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가운데 누리는 행복 (고후 12:7-10)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부족함을 주신다.
사랑하는 자를 완전하게 안 하신다. 왜 그럴까요?
완전하게 안 하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다.
(예) 에덴동산에도 한 가지를 부족하게 하셨다.
다윗에게도 압살롬이라는 가시를 주셨다. 예수님에게도 가룟유다가 있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귀한 종이요 정말 충성스런운 종인데
하나님은 그에게 “가시”를 주셨다. 가시는 아픈 것이다.
바울에게도 아픔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제거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3번이나 기도했다.
그러나 응답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바울에게 있었던 그 가시가 뭐냐? 학자들마다 다르다.
그 중에 가장 유력한 견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안질, 또 하나는 간질병이라는 견해다.
바울이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으나, 내 병은 못 고칠 때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습니까?
남은 가르치나 내 자식은 잘 못 가르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간질병은 부끄러운 것이다.
설교하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도 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 가시가 있었으나 그 가시로 잘못 된 적이 없고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시”가 있다.
그런데 그 가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느냐를 깨닫기만 하면 :
그 가시가 결코 손해를 주는 것만은 아니다.
가시 때문에 백합화가 향기를 날리듯이 가정과 교회와 이 시대에
우리를 더욱 발전시키고 우리를 존귀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예) 어떤 경제 연구소 자료 : 어느 나라 사람이 가장 행복한가? 조사했다.
영국사람: 25%, 프랑스 사람:16%, 일본, 독일사람: 13% 의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가장 행복한 100%의 사람은 없고, 가장 행복한 국민이 25%이다.
하나님은 100%의 행복, 100%의 은혜를 주시기 않는다.
(예) 신경통, 고혈압, 심장이 나쁘다.... 등 이런 것은 다 괜찮다.
왜냐하면 한가지 씩은 다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문제로 생각하면 안된다.
세상에 병 없는 사람 없다.
자기가 건강하면 아내가 병이 있든지, 부부가 다 건강하면 자식이 병이 있든지,
자식이 문제 없으면 다른 면에서 어디엔가 또 아픔의 가시가 있다.
이 세상에서 완전하고 좋은 곳은 없다. 완전한 나라도 없다.
오래 전에는 미국이 좋다고 이민 와서 살지만 미국에도 살인, 강도, 이혼, 마약, 음란 등등
얼마나 문제가 많은가? 이 세상은 어디를 가든지 다 그렇다.
그래서 역이민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돌아가면 문제없나요? 또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문제 해결은 자기에게 달렸다. 자기 영혼에 달렸다.
가시를 어떻게 소화하고, 가시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하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예) 뇌성마비 자매, 송명희 시인을 보라.
가시가 없는 완전한 곳에 살려고 하면 안 된다.
가정에 가시가 있다. 사업에도 가시가 있다. 삶에 가시가 있다. 영적으로도 가시가 있다.
이것을 없애려고 할 때가 문제이다.
본문에 보면 가시를 하나님이 사탄을 이용해서 주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주신 가시이니 뽑지 말라는 것이다. 뽑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이 가시를 뽑아 없애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완전한 건강, 완전한 사랑, 완전한 기쁨, 100%의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 데서 불행이 있다.
에덴 동산에도 못 먹게 한 선악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없애려고 할 때 사탄에게 속게 된 것이다.
모든 슬픔과 저주와 사망이 찾아온 것이다.
여러분 !
최고의 행복을 찾아 헤메는 현대인들을 위해서 마약이 기다리고 있다.
잠깐이지만 꿈꾸라는 것이다.
교인들도 최고의 신앙, 최고의 기적, 최상의 은사, 최고의 영적인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시험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박태선에 빠지고 구원파에 빠지는 것이다.
초대 교회도 말씀을 억지로 풀다가 시험 들었다. 재림의 날짜는 모르게 되어있다.
그러나 다 알려고 하다가 시험에 들고 사탄에게 속는 것이다.
다 가질려 하고, 다 얻으려고 하면 사탄이 찾아 오는 것이다.
잘 들으세요.
부족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내려오는 것이다.
부족한 가운데 찬송 부르며, 연약한 중에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며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여기에 성도의 행복이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그 이상을 찾으면 마귀가 역사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행복, 그 이상의 은사, 그 이상의 만족에는 “마귀”가 기다리고 있다.
25%의 만족으로 감사하고, 25%로 만족해야 한다.
가정을 지키고 사랑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가정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남편에게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아내에게서 만족을 갖지 못한다.
아내에게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그 이상을 찾아 나서는 남편들을 위해서
술집이 기다리고 있고, 룸살롱이 기다리고, 창녀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또 남편에게서 부족한 점을 보고, 남편의 가시를 볼 때,
그런 부인들을 위해서는 어느날 조용한 날에 제비들이(?) 날아오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 완전한 행복, 완전한 쾌락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든지 사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완전한 남편, 완전한 아내가 어디 있나요?
(예화) 음식도 하나님이 주신 자연 그대로의 맛이 있다.
쓴맛, 단맛, 새콤, 달콤, 짭짤하고 은은한 맛 ... 다 다르다.
약간 모자란 듯한 그 맛이 좋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100% 맛만 기다린다.
완전한 음식을 찾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미원이라는 화학 조미료가 기다리고 있다.
왜? 하나님이 주신 자연 그대로의 그 맛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
좀 시면, 신맛 그대로, 새콤하면, 새콤한 그대로, 매우면, 매운 맛 그대로 얼마나 좋습니까?
(예) 한 여름에 상추 쌈에, 풋 고추를 고추장에 푹 찍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나요?
꼭 몇십불, 몇 백불 짜리를 먹어야 맛이고, 모든 음식이 준비된 뷔페 집에 가야 맛있나요?
부족함이 없는 뷔페 집은 오히려 손해다. 오히려 더 못 먹는다. 오히려 질려서 못 먹는다.
본전 생각나서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먹었으니 건강에도 안 좋다.
(예화) 그림도 훌륭한 작품은 옷 잘 입은 그림이 아니다.
애기 엎은 아주머니, 남루한 시골 아저씨, 밀레의 만종 ....
모자란 듯 하지만 은은한 것이 다 명작이다.
오늘 나에게 주신 그대로 “내 모습 이대로 주받으시옵소서”
좀 부족하지만 부족한 대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길은 많다.
그것이 성도의 삶이다.
부족한 가운데 누리는 행복, 이것이 성도의 행복이요, 에덴의 행복이다.
집은 없지만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순종 잘 한다.
월급은 적지만 화목하게 살아간다.
자녀는 없지만, 부부의 정이 많다.
남편은 없지만, 아이들이 착하고 건강하다.
돈은 없지만, 우리 가정은 주의 일을 열심히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들입니까? 얼마나 가시를 이기는 고백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부족한 가운데서도 행복을 누리는 자들의 고백인가?
이것이 가시를 복되게 해석하는 삶이다.
가시 때문에 불행 해 질 수 없는 삶이다.
사도 바울은 가시가 없기를 바래서 3번이나 특별 기도했지만,
부족한 이대로가 “하나님의 족한 은혜”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성도 여러분 !
누구든지 어떤 가정이든지 가시는 다 있다.
그러나 그 가시 때문에 불행해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가시를 크게 확대해서 해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있는 가시는 시험들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내 교회, 내 가정, 내 건강, 내 영적인 삶에, 그 가시 때문에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왜 바울에게 그런 가시를 주셨는가?
가시를 통해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가?
(1) 너무 자고(自高)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시를 주셨다. (7절)
“자고(自高)” 란 스스로 교만해 지는 것이다. 스스로 높아지는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나는 온전하다. 나는 최고다. 나는 다 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넘어진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실력도 좋다. 가문도 좋다.
영적으로도 실력이 있다. 3층천 체험까지 했던 사람이다.
교만하기 딱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최고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셨다.
하나님은 바울이 스스로 일생동안 나는 다 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한 가지 없는 것 때문에, 그 한 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한가지 가시 때문에
오히려 겸손할 수 있었고, 멸망받지 않고 영원한 은혜를 받았다. 귀한 종으로 쓰임받았다.
성도는 일생 예수를 믿어도 내 믿음이 부족한 줄 알아야 한다.
일생 교회 나와도 늘 부족한 줄 알고 나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
(2)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가시를 주신 것이다.
아이는 아프기 때문에 엄마를 찾는 것처럼 :
약하기 때문에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붙들라고 가시를 주셨다.
가시 때문에 기도하게 되고 엎드리게 되고, 가시 때문에 매어 달리게 되고,
가시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더욱 강하고 능력있는 성도가 된다.
그러므로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 (10절)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9절)고 고백하게 된 것이다.
여러분! 내가 약한 줄 알 때,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다 되었다. 이제는 안심이다. 이제는 섰할 때 넘어지게 된다.
약하니까, 주를 의지하고 성령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된다.
부족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도와 주신다.
부족한 곳에 은혜가 있고, 가시가 있는 자에게 더 큰 은혜가 있는 것이다.
땅도 참으로 고르게 하셨다. 땅이 좋으면 열매는 많으나, 지하자원이 없다.
땅이 안 좋으면, 사우디 아라비아, 알라스카에 지하 자원이 많다. 석유가 많다.
부족한 곳에 은혜가 더 많다.
(결 론)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했던 종, 다윗에게도 압살롬이라는 가시가 있었다.
그 가시 때문에 울고 울고, 쫒겨다니면서 시편을 기록했고, 다윗의 믿음이 성숙해져 갔다.
모세에게는 “바로”가 있었다.
에스더에게도 “하만”이라는 가시가 있었다.
모든 사람은 몸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어느 면에서든지 가시가 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가시를 꽂아 주셨다.
그러나 그 가시 때문에 잘못된 사람은 없다.
그 가시 때문에 손해보지 않는다.
오늘 설교 말씀은 다 기억하지 못 해도,
[부족한 가운데 누리는 행복] 이 제목만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행복한 것이다.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이 만세 전에 택하시고, 하나님이 귀하게 들어 쓰는 사람은 :
그 가시 때문에 더 잘되고, 그 가시 때문에 의지하는 내주를 더욱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더 귀하게 쓰임 받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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