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27-31
하나님을 앙망하라.
(예화) 영국의 역사를 바꾼 윈스턴 처칠이 상원의원에 출마했다.
사람들은 그가 당당히 이기리라고 모두 생각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실패하였습니다. 낙선(落選)한 것이다.
처질은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상하여 두문불출하였다. 사람을 만나기도 기피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창가에 서 있던 그는 우연히 벽돌공의 날렵한 손놀림을 주시하게 되었다.
벽돌공은 벽돌 한 장을 쌓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발랐다.
그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 견고하고 거대한 담벼락이 완성되었다.
처칠은 할 일이 없었기에 멍하니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처칠은 마음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인생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는 작업이다.
인생 여정을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 다시 한다.>
그 날 벽돌공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그는 다시 정치계에 뛰어들어 평생을 지치지 않고
활동하는 성공적 인물이 되었다.
이사야서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① 이사야서의 전반부 1장∼ 39장 :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범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장면이다. 포로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가장 아픔을 당하고 있는 상태이다. 절망이다. 비극이다. 고통이다.
② 이사야 후반부 40장∼ 66장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낙심하고, 지쳐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멧세지이다.
유다 나라는 70년이 지나면 해방되어 다시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주고 있다.
위로와 격려의 멧세지이다. 결코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절망할 수 없다.
◉ 그러면 왜 우리가 소망의 하나님을 앙망하며 바라보아야 하는가?
1. 영원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28절 상)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낙심하지 말고,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의 무궁성, 전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전능의 하나님이시다.
전지전능하신 영원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 성도들은 인생을 여유롭고, 길게 보아야 한다
조급하면 안 된다. 지금 여기, 현재만 보면 안 된다. 오늘에 살지만 내일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예화) 영화를 가끔 볼 때가 있다. 주인공을 죽이려고 뒤로 다가가서 갑자기 총을 댔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다. 모두 가슴을 조마조마해 가며 피를 말리는 긴장감이 돈다.
그러나 사실 걱정할 것 없다. 왜냐하면, 영화 초반인 데, 저 주인공이 벌써 죽을 수 없다.
주인공이 영화 초반에 죽는 경우는 없다. 멀리 보면 여유가 있다.
(예화) 아빠가 3살 난 아들을 데리고 동물원 구경을 갔다. 사자 우리 앞에 가서 섰다.
사자가 어린아이 앞으로 오더니 으르렁거렸다. 아이는 무서워서 <아빠!> 하며 울었다.
<왜?> 아빠가 물었습니다. <저 사자가 무서워요. 나 잡아 먹으려고 해요>
그 때 아빠가 말했다. <너는 사자만 보지만 나는 사자와 너 사이에 창살도 보고 있단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사야 선지자와의 대화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바벨론을 보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사야는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바벨론만 보고 있지만 나는 바벨론과 너희 사이에 있는 하나님도 보고 있다.
그 분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문제만 보기 쉽다. 그래서 외칩니다.
<하나님 골리앗 좀 보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골리앗만 보지 말고 나도 보아라. 나는 영원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또 있다.
(고후 4:7-9)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창조하셨지만, 지금도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신다.
막힌 것을 뚫으시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그렇습니다.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을 믿으면 불가능은 없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 4;17-22)
없으면 있게 하시고 안 되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결코 낙심할 수 없다.
2. 피곤하지도, 곤비치도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8절)
(28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이 말은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무한한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는 그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 살 수 있다.
피곤치도 않고, 곤비치도 않으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우리도 곤비치 말아야 한다.
그 분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화) 한 믿음이 훌륭한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놓고 유언한다.
<아들아,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너를 돌볼 수가 없구나. 나는 너를 떠나지만 하나님은 너를 떠나지 않으신단다. 네 평생 네가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은 네 평생 너를 떠나지 않으신단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기만 하면 너는 세상에 누구도 두려워할 것이 없단다. 하나님을 붙들고 굳굳히 살아라.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도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란다.>
이렇게 유언하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이것 보다 더 훌륭한 유언은 없을 것 같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붙들고 살았다. 하나님이 늘 자기를 지켜 주심을 믿고 살았다.
3. 명철이 한없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28절 하)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명철은 지혜이다. 하나님은 지혜의 원천이요, 근본이시다.
명철이 무한하신 지혜의 하나님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잠 3:15-18)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때 그 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늘 지혜를 구하며 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4. 능력과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8-29)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힘을 주시면 지치지 않는다. 곤비치 않습니다. 피곤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살게 하신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30-31)
젊은 독수리처럼 올라가게 하고, 소년처럼 달려갈 힘을 주신다.
(예화) 리빙스턴은 이 말씀 하나를 붙들고 아프리카를 정복하였다.
날마다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승리하였다.
이 말씀을 붙잡고 살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신학자는 새 힘을 주신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을 주신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예화) 오래전 미국에 경제 불황이 찿아 온 적이 있었다.
미국의 31대 대통령, 후버 대통령 때였다.
대 경제 불황이 골리앗처럼 큰 발자국 소리를 내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후버 대통령은 인기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언덕 넘어 번영이 있다고 국민들에게 빈
소망을 불어넣었다. 그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1,500만명의 실업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실업자들의 홍수 속에 후버 대통령은 떠내려가고 말았다.
미국 후버 대통령 다음 대통령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출발하였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1,500만명 실업자들이 빵도 없이 버터도 없이 굶주리고 아우성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5천만명의 농사꾼들이 농산물을 팔지 못하여 고통 속에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석유도 없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도시와 농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도시인이 농산물을 사 주어야 합니다. 만일 도시인이 농산물을 사지 않으면 농촌인이
도시의 공산품을 살 수가 없어집니다. 동부와 서부가 하나가 되고 남부와 북부가 하나가 되면 불황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가진 자가 나누어주는 것이 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같이 잘 살 수 있습니다>
드디어 루스벨트는 미국을 불황에서 빠져 나오게 하였다.
기도하는 대통령은 기도로 모든 것을 극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올라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달려가게 하신다.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을 받아서 올라가고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 지도자 연구센터가 있다.
그 곳에서 미국의 최고 경영자들과 성공한 사람들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였다.
그 연구 결과 세 가지 공통점이 나왔다.
첫 번째 조건은 그들에게 큰 비전이 있었다. 두 번째는 끈기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포기해도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끈기가 있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성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젼을 가지십시오.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인내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를 의지하십시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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