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5일 토요일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는 신앙생활. / 롬 5:1-4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는 신앙생활. (롬 5:1-4)
신앙생활은 이 아니라, 누림이 되어 한다.
마치, 독수리의 날개<짐>이 아니라, <누림>이 되듯이
신앙 생활이 이 아니라, 누림이고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누리고, 기도를 누리고, 말씀을 누리고, 성도의 교제를 누리고,
전도를 누리고, 봉사를 누리고, 신앙 생활의 모든 것이 누림이 되어야
신앙 생활이 즐겁고 신난다.
오늘 본문에서 신앙생활의 축복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1-2절)
(1) 누림 (2) 즐거움.
(1-2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화평을 누리며 산다.
의 생각은 생명평안이니라. (롬 8:6)
성도는 믿음으로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란다>는 말은 :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땅위에서 보는 하나님의 영광은 온전하지 못하고 매우 부분적이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하고 완전한 영광을 보게 될 까요?
그것은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저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보게 될 것이다.
(예) 사도 바울의 영적 체험 :
(고후 12:4)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도 요한도 계시록에 천국의 아름다운 영광을 체험하고 기록하였다.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이다.
그 나라는 더 이상의 죄의 유혹도 없고, 슬픔도, 이별의 아픔도, 죽음도 없는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나라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슬픔도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엔 슬픔도 없네
고통은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 하겠네
우리의 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영원한 기쁨 넘치네
사도 바울은 이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성도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축복은 이것만이 아니다.
1) 성도들이 누리는 또 다른 축복과 영광. (3절)
(3절) 다만 이뿐 아니라 ... 이 말은 또 다른 축복과 영광이 있다는 말이다.
그 또 다른 축복과 영광이 무엇인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지는 놀라운 특권이다.
환난(헬라어, 들리보)란 말은?
마치 포도즙 틀에서 포도즙을 짜내듯이 피와 땀과 눈물과 고통을 짜낸다는 뜻이다.
또는 무거운 바윗덩어리가 내 몸을 짓누르듯이 누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을 지키는 문제로 환난과 핍박을 받는다.
(예) 지금도 지구상의 회교 국가나, 특히 북한 땅 같은 곳에서는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핍박받고 순교 당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미리 말씀해 주셨다.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이냐? 세상에 속한 사람이냐?
하늘에 속한 사람이냐? 땅에 속한 사람이냐?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우리의 소속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한다.
교회에서는 예수님께 속해 있다가 교회를 떠나서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진리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다고 하셨다.
(요 15:20)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요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질병도 없고 고난도 없고 핍박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다.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세상이고 공중권세 잡은 사탄, 악한 영이 역사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환난과 핍박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 동방의 의인 욥에게도 엄청난 환난이 있었다.
하나님이 사랑했던 다윗에게도 엄청난 환난이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도, 다니엘에게도, 사도 바울에게도,
사도 요한만은 밧모섬에서 유배생활 했고 나머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순교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난 당할 때,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고 원망한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느냐?
Why? 하나님은 날 버리셨나보다고....? 원망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르다는 말이다.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한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고 신비한 능력이다.
여기에 즐거워한다(카우코메다)는 말은 보통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너무 기뻐서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큰 기쁨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인 정체성은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의 즐거움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신앙의 문제로
환난을 받아도 그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는 말이다.
(이것을 이 세상에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벧전 5:10)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잠깐>이라고 말한다.
시간적으로 보아도 잠깐이고, 무게로 보아도 가벼운 것이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
(2-3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11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와 같이 3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아는 것은 내가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는가를 보면 된다.
내가 그냥 종교인인지? 참된 신자인지? 를 하는 길은 환난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말이다.
(Cf) 모든 일이 잘 될 때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환난핍박고난 중에서도 감사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고역을 주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누리고, 즐거워하라고 부르신 것이다.
그러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근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환난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기에 <앎이로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환난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알기 때문이다.
2) 환난이 가져다주는 유익이 무엇인가?
① 환난은 인내를 가져다준다.
환난은 인내의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인내는 반드시 환난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선물이다.
(예화) 운동선수들을 보면 피땀 흘려 훈련한다. 금메달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화) 아브라함 :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후 25년 후에 아들도 낳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야곱 : 20년 이상 온갖 역경과 환난을 보내고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되었다.
요셉 : 꿈을 꾸었으나 많은 억울함과 감옥생활과 역경을 지내고서 13년 후에 총리가 되었다.
(창 37:2 : 17세 소년, 창 41:46 : 30세)
②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
<연단>= 휘포메노 : 쇠붙이를 불 속에서 꺼내어 쇠망치로 쳐서 찌꺼기를 제거하는데서
나온 말로서 최후까지 남는다는 말이다.
연단 받아 견고해 지고, 명검이 되는 것이다.
(욥 23:10) 오직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연단을 통해서 정금처럼 마음이 깨끗해지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게 된다.
③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이룬다(= 카테르가제타이)는 말은 : 어떤 사건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환난은 환난으로 끝나지 않고 마침내 소망을 이룬다.
그러므로 환난의 마지막은 소망이다.
ㄱ) 환난을 통해서 보이지 않던 천국이 보이고 천국의 소망을 더 분명하게 본다.
ㄴ) 부요할 때는 안 보였는데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고
ㄷ) 건강할 때는 안 보이더니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
ㄹ) 기도가 안 되던 사람이 환난과 연단을 통해서 기도의 사람이 되고,
ㅁ) 돈과 재물로는 보이지 않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보인다.
그러므로 환난은 마침내 소망을 이루게 한다.
성도는 연단을 통해서 천국의 소망과 부활의 소망을 붙잡게 된다.
(예화) 페니 제인 크로스비의 위대한 생애 :
한평생 맹인으로 은혜로운 영혼의 찬송가 수천편의 찬송시를 쓴 세계 최고의 찬양 전도자이자
찬송가 시인, 페니 제인 크로스비는 미국인이 뽑은 미국 대통령보다 더 존경하는 금세기 최고의 인물이다. 한국인이 뽑은 가장 은혜로운 베스트 찬송가의 주인공이다.
(예를 들어)
♬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 인애하신 구세주여,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 오 놀라운 구세주, ♬ 나의 영원하신 기업,
♬ 예수 나를 위하여, ♬ 나의 생명 되신 주, ♬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페니 제인 크로스비 여사가 작사한 찬송가들이다.
페니 크로스비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 주의 작은 마을, 푸트남에서 태어났는데
의사의 실수로 생후 6주부터 맹인이 되었다. 생후 6주부터 95세까지 맹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불행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언제나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즐거워하면서
이처럼 놀라운 찬송가 시들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되었다.
(결 론)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처럼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바라고 즐거워하며,
승리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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