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비밀 (10)
한번 받은 구원, 영원히 안전할까?
요 10:28-29, 고전 9:26-27
(예화) 우리가 늙어서도 생기지 말아야할 병은 침해 이다. (자신과 가족에게 고통이 된다.)
전에는 예수님을 잘 믿고 신앙고백도 했지만, 만일 사람이 침해 환자가 되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거나, 신앙고백도 못하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죽으면 구원받을 것인가? 아닌가?
이런 문제가 오늘 설교 주제와 같은 문제이다고 볼 수 있다.
예수 믿고 한번 구원받았으면 안전할까? 결코 버림받지는 않을까?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답 = Yes & Maybe 이다. 성도의 견인을 잘 말해 주는 말이다.
1) Yes (그렇다) :
하나님의 견인은 : 원래 성도의 견인(堅忍) 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성도가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다. (칼빈주의 5대 강령에서)
(한번 받은 구원은 상실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견인 (牽引) (끌견, 끌인)으로 해석해서 :
자동차를 견인하고 (토잉, Traction, Hauling)하듯이, 하나님이 구원한 자를 끝까지 이끌고 가신다는 면에서는 구원이 안전하다. Yes이다.
그러나 perseverance(견인)堅忍 (굳을 堅견, 참을 忍인)
= 견고한 인내의 차원에서는 성도가 하기 달렸다. 그렇게 보면 Maybe(아마도) 이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예화) 갈릴리 호수 : 예수님이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막 4:35)
예수님 말씀을 듣고 건너갈 때에 풍랑을 만난다.
제자들이 깨우며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풍랑을 만나도 반드시 건너편으로 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끌고 가신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고난 풍파 중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것이다.
잠시 동안 풍랑은 있으나 장차 누릴 영광을 바라보면서 믿고 나가는 것이
성도의 견인이라는 확신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았으면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영원히 안전하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주님에게 주신 영혼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부모는 때로 어떠한 이유로든지 자식을 잃어버리거나 버릴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는 성도의 삶을 보살펴 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다.
이 말은 빼앗으려는 존재가 있다는 말이다. (사탄, 마귀이다.)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이라도 미혹하여 빼앗으려고 한다. (마 24:24)
사탄은 성도들에게도 정죄 의식과 자책감을 주어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만든다. (예) 욥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셨고,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담대하라고 하셨다.
마귀보다 더 강하신 예수님께서 꼭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는 말이다.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또, 한손이 있다. 아버지의 손이다.
(요 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아버지의 손은 만유보다 크신 창조주의 손이다.
(예) 동물원에서 엄마와 아빠가 아이의 양손을 붙들고 가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손목을 붙잡고 있으며, 놔주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님과 하나님의 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와 이끌어 주심이 있어서 다른 데로 갈 수가 없다.
설령 우리가 약해져서 죄 짓고 타락하여도 하나님은 결국 회개 시키어 그 사람의 구원을
이루시고야 만다는 것이다.
성도는 내 힘이 아닌 성령의 힘과 도우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고 만다.
어짜피 구원이 인간에게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먼저 주도적으로 시작하셨기에(롬 3장)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결구 우리의 구원을 반드시 성취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
밀 까부르듯 하는 것은 핍박과 시험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를 붙들고 계셨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을 3번 부인했지만, 다시 회개하고 돌아왔고, 순교까지 한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 날에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신다고 했다. (롬 8:34)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 베드로처럼 낙심하고 도망갈 수도 있다.
교회에서 문제가 생겨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신앙을 저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베드로처럼 주님을 배신하는 말도 한다.
그러나 선택함을 받고, 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결국에는 돌아온다.
아니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라도 돌아오게 하신다는 말이다. (예) 암병, 교통사고...
그러므로 걱정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 주셨으니 안전하고 보장받은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며, 모든 환난과 시험을 이기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우리를 견인(토잉)하고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 앞에서는 Yes가 답이다.
2) Maybe : (아닐 수도 있다. 아닐 찌도 모른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나 성도의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볼 때는
Maybe 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 문에 들어가기까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내가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붙들어 주시는 은혜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이다.
(예화) 마라톤 장거리 경주 42.195Km를 달린다.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뛴다. 중간 지점에 가면 체력도 떨어지고, 정신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계속 든다.
그러나 참고 인내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결승점에 들어 갈 수 있다.
그렇습니다. 교회 생활에서도 포기 하고 싶을 때, 내가 나를 설득하고 격려해야 한다.
내 영혼아 ! 어찌하여 낙심하는고? 너는 하나님만 바라라.
그래서 (堅忍, perseverance)이 필요한 것이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착한 일 = 구원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 = 재림의 날.
바울은 자신에게도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승리 지점까지 이끌어 가 주실 줄 믿는 확신이다.
그러나 이렇게도 말했다.
(고전 9:26-27)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버림받는 것은 자격 상실을 말한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넌 자격이 없다고 할까봐 내 몸을 쳐 복종시킨다는 것이다. 정신 차려라.
하나님 편에서는 우리를 붙잡고 있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는 시험을 참고, 고난을 인내하며,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
정신 차려... 네 마음대로 살면 안 돼...! 라고 하면서 살아야 한다.
여러분!
난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방종의 삶을 살면 ➡ 그 때 가보세요. Maybe
연약한 우리를 마지막 날까지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라고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오해해서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니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자 고 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씀들이 많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장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예를 들면서 하는 말씀이다.
그들은 홍해 바다를 건넘. = 구원을 말한다.
그러나 광야를 지나면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래서 다 버림받고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불신자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존 거그> 하나님의 백성이 죄와의 싸움 없이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도의 견인 교리를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승리의 면류관을 얻고는 싶은데 죄와 싸우기는 싫고, 적당히 방종하면서 살고 있으면
구원받은 백성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까지 매일 매일 죄와 투쟁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 성도의 견인 교리는 한번 구원 받았다고 해서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이 --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끔직한 왜곡이 될 것이다.
(CF) 아 ! 난 구원 받았는데...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짓고 회개하고... 할렐루야... !!
이것은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 아니다.
◉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안토니 훽케마 박사)
우리가 성도의 견인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끝까지 기도하며, 견디고,
우리가 가진 것을 끝까지 붙잡고,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거하며,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토잉 해 주시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왜 성도의 견인이라고 했을까요?
Maybe 사도 바울처럼 버림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 2:1)
우리가 들은 진리의 말씀에 유념해서 흘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지요.
적당히 방종하고 죄 짓고... 그러면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지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3) 그러면 교회 다니다가 타락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답 =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믿지 않았던 사람이다.
교회에서 세례도 받았고, 직분도 받았는데....
어느 날부터 교회를 떠났고 심지어 다른 종교로 간 사람도 있다.
(예) 고 3까지는 교회, 대학 입학 후 교회 졸업. 결혼 전까지는 교회, 결혼 후 교회 졸업.
직장 얻고 교회도 졸업 ... 신앙을 버리고 신앙의 노선에서 타락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답 = 처음부터 거듭난 것이 아니고, 그냥 종교심을 가지고 교회에 다닌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생기면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리는 경우이다.
(예화) 씨 뿌리는 비유 -- 길가 (아에, 교회 안 다닌 사람들)
돌짝 밭 (태양이 뜨거워 뿌리가 없어 환난과 핍박 때, 신앙을 버린 사람)
가시밭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여러 가지 걱정으로... 신앙을 버린 사람)
길가, 돌밭, 가시밭... 다 똑 같은 결과이다.
(예화) 가룟 유다는 12제자이다. 재정책임. 70인 전도 때 귀신도 쫓아내고 체험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신하고 마지막에는 자살하고 지옥 갔다.
어떻게 볼 것인가? 그는 처음부터 거듭난 것도 아니고, 가짜였다.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말씀이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여! 주여!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함.
이런 모습을 가지고 나는 안전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타락에 대한 경고의 말씀도 있다.
믿음의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등을 돌리고 계속 타락하여 거짓과 불의의 악한 길을
고집하며 간다면 그 사람은 믿음의 배가 파선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딤전 1:19-20)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성경 구절은 (히 6:4-6)
(히 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히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여기는 믿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거듭남도 없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도 없다.
그러므로 존 오웬 목사 (청교도 신학자) : 이 사람들은 참 신자가 아니라고 해석함.
한번 비침을 받고 = 세례.
하늘의 은사를 맛봄 = 성찬식.
성령에 참여함 =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으나 거부한 사람.
하나님의 선한 말씀 = 설교에 은혜 받음
내세의 능력 = 기적을 경험.... 그러나 타락한 사람들이다.
이런 것 자체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고백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오직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풀러신학교 김세윤박사 =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책)에서 :
이 두 가지를 성경이 다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서 이 두 가지 상반된 긴장을 의식하는 가운데
함께 견지하는 것이 건전한 신앙이다고 했다.
(결 론)
한번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히 안전할까? YES.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일 거듭나지 않았으면 구원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구원받은 성도인지 어떻게 아는가?
구원받은 성도라면 성도의 책임에 대해서 끈질기게 은혜를 구하며 노력한다.
이것이 구원받은 증거이다. 그 노력으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씀이 없는 성도는 구원받은 자가 아니다는 말이다.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구원 받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죄와 싸우며 몸부림치는 것이 구원 받은 자의 증거가 된다.
(주일 성수는 물론, 믿음으로 살기...)
그렇게 몸부림치며 애쓰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끌어 주시는 토잉의 은혜가 임하여
성도의 견인의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예화) 1992년 데리 에릭먼드 (육상 선수) 영상을 2가지 보라.
ㄱ)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절뚝거리며 달려온다.
ㄴ) 아버지가 내려와서 함께 완주 해 준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좌절되고, 의심이 오고,
절망의 순간에 오셔서 나의 등 뒤에서 밀어주시고 함께 완주케 해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직전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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