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7일 목요일

이제는 자다가 깰때라


성경 : 로마서 13:11-14
제목 : 이제는 자다가 깰 때라.
 
L.A.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번 이상은 라스베가스 도박장에 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라스베가스 카지노 도박장 안에는 4가지가 없다고 한다.
1) 시계가 없다.
2) 거울이 없다.
3) 창문이 없다.
4) 쉴만한 소파가 없다.
 
시계가 없는 것은 시간이 없는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처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으라는 것이다.
거울이 없는 것은 자기의 모습을 보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밖을 볼 수 없는 창문이 없는 것은 밖에는 밝고 좋은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
소파가 없는 것은 오직 도박에만 열중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앞만 보고 앉아 있도록 하고,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은 사람처럼 앉아 있다. 눈은 떴으나, 잠든 사람과 같습니다.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본문에는 깊이 잠든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영적인 잠을 말한다.
깊이 잠이 든 사람은 의식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그는 어두움과 무지와 망각의 세계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기에는 시간의 새로운 개념을 말하고 있다.
1) 보통 시간의 개념은 흘러가는 시간을 말한다. (크로노스)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는 세월이다. 흘러 보내는 시간이고, 무의미한 시간이다.
뒤로 보내는 시간이다.

2) 성경적 시간관은 의미 있는 시간이다. (카이로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간이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모하며 미래를 향해 가는 시간이다.
하루를 살아도 그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마치 열 처녀 비유처럼 신랑이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졸지 말고, 깨어 기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본문에는 두 종류 시간 세계 속에서 사는 인생들이 있다.
하나는 빛의 세계 속에서 사는 인생과 어두움의 세계 속에서 사는 인생이 있다.
어두움이란?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가 난무하는 세계이다.

(살전 5: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라고 했다.
술 파티는 주로 밤에 벌어진다. 이 시간은 영혼을 파괴하는 시간이요.
이것은 성도의 삶이 아니다.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므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2)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6:13) 고 했다.
왜 갑옷을 입으라고 했을 까요
그리스도의 삶은 전투이기 때문이다삶 자체가 전쟁이요. 전투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싸움터 한 복판에 있다.

예수 믿는 것 자체가 치열한 영적 전투에 들어 온 것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했다.(딤후2:3)
삶을 그냥 내버려두면 그냥 망가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냥 버려두면 자유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 좀 먹고, 방종만이 지배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빛의 갑옷을 입고, 영적 전쟁의 삶을 살아야만
어두움의 삶에서 벗어나 살 수 있다.
성도란 죄악과 싸우고, 자기 자신과 싸우고, 사탄 마귀와 싸우는 것이다.
 
그러면, 왜 빛의 갑옷을 입고 빛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잘못된 핑계와 오해가 있다.

1) 자동 성화설 :
예수를 믿으면 자동적으로 언젠가는 어두움을 벗고 빛의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만, 자동적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동적으로 거룩하게 되고 자동적으로 선하게 되고, 자동적으로 의롭게 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내 입술이 저절로 변화되어 비방하는 입술이 변해서 남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입술로 변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가운데 자기 투쟁, 자기 절제, 자기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2) 불가능설 :
예수 믿어도 난 매일 죄 짓는데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단 말인가? 안 된다는 것이다.
자포자기하며 오해하는 케이스가 있다. 나중에 천국에 가는 것만으로 만족하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나중에 천국에 들여보내 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거나, 그리스도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으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인생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세상과 싸우고, 육신의 정욕을 물리치며, 죄의 본성과 싸우는 투쟁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3) 신비주의설 :
신비적인 체험,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고 생각하는 자이다.
사도바울처럼 3층천에 다녀오고, 방언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면, 나도 빛의 사람이 되고,
빛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오해한다.
 
(예화) 꿈에 예수님을 한번이라도 보면 잘 믿을 것처럼 말한다.
성경에 고린도교회를 보면 예수 믿고 가장 성령의 은사체험을 많이 한 교회다
그러나 가장 많은 문제가 있었던 교회다.
시기와 파벌과 분쟁과 음란한 타락, 서로 자랑하고 신앙 공동체를 깨뜨린 교회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올바른 신앙적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의 환경, 우리의 삶을 악습에서 탈출을 위한 철저한 투쟁과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하다.
 
어두움의 삶을 단절시키는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술병, 화토장, 카드... 다 버리라.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어두움에 속한 모든 유혹을 거절하는 결단, 결정이 필요하다.
신앙이란 결단하는 것이다. 예수 믿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기 위하여 첫째로 거절하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이것을 못하면 새 것을 소유할 수 없다.
 
(예화)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떠나야 완전한 독립된 생명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어두움에 속한 일들 즉,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쟁투와 시기와 탐욕과
거짓의 일을 단절하는 용기가 없다면 새로워 질 수 없다.
 
성도 여러분 !
예수 믿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정정한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한다. 내가 전에 좋아하던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였을 때 떠남으로
새로운 삶의 출발이 시작 된 것처럼, 지금까지 살던 어두움의 삶에서 떠나야 한다.
지금까지 정들고 익숙했던 고향의 삶과 습관과 문화를 떠나 버리고, 떠나야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
 
(예화) 롯의 아내는 소돔성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다봄으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
단절이란? 죽음만큼이나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잡으려면, 옛것을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놓치고 만다. 새 옷을 입으려면 옛 옷을 벗어야 한다.
 
(예화) 출애급 사건은 옛 생활에서의 탈출 사건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에 노예 생활을 하던 애굽을 탈출하고 모든 옛 것을 버리고,
홍해를 건넜으나, 끊임없이 과거를 그리워했다.
그 때는 종이긴 했지만, 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 하면서 옛 애굽을 그리워했다.
이것이 얼마나 불신앙적이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배신인가?
 
어두움을 끊어 버리는 단절과 탈출 할 때,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축복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의 재미에 미련이 남아 있습니까?
그래서 어두움의 일인 줄은 알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버리는 그 만큼의 희생이 필요하고 댓가가 필요하다. 삶의 아픔을 치루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말은 회개하고 버리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은 탐욕과 정욕과 음란과 호색 ... 등등을 끊어버리는 단절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이렇게 속삭입니다.
1) 언젠가는 너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중에 하라.
대학졸업하고, 결혼하고, 애들 대학 보내고, ... 하여간 나중에 하라.
2) 꼭 한번만 해라. 이것이 마지막이다.
3) 하나님 핑게 대게 만든다. 하나님이 능력 주시지 않으면 나는 못 떠납니다.
핑계를 하나님께 돌리고 스스로 패배감 속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있다.
4) 조상 핑게  : 나는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인자(DNA)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다.
벗어 날 수 없다고 핑계 댄다. 아닙니다.
 
여러분 !
하나님 핑계 대지 맙시다. 사탄 핑계 대지 맙시다. 조상이나 부모도 탓하지 맙시다.
난 어쩔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지 맙시다. 당신도 깰 수 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어두움의 일을 누가 벗겨 주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내가 벗어 버려야 한다.
내가 “NO, 아니요 라고 선언하고 공포해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저항을 의미한다.
통나무와 송사리의 차이는 통나무는 커도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지만,
송사리는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안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생명력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저항해야 한다. 악에 대하여 저항해야 한다.
거짓을 저항해야 한다. 어두움을 벗어버리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개신교란 Protestant 라고 한다. 반대자 극복자 저항자란 뜻이다. resistant에서 나온 말이다악과 불의에 대하여 저항하고 거룩함과 선함과 의로움을 따라 가는 자들이다.
거룩한 목표를 가지고 세상의 거짓과 죄악을 저항하며 사는 자들이다.
 
오늘 본문은 성 어거스틴이 회심한 말씀이다.
그는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읽고 나서 새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물음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선명한 빛이 들어 온 것처럼 의심이 사라졌다. 너의 비참함을 인정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옷으로 너의 부정함을 덮으라. 그 분의 빛으로 어두움이 벗어졌고,
그 분의 빛으로 눈에 비늘이 벗겨졌다. 나는 볼 수 있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음으로 옛것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나는 새것이 되었노라 고 했다.
 
(결 론)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고 있다. 이제는 낮이 가까왔으니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영적인 잠에서 우리 모두 깨어나서 말씀의 옷, 의의 옷, 빛의 갑옷을 입고, 믿음의 승리를 위하여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 합시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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