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요한일서 3:3-4
제목 : 무엇이 죄인가?
성경은 죄에 대하여 처음부터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 1-2장의 창조 이야기가 끝나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타락하게 된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죄는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내었습니다.
죄는 인간에게 질병과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가져왔다.
(렘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사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본래 죄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하마르티아” 이다.
즉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활을 쏠 때 관역판에 정 가운데를 맞추지 못한 화살처럼 빗나간 모든 생각과 행위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반감을 느끼는 말이 죄인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게 느끼십니까?
(속으로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지식적인 대답보다는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왜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가?
그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커지기 때문이다.
(예화) 다른 사람의 집에 놀러갔는데 우리 집 아이가 그 집 꽃병을 깼다.
집 주인은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고맙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명나라 도자기였다면, 그 사실을 알기 전하고 안 후 하고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그렇게 귀한 가보를 그냥 용서해 주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와같이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 것을 알 때 하나님의 사랑이 실감이 난다.
그러나,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날 위해 무엇을 해 주셨다기 보다는 마치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봐드리는 것 같은 기분을 없앨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엄청난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인 줄 알 때부터 예수님이 필요하게 된다.
철저한 죄인임을 자각하고 깨달을 때 여기서부터 구원이 시작된다.
(막 2:17)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화) 이쁘장한 어느 자매 아가씨가 목사님에게 와서 하는 말이 :
목사님 저는 아침에 화장을 할 때마다 : 참 이쁘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것도 교만이지요? 목사님 대답 : 교만이 아니라, 오해입니다.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죄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훔치고, 미워하고, 사기 치고, 간음하고... 이런 모든 것들을 죄라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Sin 이라기보다는 sins 이다.
Sin이라는 원죄의 근원이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sins 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를 안 지으려고 하면 더 안 된다.
◉ 성경에 Sin is . 즉, 무엇이 죄다는 말이 3번 나온다.
1) 요한일서 3:4 “( )이 죄다.”
(요일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법을 어기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다. 즉, 불법이 죄다.
영어성경에는 Everyone who sins breaks the law; in fact, sin is lawlessness.
law +less +ness 는 헬라어로“anomia"(아노미아)로서 법을 무시한다.
즉, 무법(無法)이라는 뜻이다. 법을 무시하는 자들은
불법(不法)이란 영어에서 a +nomia, A = 불(不) nomia = 법(法)
Apolitical (정치에 무관심한) Pathatical (감상적인) ↔ APathatical (냉담한)
Metronome(메트로놈, 박절기). Astronomy(별의 법칙) Economy(경제 법칙)
그러므로, 죄는 불법이라는 말은 무법을 말한다. 법 없이 사는 사람이다.
번역할 때 죄는 불법이라는 번역 보다 죄는 무법이다고 번역하는 것이 더 원문에 가깝다.
즉, 무법자이다. 무법자하면 황야의 무법자가 생각된다. 그들은 법이 있지만 법을 무시한다.
법을 무시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가 법이 된다.
무법자는 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언제 죽는 것, 어떻게 죽이는 것을 다 누가 결정합니까?
황야의 무법자 스스로가 정한다. 무법자의 특징은 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법이다.
우리는 다 황야의 무법자들처럼 살고 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다 법이 있다.
교회는 이래야 되고, 목사는 이래야 되고, 집사는 이래야 되고, 정치는 이래야 하고,
나라는 이래야 하고, 하물며 하나님은 이래야 된다고 ... 자기가 법이다.
그래서 그 법에 안 맞으면 직장 보스도 죽일 놈이고, 그 법에 안 맞으면 대통령도 죽일 놈이고, 그 법에 안 맞으면 목사도 죽일 놈이고,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어떻게 하나님이 이럴 수 있느냐? 하나님도 하나님 노릇 잘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법이고 자기가 하나님이다.
인간의 죄란 무법이 죄다.
무법은 법이 없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법이고, 자신이 법노릇하는 것이 죄다.
(예화) 결혼 생활에서 싸움이 왜 일어나느냐? 무법자들끼리 싸우는 것이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편은 이래야 하고, 시부모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남자대로 아내는 이래야 하고, 며느리는 이래야 하고....
다 자기들의 법을 가지고 나와서 대립이 되고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법대로도 말고, 내 법대로도 말고, 예수님의 법대로 해 봅시다.
그러면, 부부 싸움이 70%로 줄어지더라. 온전히 따르면 100% 없어질 줄 믿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다 무법자라는 데 문제가 있다.
무법자들끼리 서로 양보가 없다. 피흘려 죽기까지 자기의 법이 기준이 되어 싸운다.
내가 법을 만들어서 요구하고, 강요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죄라는 말이다.
오늘 성경은 불법이 죄다. 이 말은 무법이다는 말이고, 무법은 법이 없는 것이 아니고,
내가 법이고, 내가 하나님이고, 내가 하나님 노릇하는 것이다. 이것이 죄라는 말이다.
2) 야고보서 4:17 “( )이 죄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는 야고보가 썼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형을 비난하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사람이 알고도 행치 않는 것 예가 어떤 것이 있을 까요?
불우한 이웃을 돌본다든지, 구제한다든지. 양로원을 찾아본다든지....
Sin of Commission (요일3:4)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죄. (우상숭배, 도둑질, 살인...)
Sin of Omission (약4:17) 해야 될 것을 안 하는 죄.(주일성수, 십일조, 이웃 사랑...)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전후 문맥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CF) 여호와 증인은 자기가 가진 사상을 가지고 성경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면 이단이 된다.
여호아증인, 공산주의, 문선명씨도 다 성경을 인용해서 자기가 가진 사상을 성경으로 확인하려 하면 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 저자의 의도를 알려면 항상 문맥을 보아야 한다.
본문 4:13-17절을 다시한번 봅시다.
그러면, 선한 일이 무엇이며?
악한 일이 무엇입니까?
선한 일이란?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장래의 일을 장담하지 않는 것이고,
악한 일이란? 장래를 장담하는 것이다.
여기 본문에서 장사군이 돈을 버는 것이
죄입니까? 아니다.
계획 세우는 것이 죄인가? 아니다.
문제는 장래의 일을 장담하고 있는 것이 죄이다.
장래의 일을 자기 생각대로 이렇게 하리라. 저렇게 하리라.
즉, 죄란? 장래가 내 손에 달린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악이요. 죄라는 말씀이다.
내가 계획도 세우고, 노력도 해야 하지만, 장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선이요. 믿음이다.
무법이 죄라면, 이 비즈니스맨도 자기가
장래 일을 다 결정하는 하나님 노릇을 하고 있다. 이것이 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그래서, 염려하는 것이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미래 지향적인 것이다.
나의 장래가 정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염려할 수 없고 하지 않는다.
장래가 내 손에 달렸다고 내가 스스로 하나님 노릇을 하기 때문에 지불하는 댓가가 “염려”이다
사람이 되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로 시간과 정력을 소비해 버리며 산다.
또한, 앞으로 닥아 올 미래에 대한 염려로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며 산다.
하나님은 오늘 하루를 주셨다. 그리고 말씀해 주셨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내가 실수했어도, 용서해 주셨고, 내가 잘못했어도 회개하면 다시 받아주시고, 이것까지도 사용하셔서 합동하여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장래 일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데... 문제는 내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이 죄이다.
그래서, 죄는 하나의 Attitude (태도) 이다. 죄의 근본은 하나님을 향한 잘못 된 태도이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라면, 내가 하나님 노릇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내 인생에 들어 올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니 능력도, 사랑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3) 로마서 14:23 “( )이 죄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행위는 모두 다 죄”이다.
(everything that does not come from faith is sin.)
(예) 믿음으로 하지 않는 예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기도, 봉사, 찬양, 헌금.... 많다.
본문에서도 바울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은 지금 먹는 문제로 말하고 있다.
여기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란?
제사 음식을 먹는 문제를 가지고 말한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말은 Faith 가 아니라, Conviction (확신)을 말한다.
양심에 꺼림직하면서도 먹는 것이면 죄가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을 우리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해 주신다.
우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있다.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이 있다. 양심의 소리가 있다.
이 3가지가 우리에게 들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꺼림직한데도 하고,
해서는 안 될 것을 하고, 가서는 안될 곳에 가고, 또 해야 할 일은 안하는 것이 다 죄다.
그러므로 옳고 그릇된 문제가 아니고, 마음 속에 하나님 싫어하시지 하면서도 하는 것이 죄다. 다시한번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예화)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은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은 다 빼앗아 가는 분으로 오해 한다. 아니다. 오히려, 내게 축복 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끊을 것을 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자유가 있고 행복과 기쁨이 있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다보면 받드시 기쁨과 자유가 주어진다.
(결 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죄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의 잘못된 태도(Attitude)이다.
위의 3가지 죄의 정의에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이 죄이다.
무법(無法)이 죄다.
무법자는 법이 없는 것이 아니고, 내가 법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사는 태도가 죄다.
둘째, 이 비즈니스맨처럼 장래의 문제까지도 내가 책임지려고 하나님 노릇 하려는 태도가 죄요.
셋째, 양심에 꺼림직 하면서도 행하고, 성령의 음성에도 불순종하는 것이 죄다.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니, 회개하고
내가 하나님 노릇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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