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복, 인내하는 자의 복 (약 5:5-11)
오늘 본문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고 말씀 하셨다.
그래서 오늘은 제 10 복, 열 번째 복이다.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성품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할 줄 아는 성품이요,
오래 오래 참을 줄 아는 인격이 꼭 필요한 줄 믿습니다.
참을 줄 모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덕을 세우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하나도 은혜가 되지 못한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운동선수와 같은데
이 경주를 달릴 때 운동선수가 인내를 가지고 경주하듯이 신앙의 경주도
인내를 갖고 경주하라는 말이다.
(약 1:4)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시험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때 시험을 당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롬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의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며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오늘 본문에서도 6번씩이나 참고 인내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7절) 길이 참으라. (Be patient)
(8절) 너희도 길이 참고... (You too, be patient)
(10절)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도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나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
마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인내하라고 비유하였다.
농부가 서두른다고 금방 곡식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노력하면서 또 위로부터 주시는 햇빛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면서 마침내 귀한 열매를 기대하면서 길이 길이 참는 농부처럼 인내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조급한 농부는 좋은 농부가 될 수 없고, 서두르는 농부는 귀한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참고 기다릴 줄 모르는 성도는 주께서 주시는 은혜의 열매를
받지 못할 것이다.
(예) 아브라함이 참고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다가 이스마엘을 낳은 것과 같다.
하나님은 서두르시지 않는다. 조급하시지도 않는다.
말세에 나타나는 인간성의 특징을 나열하면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딤후 3:1) 사람들이 사나와 지고 또 하나는 조급해진다고 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참으로 바쁜 세상을 사는 것 같다.
(예) 먹는 것도 : 1분 라면, 인스탄트 커피, 압력밥솥 ... 등등이 유행된 지 오랬다.
(예) 핸드폰도 속도가 조금만 늦어져도 새 것으로 바꾼다.
(예) 한국 사람들은 : 어디를 가도 빨리 빨리 ...
그래서 조급해져 가는 인간들이다. 1초를 다투는 세상이 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렇게 촉각을 다투는 바쁜 세상에서라도 우리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인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내할 줄 모르면 믿음 생활에서 실패할 것이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면서
인내와 오래 참음으로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Love is patient)
사랑의 특징에서 그 첫째가 오래 참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려는 사람은 먼저 오래 오래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오래 참음이라는 인내의 뜨락을 통과하지 않고는 결코 사랑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참음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 질 때까지 인내하고, 사랑을 실천하려면 인내할 줄 알아야 하고,
믿음도 인내하며 끝까지 지키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고 (마 24:13)에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도 인내가 필요하고, 사랑도 인내가 있어야 하고, 소망도 인내의 열매이다.
믿음, 소망, 사랑 이 모든 것에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특별히 어떤 때 인내해야 하는가?
1) 고난당할 때 인내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벧전 2:19-20)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어떤 연유에서든지 우리에게는 고난이 찾아온다. 어려움이 꼭 있는 법이다.
가정 생활에서도 인내가 필요하고, 공부할 때도 인내가 필요하고, 교회생활에서도
인내가 필요하고, 사람을 사랑할 때도 꼭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예) 어느 마을에 아주 화목한 가정이 있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그 집에는 뒷 채에 큰 항아리가 있고, 그 앞에 작은 종이들과
연필이 놓여 있다. 만일 화가 나서 다투고자 하면 먼저 여기와서 그 종이를 하나 뜯어서
종이에 참을 인(忍)를 쓰고 항아리에 넣고와서 싸우라는 가정의 법이 있다.
그래서 화가 나서 다투고 싶으면 뒷 채에 와서 일단 인(忍)자를 쓰다 보면 감정도 가라앉고
자신도 돌아보게 되어 싸우지 않게 되고 화목하게 지낸다는 이야기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라고 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기쁨이 온다는 말이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다. 인내할 줄 모르면 열매를 얻을 수 없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의 고난을 잘 참으면 장래의 영광은 엄청나게 큰 것으로 주어진다는 말이다.
(딤후 2:11-12)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
그러므로 첫째로 고난 당할 때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2) 둘째로 인간관계에서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관계는 정말 어렵다.
인간관계란 항상 오해가 있고, 억울한 일이 생길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억울하다고 전화하고 변명한다. 또 어떤 사람은 공개하고 따진다.
그러나 그때 그때 우리는 좀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의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찌니라.
다윗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울 왕을 향하여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고 승리하게 해 주셨다.
여러분!
만일,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언제까지 인내해야 할 까요?
어떤 사람은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더 못 참아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3번 참았으면 됐지... 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 (7절)을 보라 :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셨다.
언제까지 참으라고 했나요?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이다.
(예화) 부부가 싸운다. 아내가 말하기를 : 내가 10년을 참았는데 더 이상 못참겠다고 하면
그것은 10년 동안 참은 것이 아니라, 10년 동안 벼른 것이 된다.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님의 재림이 가까우니 끝까지 인내하고 모든 사람을 향해서 넓은 마음으로
관용으로 대하라는 말이다.
본문 (9절)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느니라.
우리 주님께서 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려 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괴롭히는 사람을 향해서 참고 기도해 주며, 돌아오기를 인내해야 할 것이다.
3) 셋째로 기도 응답과 축복을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기도하면 즉시. 즉시 다 응답되는 것이 아니다.
10년 만에 응답되는 것도 있고, 50년만에 응답되는 것도 있고,
내가 죽은 다음에 응답되는 것도 있다.
(예화) 무디는 친구의 구원을 위해 수십년 기도했는데,
무디가 죽을 때까지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무디 장례식에 참석하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한다.
지금 당장 응답이 없다고 포기하거나 낙심할 것이 아니다.
실망은 마지막에 가서 말하는 것이다.
아직도 끝이 되려면 많이 남았음을 알아야 한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줄 믿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축복과 성공을 기다립시다.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하셨다.
응답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죠지 뮬러는 말하기를 : 기도는 시작한 것으로도, 옳게 드린 것만으로도, 얼마 동안
드렸다고도 된 것도 아니다. 응답하실 줄 믿고 응답받기까지 기도하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 응답뿐만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 조급하게 받으려 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언젠가는 반드시 주실 것이니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한 줄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참는 연습이 필요하다.
1)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에 있어서 참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의 사고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판단함에 있어서 불완전한 점이 많다.
그래서 지금 좀 잘 된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지금 좀 잘 안된다고 원망하지 말고,
판단하는 것을 좀 참고, 너무 성급하게 판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근시안적 안목에서 원시안적 안목을 갖고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천천히 보면서
마지막의 아름다운 결론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예) 앞에는 홍해 바다 뒤에는 애굽 군인이 쫓아오니, 진퇴양난의 길목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고 불고 원망의 목소리가 급하게 올라갔다.
그러나 조금만 더 그 생각에 있어서 저들이 참았던들 그렇게 근심하고 울 필요가 없었다.
잠시 후에 홍해가 갈라져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예)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고민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모든 일을 설명해 주었다. 위기에서 요셉은 가만히 생각했다.
생각을 조용히 하고,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두르지도 말고 조급하게도 생각하지 말고, 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뜻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판단을 늦추어야 할 것이다.
(고전 4:5) 때가 이르기 전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생각과 판단에 인내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을 보고 복 받았느니, 저주받았느니, 잘 됐느니, 못됐느니, 행과 불행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맙시다.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니까요.
2) 말에 있어서 인내가 있어야 하겠다.
(약1:19)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잠10:19-20)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 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너무 급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입술이라는 말이다.
너무 아는 척도 하지말고, 너무 절망스러운 말도 함부로 하지 맙시다.
(예화) 누가 당신을 안 좋게 말하더라고 절대로 전해 주지 말아야 한다.
그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에 인내하고, 말하는데 있어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 끝으로 인내하는 방법 :
1)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이심을 믿는 것이다(11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도와주시고 고난 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분이시다.
(시 37:28)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고난 당할 때 어떻게 인내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하면 인내할 수 있다.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하신 이를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나를 위해 참아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이시니,
우리가 그 사랑의 주님을 바라보면 인내 할 수 있다.
2) 기도하면 인내할 수 있다.
모든 믿음의 선배들은 고난 중에 기도를 통해서 인내할 수 있었다.
참기 어려울 때 마다 주님 앞에 와서 엎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주 예수 앞에 엎드리면 주께서 새 은혜를 주실 것이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하여 인내의 열매를 맺어 사시기를 바랍니다.
3) 성경을 통해서 인내를 배울 수 있다.
성경을 읽으면 선지자들의 인내의 본(本)을 배울 수 있다.
성경에서 인내함으로 승리했던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
ㄱ) 120년 동안 인내하며 방주를 만든 노아 할아버지.
ㄴ)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킨 요셉.
ㄷ) 예레미아선지자,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욥 ...
ㄹ)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잘 달린 사도 바울을 만나 볼 수 있다.
성경을 통해서 모든 선지자들과 주의 종들이 어떻게 고난을 참았는지
그들의 고난과 오래 참음을 봄으로 우리도 인내를 배울 수 있다.
성경에서 인내하면 욥의 인내를 꼭 배워야한다.
욥보다 더 고난을 받은 사람은 없다.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를 다 잃고 몸에 질병과 친구들의 정죄와 조소,
아내의 배신, 그러면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입술로 원망하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께
인정 받았던 욥의 인내를 우리는 꼭 배워야 할 것이다.
(11절) 보라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욥의 인내를 바라보면서 “욥도 참았는데 나 정도야” 하면서
주께서 주신 결말을 바라보고 우리도 욥처럼 인내하고 참으라는 말이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어떻게 잘 참고 있는지를 보고 계십니다.
온유로 기다리는지? 아니면 원망하고 있는지?
겸손히 참고 있는지? 아니면 속으로 벼르고 있는지? 주님께서 보고 계신다.
주께서 보시고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 주실 것이다.
(결 론)
우리 신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인내할 줄 아는 것이다.
성숙한 성도는 참을 줄 아는 성도이다.
참을 줄 모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다.
성급한 말은 손해를 가져다준다.
성급한 생각도 좋지 않고, 성급한 판단도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가 맺어주실 아름다운 결말을 바라보며서 인내해야 할 것이다.
인내로서 우리의 성숙한 인격을 보여주고, 인내로서 신앙을 연단받고,
인내로서 인생을 성공하고, 인내로서 영광된 생애를 사시기 바랍니다.
인내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고 하셨다.
주께서 아름다운 결말을 주실 줄 믿고 범사에 인내하며 살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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