들은 그런 것 다 있어도 또 한 면을 더 봐야 하는 것이 있다.

예수 믿느냐? 신앙생활 하느냐? 그러니까 확률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나오는 처녀들이 사람 찾다보니 나이가 많이 드는 일이 있는 것이다.

믿음 있는 처녀가 신랑이 인물 좋고 똑똑하지만 그것, 하나만 보고 결혼할 수 없기 때문에

혼기를 놓치기고 하고 늦어지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예화) 한 이쁘고 믿음 좋은 자매가 있었다.

대학 다닐 때 어떤 한 형제가 이 자매를 좋아했다.

그 청년은 집안도 괜찮고, 부자 집 아들이고, 외모도 괜찮은 편이었다.

문제는 이 청년이 예수를 안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전도했다. 그러나 안 믿는다.

그래서 계속 교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자매가 고민하고 있을 때 :

어느 날 다방에서 만났는데 <예수를 선택하든지? 날 선택하든지? 하라> 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자매가 화가 나서 <당신이 뭔데 감히 예수님과 당신을 비교 합니까?> 말하고

나왔다. 눈에서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좀 아까운 형제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얼마를 지나서 어떤 믿음 좋은 형제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믿음 좋은 형제가 바로 이 설교문을 쓰고 있는 입니다.

아무리 다른 조건이 다 좋아도 예수 안 믿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었거든요.


(예화) 옷을 입는 것도, 먹는 것도, 사는 생활,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다.

옷이 이쁘다고 다 못 입는다. 교인은 교인에 맞는 색깔이 있다.

디자인도 교인들이 고르는 옷, 색깔이 다 비슷 비슷하다.

왜냐하면 특별히 화려한 것은 교회 못 입고 온다는 말입니다.

영화 배우들이나, 팻션 모델들이 입는 번쩍 번쩍 하고 현란한 옷은 못 입는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심령과 육에 둘 다 맞추어야 하니까 특별히 지나친 것은 못 입는다.

입어봐서 마음에 편안한 것을 입게 된다.

그래서 성도의 삶이란? 전부 두 가지에 맞추어 살기 때문에

어느 것이든지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만 생각하고 살면 쉽다. 육만 생각하고 살면 살아가기가 쉽다.

그래서 때로는 교인은 미움을 받기고 하고, 소외되기도 하고, 직장 선택도 어려워지고,

사업도 어렵고, 세상살이가 남들보다 더 어렵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지원과 보급을 받지 않으면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늘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지원을 갑절로 받아야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합니다.

그들은 육의 합리적인 길이라면 다 합니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면 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령에 맞아야 하고, 영혼에 맞아야 하고, 하나님께 맞아야 하고,

말씀에 맞아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영과 육을 둘 다 소중히 여깁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 잘 되는 길이 있다.

보이는 육과 보이지 않는 심령,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다 잘되는 것이 복 받은 성도인데,

그렇게 둘 다 잘되는 길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 순서가 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우선 순위를 정한다면 어느 것이 더 귀하냐?

이 두 가지가 대립하고, 충돌할 때에는 언제든지 영적인 면에 서야 되는 것이다.

영육이 다 잘 되어야 하는데, 때로는 이 둘이 충돌하고 다툴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영적인 면에 서야 하고, 성령님 편에 서야 하고, 영혼의 편에 서야 하는 것이다.

한 쪽이 좋고, 다른 한 쪽이 나쁘면 아무리 좋은 것일 찌라도,

영적으로 안 맞으면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육신을 먼저 선택하고, 세상 쪽으로 선택하면 둘 다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잘 되기 위해서는 영적인 면에 서야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잘되는 길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잘못되어가는 사람을 결단코 축복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잘못되어 가는 사람은 이 땅의 축복을 올바르게 관리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인 삶도 잘되라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잘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끼니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것이 절대로 축복이 아니다.

육이 잘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복이다. 건강이 축복이다.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어서 질병을 통해서 아프게 하거나 환난을 주기도 하시지만

육이라는 것은 잘 되고 건강한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육의 복도 귀히 여기시고 축복해 주시는 분이시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소경이 눈을 뜨고, 문둥병이 나아 육신이 잘되고 잘 살고,

건강한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은혜이다.

(창 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신 28:12-13)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라.


새의 날개처럼 사람이 복 받는 것이 날개입니다.

잘 되는 것이 확실히 영광이 되고 은혜입니다.

성공하는 것이 확실히 복입니다. 보이는 육의 축복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육의 복만 있어서는 안 된다. 또 하나의 복이 있습니다.

신령한 복이고, 심령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육의 복만 가지고는 참 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심령도 같이 복 받아야 참 복을 받은 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 심령이 복 받는 길은 심령이 가난해야 복입니다. (마 5:2)

◉ 육신의 복, 눈에 보이는 복은 올라가는 것이 복이라면 :

심령은 낮아지고 내려가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셨다.

심령은 가난한 것이 축복이다.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가 복이다.

영적인 거지가 되라.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 (= I am nothing)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존재 (= I have nothing),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 (= I can do nothing)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한 사람인가?

내가 얼마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가? 를 인정하는 것이다.

◉ 육이 살아 있는 것처럼 영도 살아 있어야 하고,

육이 아름다운 것처럼 영도 아름다워야 한다.

사실상 육의 축복은 누구든지 다 잘 안다. 가르치지 않아도 안다. 어린이도 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심령의 아름다움인지를 잘 모른다.

그러면 어떤 심령이 아름다운 심령이냐? 가난한 심령이 아름답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 사랑받고, 은혜 받고,

복 받은 심령이 되고 싶으면 그 사람은 마음을 가난하게 해야 한다.

그 사람은 심령을 빈하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영혼을 겸손히 낮추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내 심령이 축복입니까? 심령은 가난해야 축복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헬라어로 [가난]은 그냥 가난이 아니라, 아주 가난한 것, 극심한 가난을 말한다.

육은 100년 먹을 것이 준비되어 있어도, 심령은 내일 아침 먹거리가 없을 정도로

배고프고 갈급하고 가난해야 축복이라는 말이다.

영혼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육이 잘 되는 것과 함께 자신의 영도 높아지려고 한다.

ㄱ) 육은 올라가야 복이지만, 심령은 낮아지는 것이 복이다.

ㄴ) 육은 부자가 되는 것이 복이지만, 심령은 가난한 자가 복이다.

ㄷ) 육이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영도 높은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ㄹ) 세상적으로 이름이 있다고 해서, 영혼도 하나님이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ㅁ) 세상에서 장관이라고 해서 영혼도 장관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은혜를 못 받습니다.

(히 13:9)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다 고 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

내 심령이 가난하고 배가 고파야 늘 주님을 찾게 되고, 은혜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육신이 편하고 심령도 부족함이 없는 줄로 여기면서

“나는 영적으로 다 되었다. 만족스럽다” 고 할 때부터 그 사람은 잘못되어 가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같이 되는 것이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고 하면 라오디에아 교회 같이 되는 것이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심령이 잘 되면 육은 반드시 잘되게 되어 있다.

영혼이 은혜를 받았는데 육이 버림받을 수 없다.

영혼이 복 받았다는데 육신이 잘못 될 리가 없다.

그러나 육이 잘된다고 영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영이 잘 되는 곳에는 반드시 육이 잘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법칙이고, 하나님의 법칙이다.

(요삼서 1:2)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따라 합시다. 잘 되면 잘 되고, 잘 못되면 잘 못된다.


이 말은 ( 영혼이 ) 잘 되면, ( 범사가 ) 잘 되고,

( 영혼이 ) 잘못되면 ( 범사가 )잘못 된다는 말이다.

예수 잘 믿으면 복 받는 것이 정상이다.

사람은 영적인 면에 바로 서서, 자신의 육신을 관리할 때 인생 관리를 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육신이 아무리 잘 되어도 스스로 교만하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심령이 가난해야 복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을 가난하게 하고, 낮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천국이 저희 것이 됩니다.

◉ 심령이 가난해 지면 성경이 믿어진다. 주님을 찾게 된다. 말씀이 접수된다.

그러나 심령의 배가 부르면 신령한 소리가 안 들립니다.

마치 육신도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무관심하듯이,

영적으로도 배가 부르면 신령한 말씀이 안 들린다.

심령이 배고프면 영혼의 양식을 찾게 됩니다.

내 영혼의 음식은 예수님이시고, 말씀이고, 믿음이고, 성령이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고, 예배드리는 것이다. 영혼은 그 쪽을 원한다.

그러나 영혼이 배부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싫어진다.

예배가 길어 보이고, 말씀이 지루하고, 기도는 하기 피곤하고, 찬송을 힘이 없이 부르고,

전도는 부끄러워 못하겠고, 이렇게 되면 심령이 병든 것이다.

◉ 사람이 배가 고프면 찾는 것이 있고, 이성도 굶주리면 찾는 대상이 있듯이,

영혼이 배고프면 반드시 찾는 대상이 있다.

내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다.

내 영혼이 위에서부터 왔기 때문에 영은 땅에 것을 아무리 주어도 만족이 없다.

대학 총장이라도 영혼이 배고프면 교회 나오게 되는 것이고,

학생이라도 영혼이 배부르면 못나온다.


(결 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육과 영을 만들어 놓으셨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영혼이 있고, 영적인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

영혼이 우리 몸안, 어디에 있는 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히 있다.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있다.

영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기쁘고 즐겁고 좋아하는 것이다.

영혼의 그릇은 다른 것으로는 채울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고 만족되지도 않는다.

주님이 오셔야 채워지는 것이다. 성령을 받아야 채워지는 것이다.

육신의 욕구는 사람마다 다르고, 지식도 다르고, 문화와 언어도, 습관도 다르지만,

영혼의 욕구는 어느 민족, 남녀노소, 동서고금 누구든지 다 똑 같다.

심령이 가난해서 주님을 구하면 복이 있다는 것이다.

천국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이다.

이 심령의 갈증을 해결하는 길은 성령을 받는 것이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지식을 얻어 보세요. 번뇌만 더 한다고 했다. (전 1:18)

사람의 행복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눅 12:15)

심령이 가난해져서 주님 모시고 살 때 행복이 임하고, 신령한 참 기쁨이 생기고,

제일 높으신 분을 모셨으니 부족함이 없고,

제일 부요한 분을 모셨으니 아쉬움이 없고,

사랑의 주님을 모셨으니, 행복할 수 밖에 없고,

제일 완전하신 분을 모셨으니 그 심령이 평안할 수 밖에 없다.

◉ 끝으로 , (예화) 광주 중앙교회 채규현목사님의 친구 이야기.

그 친구는 머리가 비상하게 좋고, 얼굴도 매우 잘 생기고,

대학생시절 때에는 주변에 여학생들이 많았고, 인기 많고,

대학 졸업 후 유학 다녀와서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이 사람은 예수 믿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심령이 늘 부요한 사람이다.

아무리 전도해도 복음이 접수되지 못했다.

심령이 가난해 지기 까지는 복음이 복음 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주셨다. 뇌종양이라는 은혜였다.

뇌종양은 머리 어느 부분에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숨골 바로 옆에 생겼는데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뇌종양 때문에 심령이 가난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예수 믿게 되었다. 뇌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했다.

그러나 한 쪽 얼굴이 마비가 되었다. 웃어도 반쪽만 웃는다. 밥을 먹어도 흘린다.

그렇지만 그는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고 행복해 한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교만하니까 하나님이 따귀를 때려서 이렇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내 얼굴, 이것이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증거하라고 한다.

마음이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겸손해졌다. 천국이 그의 것이 되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 교만은 꺽어지고 순식간에 심령이 가난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심령이 가난할 때 복이 임하고,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내 심령이 배불러지기 시작하면, 주님은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할 때부터 영혼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할 때 천국이 보이고,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내 영혼이 잘 될 때, 육도 더불어 더 잘 되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먼저 영혼이 건강하고 잘 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이제 8복의 산을 올라가는 첫 시간인데,

8복은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러분의 이 땅의 삶과 육신의 생활이 잘 되고 형통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활, 신령한 삶도 잘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둘이 서로 충돌할 때는 육신이 손해를 본다할 찌라도

반드시 영적인 편에 서고, 주님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순서를 지킬 때만이 둘 다 잘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적인 지혜요. 믿음의 지혜이다.

이런 신령한 지혜로 사셔서 이 동시 다 잘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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