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7일 수요일

구원의 비밀 (9) 누가 144,000인가?


구원의 비밀 (9)
누가 144,000인가? (14:1-5)
 

오늘은 144,000에 대해서 말씀드리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144,000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정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많은 이단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 여호와의 증인 = 기름부음 받은 구룹, 자기들뿐이라고 .
신천지 이단도 같은 말을 한다. 인 맞은 영적인 선민들 자기들뿐이라고 함.
이단들은 흰옷 입은 거룩한 무리들을, 상징이 아니라, 실제적 숫자로 봄.
문제는 144,000의 수가 상징적인 숫자인가? 실제적인 숫자인가?
12×12×1,000 = 144,000
12 = 12지파(구약시대
12 = (신약시대사도(제자) × 1000 (큰 수의 상징, 많다.) = 144,000.
그러므로 우리의 해석은 : 신구약 시대에 구원받은 사람들의 총수로 본다.
 
요한계시록에 천년 왕국이 나오는데, 1,000년이 상징인가? 숫자인가?
보수 교회들도 많은 경우 다른 것은 상징으로 보지만,
1,000년은 상징으로 보지 않고 숫자로 보는 경우가 많.
실제적으로 천년동안 왕 노릇한다고 봄 (천년왕국설)
 
최근 개혁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영원한 왕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실제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144,000은 실제적인 숫자가 아니라,
능히 셀 수 없을 만큼의 많다는 <상징적인 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한 계시록은 묵시록이다. 계시록의 특징은 상징적이다그러므로 대부분이 상징이다.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
() , 독수리, 백마, 사자, , , 황충... = 다 상징적인 의미들이다.

색깔도 많이 나온다. () 흰색, 붉은 색, 검은 색, 푸른 색, 청황색,
숫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666. 144,000... 1,2,3,4,5,6,7...
이 모든 것들을 상징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들은 이 수를 상징으로 보지 않고, 실제로 정해진 숫지로 본다는데
문제가 있다.
 
(예화) 신성종목사(내가 본 천국과 지옥) 간증 책에서 :
천국에 가서 가브리엘 천사장을 만났다고 한다.
144,000이 실제적 숫자 입니까?
대답 : 만일 그렇다면, 지금까지 죽은 성도만도 그 이상이니,
이제는 아무도 천국에 더 들어올 성도가 없겠구나?
이 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므로 144,000은 신구약 시대에 구원받은 총숫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질문? 저와 여러분은 144,000에 속했나요? 아닌가요? Yes.
 
그러면 구체적으로 성경은 어떤 사람을 144,000이라고 말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두가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누구인가?
또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그들은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는 자들이다. (1절 상)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여기의 어린양은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구약 성경에서 <시온 산> = 예루살렘 성이 있는 곳을 말한다.
, 시온 산은 메시야가 오셔서 구속함을 받은 백성을 모으는 장소를 말한다.
, 시온 성 = 교회 = 하나님 나라를 의미함.

(48:1)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어린양이 시온 성에 서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시고,
구원을 성취 한 후에, 왕으로서 그 곳에서 계신다.
그런데 누구와 함께 서 있다고 했나요? 144,000이 서 있다.
그들이 바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7: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여기에 인 맞은 자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시간적으로 환난을 앞두고 본 환상이다.
, 환난 이전에 본 숫자이다.
그런데 (14:1)에 나오는 144,000은 환난을 통과한 후의 백성들이다.
, 7: 환난 전, 14: 환난 후,
, 모든 환난을 이기고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다.
 
계시록에 이 나온다. 사탄, 마귀를 상징한다.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도들을 배교하도록 하는데, 두 짐승을 통해서 한다.
(1) 적 그리스도 (2) 거짓 선지자.
사탄은 이 둘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환난을 주고 회유해서 배교하도록 역사한다.
144,000명은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환난을 이기고, 마침내 믿음의 선한 싸움을
마치고,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있고,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성에 서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
 
예수를 믿음으로 인침을 받은 우리가 환난과 핍박과 유혹을 이기고 마침내 시온 성에
서 있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야 마지막 날에 이마에 이름을 쓰고
주님과 함께 시온 산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야 한다.
 
(2) 그들은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있는 자들이다. (1절 하)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환난과 핍박과 유혹을 이긴 자들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이마에 있다.
이마에 그의 이름이 있다는 말은 = 어린양에게 속한 자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나의 왕, 나의 목자, 나의 구세주이시라는 고백이다. 이것이 이름의 고백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자녀이고, 소유된 백성이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소속과 신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
 
() 영적 세계에서 볼 때 = 이마에 이름이 새겨 있다. (상징)
어떤 사람은 이마에 예수님의 이름이 새겨 있고, 어떤 사람은 짐승의 표가 있다.
(14:9)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영적 세계에서는 둘 중에 하나이다.
어린 양의 이름이든지, 짐승의 표가 있든지... 둘 중에 하나의 표를 가지고 있다.
표시 없는 사람은 없다. 중간이 없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이마에는 누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짐승의 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는 우상숭배자들로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마>일까요?
옆구리, 귓 뿌리, ... 여러 군데가 있는데.... 왜 이마일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사람이 짐승(사탄)의 소속인지? 하나님, 어린양의 소속인지?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운동할 때 -- 이마에 띠를 띤다. 군인은 모자도 이마에 계급장이 붙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우리들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러므로 소속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한다.
문제는 성도인데, 그것을 숨기고 살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구원 받은 백성이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왜냐하면?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면, 주님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겠다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피 값을 주고 사셨다.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내 것이 아니다. 
내 몸도, 내 소유도, 내 생명도... 내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하나님이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그 이마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3) 144,000 = 아무나 부를 수 없는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다. (2)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하늘에서 나는 소리인데 --
많은 물소리 같고, 큰 뇌성(우뢰소리)같고, 거문고 타는 소리 같다.

(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그런데, 이 노래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부르는 새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바로 144,000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우고 부를 자가 없다.
, 구속함을 받은 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만이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노래도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5:19) 신령한 노래 라고 했다. (CF) 세상 노래, 가요, 유행가 아니다.
아무나 부르거나 배울 수 없는 노래이다.
어린 양과 함께 구속함을 받은 144,000이 시온 성에서 부를 수 있는 찬양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천국에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 땅에서도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144,000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노래로, 신령한 노래로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는 자만이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데, 바로 저와 여러분이다.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4) 144,000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자들이다. (4절 상)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여기서 여자는 타락한 세상을 말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풍조와 문화를 말한다.
(17: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큰 바벨론은 <땅의 음녀,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했다.
,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란? 영적 순결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해서는 안 되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신앙생활의 무대는 교회가 아니고, 세상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켜야지, 도리어 물들거나, 동화 되어서는 안 된다.
 
(5) 어린양(예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순종하며 따라가는 자들이다. (4절 하)
(14:4)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예수님을 선한 목자이시다. 그가 이끄시는대로 따라가는 자가 144,000에 속한 자들이다.
어디로 인도 하든지...? 이것이 중요하다. , 평탄한 길만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길로도 인도하더라도 따라가는 자이다.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가 무엇인가? 죄의 본질은 각기 제 길로 가는 것이 죄다.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사는 것이 죄다. , 하나님 요소를 빼버리는 것이 죄다.
목자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는 독립선언이 죄이다.
그것이 아담의 타락이고, 바벨탑이고, 탕자의 타락이다.
 
양이 목자를 따라가면 행복하지 않을 까봐, 고생할까 싶어서,
안 따라가고 제 길로 가는 것이 죄다. 이것이 인본주의, 휴머니즘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배제한 것이다. 인간 중심이 휴머니즘.
그러나 144,000은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
 
 
그래서 목자의 인도를 따라 가려면?
) 선한 목자를 신뢰해야 한다.
목자를 신뢰해야 따라갈 수 있다. 신뢰가 안 되면 따라갈 수 없다.
목자가 나를 지켜주고, 잔잔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할 것을 믿는 양만이 따라간다.
사탄은 목자와 양 사이에 <저 바다>를 만든다. 이거 조심해야 한다.
목자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불평하게 한다.
 
) 또한, 내 뜻과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정말 예수님을 선한 목자라고 신뢰하면 내 뜻과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 성도가 144,000에 속한 성도들이다.
(16: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는 말은 내 생각, 내 뜻을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결 론)
오늘 144,000에 대해서 말씀 드렸다.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144,000는 실제적인 숫자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로서, 성령으로 인침을 받고,
환난과 핍박과 유혹을 이기고,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쓰여진 구속함을 받은
모든 백성들을 말하는 상징적인 숫자를 말한다.
그들은 어린양 예수님과 함께 시온 산에 서서 아무나 부를 수 없는 새 노래를 부르는 무리들이.
그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내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선한 목자의 인도를 믿고 따라가는 자들이.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인침을 받고 이 땅에서도 새 노래를 부르다가 주님이 오라하시면,
기쁨으로 천국에 들어가서 어린 양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는 그 자리에 다 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 도)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 
    함께 주를 찬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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