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앙망하라. (사 45:21-22)
(22절)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이 말씀은 스펄천 목사님을 변화시켰던 말씀이다.
앙망(仰望)은 “우러를 앙(仰)” “바랄 망(望)” 이다.
그러니까, 우러러 바라본다는 말이다.
우러러 바라볼 때는 뭔가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고,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가?
하나님을 앙망하여 우러러 바라보라고 하셨다.
★ 하나님을 앙망하며 바라볼 때 어떤 축복이 주어지는가? (3가지)
1) 구원을 받는다.
(22절)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약속의 말씀이다. 구약의 복음이라고 한다.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구원의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힘쓰고 애써서 구원을 얻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앙망했더니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바로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믿음을 뜻한다. 믿는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믿지 못하면 바라보지 않는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본문 (22절) 말씀과 (행 16:31)말씀은 같은 뜻을 갖고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구원을 얻고,
신약에서는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했으니,
바라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유혹하기도 하고 핍박도 한다.
자꾸 세상을 바라보게 손짓한다. 우리의 시선을 돌이켜 세상으로 향하게 만든다.
(예화) 안이숙 여사 [죽으면 죽으리라] 책에 나오는 예화이다.
어릴 때부터 허약하고 소심했던 소녀가 자꾸 악몽을 꾼다.
아주 무서운 꿈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곤 했다.
심신이 허약했던 이 소녀가 하루는 또 꿈을 꾸는데, 도깨비가 자기를 좇아온다.
흉악한 마귀같은 존재가 자기를 자꾸 따라온다.
그래서 안 잡히려고 정신없이 도망갔다. 아무리 열심히 도망쳐도 계속 따라온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는데, 그런 때마침 나무가 있어서 나무 위로 올라가서
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도깨비가 그 나무에 앉아 있는 소녀를 잡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도깨비가 위를 바라보지 못한다.
어디 갔지? 어디 갔지? 하면서 나무 주위를 맴돈다. 이것이 마귀의 모습이다.
사탄의 영향권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를 쳐다보지 못한다.
계속 땅만 바라보고, 세상만 바라본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눈을 들고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
(미 7: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미가 선지자처럼, 항상 눈을 들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태에 있을지라도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 뿐이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
이것이 구약의 복음이고, 은혜의 복음이다.
우리가 힘쓰고 애써서 얻어낸 구원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을 바라본 것 뿐이다.
(예화)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로 만든 놋뱀을 높이 들고,
그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다 살아난 것처럼, (민 21:8-9)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 3:14-15)
지금 어떠한 시련과 고통 속에 있을 찌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앙망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새 힘을 얻는다.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앙망(仰望) : 우러러 바라보는 것이고,
앙모(仰慕) : 우러러 사모하는 것이다.
신앙(信仰) : 믿을 신, 우러를 앙이다.
즉, 신앙이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바라보며 따르는 것이 신앙이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독수리가 푸른 창공을 바라볼 때, 힘차게 날아 오른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시험을 받을 때고, 유혹이 찾아 올 때가 있다.
그 유혹에 걸려서 마귀의 손아귀에 잡혀 죽게 될 수도 있다.
(예화) 새가 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데, 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눈독드리며 올라온다.
새가 그 뱀의 눈을 쳐다보는 순간 갑자기 온 몸이 굳어지고, 다리와 날개가 얼어붙어서
도망가지를 못하고 그만 뱀에게 잡혀 죽게 된다.
그 새는 뱀의 혀와 눈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고, 푸른창공을 바라 볼 때,
하늘로 날아 오르게 되니, 살 수 있다. 구원 받을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시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스타일 (life style)이다.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있을찌라도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3) 만족함을 얻는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놀라운 [만족]을 얻게 된다.
(시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왜 사람들이 시험과 유혹에 흔들리고 세상에 기웃거리면서 사는가?
그것은 마음이 공허하고, 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공허함을 채우고, 만족을 얻기 위해서 세상 유혹에 기웃거리다가
시험에 들고 실족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의로운 중에] : 이 말은 예배 중이다.
예배드리는 이 곳에 임재하고 계시는 부활의 주님, 성령으로 임재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그 얼굴 빛으로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예배가운데 :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주의 형상] : 주의 인격, 주의 성품, 주의 영광을 말한다.
그래서 주님으로 만족하게 된다는 말이다.
무엇으로 내 공허함과 허전한 텅빈 마음을 만족시키며 살 수 있습니까?
의로운 중에, 즉, 예배 중에, 기도 중에, 말씀 보는 중에 주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예배 가운데, 기도 중에, 말씀 속에서 나타나는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될 때,
세상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참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다윗에게는 간절한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만을 앙망하며 사는 것, 이것이 다윗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며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이렇게 고백했다.
(시 130:6)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 123:2)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이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앙망하며 바라보는 자에게,
어찌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하심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결 론)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가 누리게 되는 3가지 축복이 무엇인가?
(1)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2)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3) 의로운 중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해바라기] 꽃은 항상 해를 바라보며 서 있다.
성도는 항상 주를 바라보는 [주바라기] 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 20:12)
항상 주님을 앙망하며 바라보는 가운데 구원을 얻고, 새 힘을 얻고, 만족함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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