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비밀 (4)
이신득의(以信得義)= 이신칭의(以信稱義) (롬 3:20-28)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라)
◉ 예수 믿는 자들만이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독특한 최대의 축복은?)
ㄱ) 병 낫고, 건강해 집니까? 그렇다. 치유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병들고 죽을 수도 있다.
ㄴ) 부자가 됩니까? 예 그럴 수 있다. 한국이 잘 살게 된 것은 예수 믿은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아도, 부자 된 사람 많다.
ㄷ) 명예와 권세를 얻고 높아집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예수 안 믿어도 그렇게 된 사람 있다.
오히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받고 명예와 권세가 추락된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건강, 부자, 권세, 명예는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받는 독특한 은혜는 아니다.
그럼 도대체,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독특한 은혜가 무엇인가?
<사죄의 은총이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예수 믿는다는 그 한가지 이유 때문에 다 용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나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바로 이런 사죄의 은총을 받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막 2:17)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 없듯이 의인에게는 예수님 필요 없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하고, 그래서 그가 오신 것이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생의 모든 짐은 죄의 짐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이 수고하고 무거운 죄 짐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오셨다.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죄의 은총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이다.
(시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신앙의 3중주)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동력이 어디서 생깁니까?
가장 큰 이유는 사죄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인생은 죄 때문에 불행이 시작, 불행의 뿌리다.
그런데 그 모든 죄가 해결되었다고 하니, 불행 끝, 행복 시작이 되는 것이다.
예수 믿어 죄 용서 받았으니, 다른 것들은 태양 앞에 촛불처럼 의미가 없어진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가 되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영생을 소유했는데, 좀 가난하면 어때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좀 병들면 어때요? 병 걸려도 천국가면 끝인데...
자녀가 좀 속 썩이면 어때요? 좀 가난하면 어때요?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구원 받은 것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 죄 용서 받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은혜 아래서 춤추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체험을 한 대표적인 사람이 마르틴 루터이다.
그는 22세 때 친구와 같이 들판을 가다가,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
루터는 나뒹굴어 졌다. 그 때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그래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하면서 <수도사>되기를 결심한다.
그런데 그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겠는가?
어떻게 하면 내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당시 캐톨릭은 : 인간은 선행과 노력으로 구원받으며, 끝없는 고행을 통해서 죄 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쳤다. 중세기 1,000년 동안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므로 루터는 구원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행했다.
베드로 성당 계단도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올라갔다.
그런데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는대도 그의 마음에는 번민만 있고, 평안이 없었다.
캐톨릭에는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하면 죄 사함 받는다고 해서 루터는 열심히 고해성사를 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사제가 말하기를 “루터야 죄를 좀 모았다가 가지고 오너라”
수도원에서 무슨 죄 지을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루 7시간씩 고해성사를 해 댔다.
그래도, 그의 마음 속에는 평안이 없었다.
그런데 로마서 1:17을 읽는 중에 구원의 빛을 보게 되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이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동안은 율법으로 구원받는 줄 알고, 열심히 율법을 지키려고 애썼고, 죄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잘못했구나... 여기서 루터가 깨져 버렸다. 그래서 기도로 용서를 구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구원해 주는 구나...
이것을 깨닫고 마치 자신이 천국에 당도한 것처럼, 큰 기쁨에 젖어 열광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되었고, 종교개혁의 슬로건이 :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Scriptura(오직 성경)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이신칭의 = 칭의(Justification) 교리가 나왔다.
믿음으로써 칭의(득의) 이(以) = <로써> 의롭다함을 얻는다.
이신득의(以信得義), 이신칭의(以信稱義)는 같은 의미로 죄인 된 우리 인간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혹은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는 말이다.
◉ 개신교와 캐톨릭의 차이가 무엇인가? 이것이 다르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중요하고 선행도 해야 한다. (캐톨릭)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과 부활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함. 그래서 캐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지는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에서 이신칭의 만큼 중요한 교리가 없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녔으면 다른 것은 몰라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교리,
이것 만큼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기독교가 무엇인가? <이신칭의>교리이다.
기독교에서 다른 것은 다 놓쳐도 이것만큼은 붙잡아야 한다.
내가 노력하고 애써도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나는 죄 밖에 지은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축복이 이신칭의이다.
영광스런 진리이다. 영광스런 복음이다.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기쁜 소식이다.
◉ 그렇다면,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의롭다가 아니라, 의롭다함을 얻은 자된 것이다. 이것은 법정용어이다.
판사가 공판 선언할 때 : 무죄 하면, 무죄이고, 죄가 없어도 유죄하면 죄인이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주 하나님이 <무죄> 죄 없다 고 해주시면 무죄이다.
(예화) 판사가 not Guilty. dismissed. (무죄, 이 소송은 취하되었음.) 그러면 끝이다.
어떤 목사님이 하와이에 있는 교회로 청빙 받아 갔다.
길이 좁아서 운전하다가 2틀 만에 티켓을 5장 받음.
보험금 올라가고, 면허 취소 위기.... 목사가 부끄러웠다.
법원에 출두함. 경찰이 기소함. 판사 생활 10년 동안 이런 경우 처음 봄.
뭐하는 사람이요? 모기 소리로 Pastor.입니다. 경찰의 증언대로 다 사실입니다.
제가 이제 새로 이사 와서 그랬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용서해 주시면 교통법규 잘 지킬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교우들에게 교통 법규
잘 지키자는 운동을 벌이겠습니다.
그랬더니 판사가 판결하기를 ... not Guilty. dismissed. (무죄, 이 소송은 취하되었음.)
그래서 그렇게 끝났다. 이것이 칭의이다.
목사님이 교통 위반의 죄가 있었다.
그런데 판사가 무죄 not Guilty를 선언하니 죄가 없어졌다.
심판주 하나님께서 not Guilty 라고 한번만 선언해 주시면 무죄가 되는 것이다.
(롬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하는 자 = 삯, 보수, 댓가로 받는다.
일을 아니할 찌라도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
여긴다 = 로기 조마이. 전가된다는 뜻.
의(義)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가 전가되어서 내가 의인처럼 받아들여진다는 말이다.
아무리 의로운 사람처럼 보여도, 의인은 없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으니 네 죄 사함을 받았니라
그러므로 너는 무죄다. 의롭다는 선언을 받는 것이 칭의이다.
(2) 칭의(稱義)의 방법 (2가지)
ㄱ)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 주신 일 ㄴ) 우리가 해야 할 일.
(ㄱ) 그리스도께서 해 주신 일 (24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
=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이라는 말이다.
속량 = 구속이다. redeemer(구속자) Redemption.
노예 시장에서 노예들이 팔린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노예를 사고, 자유를 줄 때 속량 Redemption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죄에 팔려갔던 우리를 속량 Redemption해서 자유케 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 고 하셨는데 이 말은 “다 갚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중요한 것이고, 우리는 늘 십자가 앞에 나가고, 십자가를 사랑해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의 짐이 벗겨지고,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이다
의의 옷이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입는 옷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는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이다.
(예화) 왕자와 거지 (소설) 에드워드 왕자, 왕궁 뒷 거리에 (톰 켄티)
한 날 한시에 태어남. 둘이 쌍둥이처럼 닮음. 우연히 둘이 만남. 우리 옷을 바꿔입어 볼까?
왕자는 - 세상 구경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지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거지는 - 왕궁의 법도를 모른다. 그래서 왕궁에서 해프닝이 벌어진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 왕자이신데, 죄인의 옷을 입고, 우리는 죄의 옷을 예수님께 드리고,
주님의 거룩하신 의의 옷을 입게 되었다. 이것이 의롭다함을 얻게 된 사실이다.
이 놀라운 교환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칼빈>: 하나님의 아들은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불의를 인하여 친히
부끄러움과 욕을 담당하시고, 그 대신 우리에게 그의 순결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옷, 의의 옷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순결한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사실도 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은 다음에도 여전히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를 볼 때에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나를 보아야 한다.
왜 그렇게 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시기 때문이다.
(ㄴ)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일과 부활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것이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신념이 아니다. 자기 확신이 아니다.
(예화) 선물을 받아 보셨지요? 선물은 손으로 받는다.
내가 손 때문에 선물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선물은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고마운 마음 때문에 받는 것이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내가 손을 내밀어서 받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한 것은 없다.
구원은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이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3) 칭의의 결과
ㄱ)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 :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칭의를 받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원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다.
그러나 칭의를 받은 후에 관계가 회복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입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나의 삶이 변해서가 아니다. 내가 입은 그리스도의 옷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할 수 없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어도, 정죄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방종>의 기회로 삼는데, 사실은 <감격>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과거에 죄가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정죄하지 않는다.
현재도 죄 짓고 있다. 그래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미래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이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에서 주셨다.
루터가 한 때는 하나님을 진노의 하나님으로 무서워하며 살았으나,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다. 내가 너 때문에 산다.
1.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2.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3.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받은 후에는 슬픔 많은 이 세상도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우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은 예수 믿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된 것이다.
풀리지 않는 어떤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다른 뜻과 계획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너무 너무 사랑하십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주어졌다.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왜 부르짖지요? 조금만 힘들어도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것이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
여러분의 궁핍을 호소하세요. 그가 들어주실 것입니다.
앞길을 인도해 달라고 부르짖으세요. 인도해 주실 것이다.
보호해 달라고 구하세요.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담대하게 부르짖는 그런 관계가 되었다는 말이다.
ㄷ) 최후 심판대 앞에서 담대히 설 수 있다.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칭의함을 받지 못한 자들의 운명은 말한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면 2권의 책이 펼쳐진다. 행위책, 생명책.
불신자들은 그 행위책에 의해서 심판을 받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생명책 안에
내 이름, <김광삼>의 이름이 있다.
그리고 not Guilty. dismissed. (무죄, 모든 죄가 취하되었음.)
그러므로 이신칭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이란 천국으로 가는 관문이다. 죽음의 문턱만 넘어가면 영생의 나라가 펼쳐진다.
그러므로 칭의를 받은 성도들은 죽음을 오히려 할렐루야로 받아들여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죽음 = 천국 입성의 영광이다. 이런 은혜가 어떻게 주어지나?
(결 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 부활하심을
믿기만 하면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나요?
내가 죄 사함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not Guilty. dismissed. (무죄, 모든 죄가 취하되었음.)
이렇게 선언해 주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내 인생이 새로워짐을 느끼게 되고, 주님 안에서 참 자유와 행복이 계속될 것입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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