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다음에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 (벧전 3:18-20)
오늘 본문은 가장 난해 성경 구절이다. 사람은 살다가 죽는다.
죽은 다음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18절)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구약 시대에는 1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 날에 대제사장이 해마다 드려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왜냐하면?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18절 中)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도 하나님께로 돌아와 복된 인생을 살도록 인도하셨고,
또한,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영원한 나라(Eternal Home)로 인도해 주시려고 죽으셨다.
그런데, 18절 하반절에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라고 했다.
육체는 피 흘려 죽임을 당하신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
이 후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이 난해하다. 그래서 해석도 다양하다.
이단들도 자신의 교리를 꿰 맞추는데 이용한다.
이것 봐라.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영으로 부활하신 것이다고 주장한다.
(예화) 여호와 증인들이 찾아와서 자신들의 교리를 전할 때 이 구절을 들이대면서
예수님의 부활은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여러 구절에서 주님의 부활은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증거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아테네(아데)에서 전도할 때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을 증거했고,
영광의 몸으로 자신에게 살아나셨다고 증언했다.(행 17장)
그래도 여호와 증인들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영의 부활만 주장한다.
그러다가 누가복음 24:39을 보여 주었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보고 있으면서도 혹시 유령은 아닌가? 의심하고 있으니까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해석을 할 때 이러한 난해 구절 한 구절로 교리를 만들고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보다 쉽고 분명하고, 명확한 말씀을 가지고 신앙을 세워 나가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그러면, 본문의 뜻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령의 역사라는 뜻이다.
(영어 성경, N.I.V.) He was put to death in the body but made alive by the Spirit,
대문자 by the Spirit 로 기록했다. 즉 성령으로 부활하셨다는 말이다.
그냥 본문만 보면 이단의 말이 그럴 듯하다. 그러나 바른 해석이 아니다.
난해 구절 해석 방법은 더 분명하고 확실한 말씀으로 해석해 나가야 한다. (해석의 원리)
그렇다면 성경 어디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부활하셨다는 말씀이 나오는가?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들의 부활도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니까 본문 18절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나셨다는 말이다.
이제 19-20절을 보자.
(19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여기 또 난해한 구절이 나온다.
이 말씀도 얼듯보면 죽어도 다시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노아 홍수 때 가족 8명만 구원을 받았다. (노아, 부인, 셈, 함 야벳 3아들과 자부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노아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기롱하고 조롱하다가 홍수로 멸망당했다.
그 시대 살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죽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가셔서 말씀을
전하셨으니, 죽은 다음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캐톨릭 교회는 여기서 <연옥> 교리를 가져 온다.
<연옥>은 천당과 지옥 중간에 있어서 예수 믿어도 어떻게 죄인이 즉각 천국에 갈 수 있나?
<연옥>이라는 중간 정류장에서 불로 지지고, 죄의 소멸을 받고 혹독히 고통을 당한 후에
깨끗해져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죄인인 인간이 곧 바로 천국에 가나?
허버터리 (연옥)의 교리는 : 인간이 죽은 다음에 많은 고통과 연단을 받은 다음에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연옥 교리이다.
본문의 말씀이 연옥에 관한 말씀처럼 보인다.
그런 연옥에 갇혀 있던 영들이 말씀을 듣고 천국으로 올라 갈 수 있다는 말씀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연옥이라는 말이 분명히 없다.
캐톨릭의 교리는 이 성경 말씀만으로는 연옥의 교리를 세울 수 없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믿는 캐톨릭 교리는 다 성경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유구한 전통이 있다.
또한 교황의 가르침과 2,000년 동안 캐톨릭의 유전 가운데서 연옥 교리도 확립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성경 한두 구절을 근거해서 연옥과 같은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대로 말하면, 성경이 신앙의 최고 권위는 아니다.
교황의 권위로 얼마든지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캐톨릭의 오류요, 맹점이다.
그래서 이 말씀이 연옥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면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을 잘 보면 이 말씀 자체만으로도 옥의 영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이 없다.
사람의 구원의 여부는 목숨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 동안에 결정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그 어느 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는 것이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복음을 거절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죽은 이후에도 그 상태로
영원히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는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19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이 세상에는 계시지 않을 실 때에도,
주님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죄악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셨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이 세상에는 계시지 않지만, 여전히 성령으로 말씀을 전파하셨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아브라함, 노아, 모세... 통하여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다는 말이다.
노아 시대에 120년 후에 있을 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노아를 통해서 전파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조롱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무슨 홍수가 있겠느냐?
120년은 아직 멀었는데... 무슨 방주를 짓느냐? 전혀 듣지 않았다.
노아를 통해서 전파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죽게 된 것이다.
그런데 노아가 전파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영으로 그리스도께서 그 시대에,
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셨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올바른 해석이다.
그러면, (19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옥 : 연옥이 아니고, 감옥도 아니고, 그 때 말씀을 거부하고 죽은 영혼들이
머무는 음부(하데스)이다. 구약에서는 스올, 신약에서는 하데스 이다.
하나님께 들림 받지 못한 영혼들이 머무는 음부를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노아를 통해서 말씀을 전파하실 때 받아들이지 않던
영혼들이 지금 옥에 있다는 말이다. 그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20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이것이 연옥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또한 주님이 오시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하나님의 종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했는데,
그 말씀을 받아들인 자들은 구원받아 하나님께로 인도함을 받게 되었지만,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여,
하데스라는 옥, 음부에 있게 된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러면 이 해석은 성경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벧전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선지자)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을 보내시고,
그들의 입을 통하여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다는 말이다.
(결 론)
그러므로 설교 처음에 했던 질문 : 설교 제목이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구원이 가능한가? No, 아니다 라는 말이다.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에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거부하는가? 에 달려 있다.
만일, 오늘 본문 말씀을 오해해서 죽은 다음에도 구원의 2nd Change 가 주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 그렇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인데, 향락과 쾌락을 누리고 살다가,
죽은 후에도 기회가 있다고 하니, 그 때 가서 믿어 보겠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는 본문을 아무리 보아도 옥에 있던 영들이 그리스도의 영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죽은 후에는 결코 구원의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행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생명이 있는 동안에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고후 6:2)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지금, 믿지 않으면, 죽은 다음에는 믿을 기회가 없고, 구원도 없다.
(예화)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음부(지옥)에 떨어진 부자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래 오래 참아 주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생명이 있을 동안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이다.
(살아있는 동안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며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시는 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벧후 3:9)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롬 2:4-5)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기회, 회개의 기회를 놓치면 하나님의 진노를 나 자신에게 쌓는
결과가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왜 인자하심을 베풀고 오래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시는가?
우리로 하여금 회개케 하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해서 돌이켜 날마다 회개하고,
늘 회개하며 사는 가운데 구원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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