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3:1-28) 무엇이 진짜 복인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28절)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다.
예수 잘 믿으면 복 받고, 형통하고, 강건할 것을 믿는다.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죄인과 악인들은 심판받고, 벌 받고, 괴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좀 다른 말씀을 하고 있다.
믿음 생활하다가 낙심되고 실망 때가 있다.
본문은 아삽의 시이다.
아삽은 다윗 시대에 예배를 주관하던 사람이다.
(대상 16:4-5)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
통일 이스라엘 시대에 예배를 주관하던 우두머리이다.
그러니까 그는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어려운 일들이 찾아온다.
(2절)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면서 예배를 주관하던 믿음의 사람이 왜 절망하고 실망했는가?
3절에 이유가 나온다.
(3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내가 = 아삽이 악인의 형통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시하고 질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4절)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아니, 악인이 살았을 때에는 그렇다 할 찌라도, 죽을 때만큼은 고통 중에 죽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살았을 때에도 형통하고, 죽을 때에도 고통도 없고 그 힘이 건강하다.
(5절)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다른 사람들처럼 당하는 고난도 없다. 재앙도 없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 있나?
어느 한 순간에는 형통하고 잘 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악인, 오만한 자들이 손을 대는 것마다 잘 되고, 평생 잘 되고...
죽을 때에도 고통도 없이 평안하고, 힘이 넘쳐흐르고,
다른 사람들 같은 고난도 재앙도 없다.
(6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절)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8절)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또 놀라운 것은 :
(12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악하고 교만하고, 오만한데...?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해 가기만 하다는 것이다.
여러분! 구약 성경에서 늘 말씀하는 멧세지가 무엇이지요?
(신 28장) 순종하면 나가도 복, 들어와도 복, 불순종하면 나가도 저주, 들어와도 저주...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닌가?
(사 3: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은 안 그렇다.
그 악인들이 죽을 때까지 강건하고 평안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11절에서) 그들은 무신론자들처럼 말하고 있다.
(11절) 그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CF) 목사님은 세상을 잘 모르시는 것 아닙니까?
세상은 원래 모순덩어리이고, 그런 세상이 아닌가?
이렇게 맘 편하게 말씀하실 분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문제가 나에게 직접적인 상관이 없으면 그렇게 말하고, 방관자가 된다.
(14절)을 보자. (14절)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악인들은 잘 되고, 오만한 자가 형통하다.
≠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고, 목숨 걸고 주일 성수하고, 열심히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나(아삽)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고 있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악인의 형통은 OK, 그러나 의인은 챙겨 주셔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아삽에게는 종일 재앙과 아침마다 징벌이다.
여러분, 이해가 됩니까?
(13절)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내가 열심히 예배드리며, 정직하게 산 것이 다 헛되도다. 소용없다.
이 모습이 누구와 비슷합니까?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기도 열심히 하고, 헌금내고, 봉사 열심히 하고 있는데 지금 내 모습이 뭡니까?
사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자식이 제대로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나는 뭔가?
악인은 형통한데... 내 몸에는 암 세포가 생겼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 다 헛되구나... 하나님 믿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서 (2절)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실족했다는 말인가? 아닌가? 미끄러졌다는 말인가? 아닌가?
넘어진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거의 실족할 뻔하기는 했지만, 실족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 가운데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가요?
그 해답이 17절에 나온다.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왜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가? 왜 이렇게 모순덩어리인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인간적으로 연구해 보세요? 답이 없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를 세상을 뒤져서는 답을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만이 그 답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깨달은 것은 그들의 <종말>을 말한다.
악인과 오만한 자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고, 질투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복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디어 알게 된 것은 :
그들이 누리고 있던 그것이 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 영원한 복으로 인도할 것은 그들이 누리던 세상 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게 되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진짜 복은 (28절) 이다.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게 될 진짜 복은 무엇인가?
오만한 자의 형통함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 있는지?
이것만이 나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참 복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실족할 뻔했고, 미끄러질 뻔했고, 넘어질 뻔했으나, 넘어지지 않았다.
(예화) 우리는 때때로 세상 사람들 잘 되고 나는 어려울 때 낙심할 때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진짜 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 :
낙심이 변하여 감사가 나온다.
종말에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예화)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 이라는 복음성가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복음성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참으로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하나님이시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잘난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아무 공로 없으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선택해서 자녀 삼아주신 것이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은혜 되고, 감사의 이유가 된다.
아삽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 복의 개념이 달라졌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여기서 질문하나 드려보겠습니다.
ㄱ)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인가?
ㄴ) 하나님께 가까이 하면 내게 복인가?
하나님께 가까이하면 내게 복이 올 거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한다. 아니다.
이 말씀은 :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다. 조건절이 아니다.
조건절이 아니라면? 예수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요?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조건절이다. 그리하면.... 어떻게 해 주신다고 하셨지 않은가?
예수님의 의도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에 있나요? 후자에 있나요?
주님의 진짜 의도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예화) 자녀에게 신약 성경 1독하면 자전거 사줄게...
그러면 자전거 사 주는 것이 포인트인가? (x)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이 부모의 포인트인가? (o)
부모는 자녀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조건을 건 것이다.
(마 6:33) 이 말씀이 형태는 조건절이지만, 주님의 목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고, 이것이 진짜 복이라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을 더해 주는 것은 보너스에 불과한 것이다.
(예화) 우리가 헌금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면서 뭔가가 있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을 하면 헌금과 기도나 봉사 생활은 투자가 된다.
그러나 예배는 그 예배 자체로 복이다.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 그 자체가 복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참 복은 종말론적인 복이다.
마지막이 복이어야 한다. 죽음 앞에서 복이어야 한다.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하나님의 참 성소, 천국에 들어갈 때에야 그 결국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제가 목회를 하는 교회에 대한 사명이 있다.
그것은 아침 안개와 같은 그런 세상 복을 붙잡고 살지 말고,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참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할 사명이 저에게 있다.
(예화) 옛날에 시골 교회 집사님. 새벽기도 날마다 1시간씩 걸어서 다녔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발이 빠진다. 양말이 다 젖는다.
다녀와서 난로에 양말 말리면서 찬송을 부른다. ♪
(1절)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3절) 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 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사실을 알 때, 가난도 고난도 다 사라지고 만다.
이 복을 알고 나니까, 원망도 다 사라지더라.
인생에는 어려움이 있다. 악인이 형통함을 보면서 실망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
어려웠던 그 때의 추억도 아픈 추억이 아니고 지금은 아름다운 간증이 된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참 복이라는 사실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런 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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