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7일 일요일

★ 행복한 가정, 하나님의 디자인(2)


에베소서 5:22-23 (행복한 가정, 하나님의 디자인 )
                                                       남편과 아내의 관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결혼은 하나님의 디자인이고, 이 결혼을 통하여 가정을 이루고, 후손을 낳고, 복도 누린다.
에베소서 5은 결혼에 대하여, 남편과 아내에 대하여 복된 말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막연히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중하라.
그리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 줌 같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묵상할수록 놀랍다. 왜냐하면, 에베소서는 2,000년 전(), 1세기 때이다.
로마제국 아래서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극에 달하던 때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주께 하듯 하라고 했다.
또한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하듯 하라고 했다.
이런 식의 표현을 서슴없이 쓰고 있다. 이것은 대단한 것이다.
 
또 하나는 로마제국의 상황 가운데서 남자들의 권력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그 이상이다.
한 가정 안에서 남편의 권력은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그 당시 여자와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이권이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남편들아!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줌 같이 사랑하라.
그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그 당시 남편의 권위와 권력은 대단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다.
여자와 아이는 이권이 없는 시대에서 참으로 바울의 발언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1세기는 로마제국이 무너져가는 시기이다.
로마의 전성기는 이 에베소서를 기록하기 약 300-400년 전이다. 
지금은 로마제국이 서서히 쇠퇴 해 가고 있던 시점이다.
그 로마제국이 왜 이렇게 무너지고 쇠퇴하게 되었지요?
가정이 무너지고, 부부가 깨어지기 시작했고, 동성애가 만연해서...
가정이 붕괴되니 그렇게 막강했던 로마제국도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한 철학자는 로마시민들이여, 가정을 지키시오. 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렇게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가정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때였다.
그러한 그 때, 이와 같은 형태로 말씀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

실제로 에베소의 교인들은 바울이 보낸 이 서신을 읽고 아우성을 쳤을 것이다.
아니, 왜 우리만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
모든 남자들이 다 그렇게 살지 않고, 권력을 휘두르면서 살아가는데, 왜 우리 크리스챤들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하느냐? 고 질문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내들은 질문이 없었을까요?
아니, 남편이 존경스러워야 존경하지....
전혀 그런 꼴을 볼 수가 없는데... 무슨 복종을 하고, 존경하느냐
항변하는 질문을 했을 것이다.
 
이런 모든 질문들과 아우성 앞에서 바울은 뭐라고 답변합니까? 놀라운 답변을 한다.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비밀은 소문하고 다른 것이다. 다 알고 있으면 비밀이 아니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고 있지만, 너희들은 이 비밀을 간직했기 때문에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비밀이 어디에 숨겨져 있다구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뜬금없이, 남편과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니, 결론부분에 와서 하는 말이,
나는 부부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까,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교회와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 였다.
한번 봅시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캐치해야
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창세기 2장의 본문을 가지고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창세기 1-2은 천지창조이야기다
반복적인 구절 :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문장이 나타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더라.
죄는 창세기 3장부터 나오기 때문에, 2장은 죄로 인한 어떠한 어려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더라.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이것은 죄가 들어오기 전부터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 좋지 못하니... = <로토브> 이다. = No, Not. 토브 = 선하다.
그러니까, 선하지 않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의 완전하신 선하신 뜻이 아담 혼자서는 그 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담에게서 완전한 선을 이루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돕는 배필을 지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신자들의 부부이고, 성도들의 가정이다.
왜 우리는 결혼을 합니까? 더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선을 부부가 함께 이루어 가기 위한 것입니다.
혼자서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온전하신 선과 뜻을 이루기가 어렵다.
이에, 부부가 되어서 열심히 돈을 벌어서 집을 장만하자가 아니라,
힘을 모아서 하나님의 선하신 그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신자들의 부부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무엇을 돕는가? 남편을 돕는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돕는 배필이다.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이 말씀을 보면 왜 갑자기 생뚱 맞는 구절이 나온다.
18절과 19절이 연결이 잘 안 된다.
18절에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으면, 21-22절의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왜 갑자기 왜 갑자기 아담이 짐승의 이름을 짓는 말씀이 나오는가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담이 짐승의 이름을 짓기 위해서는 짐승 하나 하나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누구 인들 그냥 이름을 짓지는 않는다.
() 코끼리는 코가 기니까, 코끼리... 기린은 목이 기니까 기린... 거북이는 느리리까 거북이...
관찰하고 이름을 짓는다. 이에 아담은 모든 짐승들을 관찬하고 살펴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2가지를 깨닫는다.
(1) 이 땅의 모든 짐승들은 암수 짝이 있구나. 그런데 왜 나는 짝이 없을까?
(예화) 미혼하신 남녀들이 교회와서 아, 다 짝이 있구나 그런데 왜 나는 짝이 없을까?
그런가 하면, 저런 분도 짝이 있는데, 나도 짝이 있겠구나... 희망을 갖는다. ㅋㅋ
(2) 그런가 하면, 둘째로 모든 짐승들을 살펴보면서 아담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것은 
없더라는 알았을 것이다. 
모든 짐승은 암수 짝이 있는데, 왜 나는 짝이 없을까
그리고 그 어떤 짐승도 아담의 마음을 흔들어 주는 것은 없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배필이 될 대상은 없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먼저 확인 시켜 주신 다음에 이제 하나님이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데리고
왔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21-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여기에 한 단어가 생략되었다.
영어 성경에는 있다. And...이것은 좀 약하다. 본래는 <마침내>이다.
 
마침내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하는 말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아담이 모든 짐승들을 살펴보았으나, 아담의 마음을 흔들 대상이 없었으나,
그런데 하와를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여러분, 시점이 중요하다.
보자마자 아담이 하와에 대하여 뭘 안다고 이렇게 말합니까?
자녀들에게 말하세요. 너무 따지지 말라. 너무 다 알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 말라.
아담도 하와에 대해서 뭘 모르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뭘 모를 때 결혼해야 한다.
그러면 억울함이 생기겠지요? 이런 남자인줄 몰랐는데.... 이런 여자인 줄 몰랐는데...
그러면서 뭘 소망하고 기대합니까
다시 오실 주님만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다.

너무 따지지 마세요.
아담이 하와에게 어떻게 이 고백을 합니까?
배우자가 될 사람은 하와밖에 없었음을 동물 이름을 짓게 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이 후로는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남자는 
이 남자 밖에 없다내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여자는 이 여자 밖에 없다.
그가 무슨 짓을 하든지,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여자는 이 여자 밖에 없다.
이 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보다 이름을 지어주는 더 중요한 구속사적 의미가 있다
이게 진짜 중요하다
왜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을 아담에게 지어주기 전에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짓도록 했을까?
누가 이름을 지어주는 자입니까?
적어도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다스리고 통치하는 자만이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이에 (19절 하반절)을 보면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어떤 존재인지를 부가시켜 준다.
이제 이 땅의 통치자는 아담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준다. 아담은 누구? 통치자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두 번째 아담이 나온다. 누구신가?
영원한 통치자, 완전하신 통치자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아담이라고 했다.
(5:14)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고전 15:45)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
(고전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이것을 기억하시고, 이제 첫 번째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지어주는 장면을 보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했다고 했다. 잠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다
통치자 아담을 죽게 한다. 그리고 갈비대를 취하셨다. 왜 하필이면 갈비뼈인가?
발가락 뼈이면 여자를 무시하게 되고, 머리뼈이면 여자가 남자 위에 굴림하지 못하도록 하고,
갈비 뼈이기 때문에 가슴에 품고, 동등하게 사랑하라고 한다는 해석의 설교를 많이 들었다.
타당한 해석이고, 그 마음은 알겠으나, 성경을 그런 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왜 갈비뼈인가? <갈비대 = 젤라> 이고, 신약 성경에서는 헬라어로 플루라 (열구리)이다.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이 모인 곳에 오셔서 :
(20:20)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옆구리를 찔려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그 보혈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교회를 만들어 내신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이 지나고 승천하신 후 10일 만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다.
그래서 교회가 탄생되었다. 그러면 이제 연관이 된다.
창세기의 아담을 잠들게 하여 죽이신다.
그리고 그 갈비대를 취하여 아내 하와를 만들어 낸다.
이에, 신약성경의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다.
옆구리를 찔러 죽게 하여, 그 흐르는 피로 교회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바울이 남편과 아내에 대하여 이야기 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이 비밀이 크도다.
그렇습니다. 부부 관계의 비밀이 어디에 숨겨져 있다구요?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한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런 역할을 해야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가정에서 예수님이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할을 가정 안에서 남편에게 허락해 주셨다는 
말이.
 
이에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은 :
1) 육신적으로는 수고하여 그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다.
(Cf) 내가 무슨 돈 벌어오는 기계야? 맞습니다. 그거 하라고 남편을 주셨다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이것이 남편에게 주신 복이다. 나는 돈벌어오는 기계다. (따라합시다.)
 
2) 그런데 참으로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역할이다.
노아처럼, 가족을 구원시켜야 하는 것이다.
노아는 1년 동안 방주 안에 있었다. 1년이 지나서 물이 걷혔다. 그럼 이제 나가야지요?
그런데 안 나간다. 그것도 50일 동안 안 나가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렸나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가도 좋다는 말씀이 떨어지기까지 안 나간 것이다.
그 가정의 가장이었던 노아는 나가고 싶어하는 가족들을 누르고 아니야,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까지 잠잠히 참고 있었다.
가장인 노아는 그 역할을 한 것이다.
마침내 방주 바깥으로 나왔는데, 나와서 할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가족을 다 불러놓고 예배를 드린다. 노아가 주도한다. 그 가정의 남편이 그 일을 한다.
가정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남편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모든 가족의 구성원들이 아버지를 보면서, 또한 남편을 보면서 예수님을 떠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남편이다.
 
그런가 하면, 아내는 복종해야 한다.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Not I, but Christ.
이 말이 가정 안에서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내이.
아내 여러분, Not I, but Husband. 가 되어야 한다.
 
(예화) 주차장에서 빈 곳이 잘 보이지요? 남편이 주차하는 곳이 천국이다.
그 곳이 어떤 곳이든지 감사합니다. 그래야 한다. 교회가 그런 곳이다.
 
여러분의 생각에 교회는 이렇게 가야 하겠다고 하는 기특한 생각이 많이 들어온다.
우리 모두가 교회를 위한다고 다 이야기하면 우리 교회는 안 됩니다. 추락합니다.
한번 그렇게 해 보세요. 지금 이 순간 기특한 생각이 있을 때, 이 생각을 말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떻게 가는지 보자 구요? 510년 후에 어떻게 되는지 보세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든든히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처럼 복종이듯이, 가정 안에서 아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남편을 존중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아니, 목사님, 복종할 만해야 복종하고, 존경할 만한 꼴이 안 보여요
그런데 무슨 소리합니까?
혹 그런 마음이 드십니까? 자매 여러분, 주변을 돌아보세요.
그렇게 존경할 만한 남자가 있는지...? 
아주 소수의 희박한 돌연변이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대다수의 정상적인 남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는 존재들이다.
 
() 저 집사님(권사님)의 남편은 그래도 존경할 만 하잖아? 그렇게 생각이 드시면...
한번 찾아가서 당신은 저런 남편 두어서 참 좋겠어요? 물어보세요.
그러면 뭐라고 말할까요? 당신이 한번 데리고 살아 보세요.... 
여러분! 그런 사람 없습니다.
존경할만해서 존경할 것 같으면, 그것은 신자들의 모습이 아니다.
먼저 존경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먼저 사랑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예화) 선한 사마리아 사람 : 제사장도, 레위인도 다 비껴갔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먼저 은혜를 베푼다.
예수님은 질문한다.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먼저 사랑을 베풀고 복종하는 것이다.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신자 부부의 모습이다.
 
왜 싸우지요? 이기고 싶어서 싸운다.
그런데 성경은 누가 이길 것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성경의 관심은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성경의 가정에 대한 관심은 얼마나 말씀으로 깨끗한가? 이것이다.
얼마나 하나님 말씀 앞에서 거룩한가? 이것이다.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지고 있나요?
우리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가정으로 세워지고 있나요?
이것이 성경의 관심이지, 누가 이길 것인가? 이것은 관심이 없다.
 
창세기에서부터 부부에 관한 정의를 내려 주었다.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둘이 한 몸이다는 말이다. 누가 이기든 무슨 상관이 있나요?
둘이 한 몸이 되는 귀한 신자의 부부, 가정의 모습이 우리 속에 날마다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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