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8일 월요일

★★ 인생의 연한과 죽음 ♡


성경 : 시편 39:4-7
제목 : 인생의 연한과 죽음
 
사람은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3:2)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오늘 본문 39편은 다윗이 병상에 누웠을 때에 쓴 시이다왜냐하면:
(13)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라고 기도한 것을 보아서 병상에서 쓴 시라고 본다.
 
사람은 한 참 건강하고 평안할 때 인생을 보는 눈과 고난 중에서,
병상에서 인생을 보는 눈이 다르다.
우리 목사들은 빤질 빤질 교회도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기쁘다.
왜요?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면 약해진다.
그 때 인생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신앙생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만난다.
그러므로 병상의 시간은 좋은 치료의 시간이고, 병상의 장소는 주님을 만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병이나 고난 자체가 꼭 나쁜 것만을 아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인생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 입니까?
(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고후4:7) 인간은 마치 질그릇과 같다고 했다.
 
다윗! 그는 일국의 왕이나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두 가지를 통해서 알게 해 달라고 한다.
1) 인생의 종말, , 죽음을 통해서
2) 인생의 연한을 통해서 알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차원이 다르다.
밤낮 무엇을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 기도와 다르다
정말 인생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의 기도이다.
 
내 인생의 연한과 죽음을 통해서 자기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결론이 뭐냐? (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충성되게 잘 믿는 것만이 나의 소망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우리는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소망을 주님께만 둘 수 밖에 없는 것입니까?
(1) 내 연한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연한의 짧음을 통해서 (인생의 길이, 인생의 세월) 인생의 연한이 얼마나 되는가?
(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인생의 연수가 한 뼘이다는 말이다. 그리고, (My age is as nothing before You)

(90:9-10)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일식 : a sigh (한숨, 탄식...) 이 말은 인생이 참으로 짧다는 말이다.
80년을 살고 간 할아버지나 5년을 살고 간 어린아이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게 그것이다.
 
(89:47)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인생을 깊이 관조하고 깨달은 사람들 중에서 :
에드먼드 쿨 : 인생을 거품에 비유했다.
바이런(시인) : 만추의 낙엽이다. 늦가을에 떨어지는 낙엽과 같다는 말이다.
쉑스피어 : 인생 그것은 걸어가는 그림자와 같고, 초라한 배우일 뿐이다.
인생이 이처럼 허무하다. 잠깐 연기하다가 때가 되면 들어가는 배우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
(5)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4:14)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아침 안개와 같다.
(벧전 2:11) 지나가는 나그네와 행인과 같다.
 
아무리 유명했던 배우도 다 사라져 없어졌고, 천하를 뒤흔들었던 어떠한 정복자들도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황제, 부귀영화의 대명사 솔로몬 왕) 잠깐 있다가 죽었을 뿐이다.
 
(벧전 1:24-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예화) 성경에 인생의 연한이 70년이고
강건하면 80이라고 했는데,
하루살이는 24시간이 평생의 삶이다.
어떤 사람이 인생 70년을 24시간으로 환산해 보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시편에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는 말씀 때문에 70세로 환산한 것 같습니다.
15:오전 5:14 20: 오전 7:26 25: 오전 8:59 30: 오전10:29 
 35:정오12시 40:오후 2:11 
 45: 오후 3:43 50: 오후 5:14 
 55: 오후 7:26 60:오후8:57
65:오후10:29 70: 오후 12
 
80년으로 환산해 보니까:
15:오전 4:30 20: 오전 6:00 25: 오전 7:30 30: 오전 9:00 
 40:정오1245:오후 1:30 
 50: 오후 3:00 55: 오후 4:30 
 60: 오후 6:00 65:오후 7:30
70:오후 9:00 80: 오후 12
 
여러분 !
이런 식으로 인생을 따져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님 앞에서 70년은 한 뼘도 안 된다
이런 인생을 사는 우리다.
 
(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 하였나이다. (90:9)
그렇습니다. 꿈 꾼 것같이 한 순간에 다 없어졌나이다.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 쏜 살 같이 빠르고, 광선같이 빠르다.
그러므로, 인생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살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 몸과 맘을 바치고 힘써서 일하세
 
인생은 이와 같이 허무하고, 그 성공한 것 같은 것도 허사뿐이고,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한 인생이다
그러기 때문에 : 인생의 소망을 주께만 두는 것이 그 해답이다는 말이다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고, 내세에 두고, 천국에 두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참으로 믿을 것이 없다.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요.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가치요.
주님만이 이 허무한 세상을 의미있게 만드실 분이십니다.
 
2) 둘째로, 인생의 종말(죽음)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여러분 ! 죽음이 무엇입니까?
죽음에 대한 정의가 많다. 죽음이란?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인생의 수수께끼이다.
메사츄세츠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던 밀톤 메이어가 죽음을 주제로 논문을 쓴 것이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의 특집 부록에 실렸습니다
메이어 교수는 죽음이라는 수수께끼를 이렇게 표현했다.
죽음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할 찌 모르겠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해 무엇을 생각할 찌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 자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대학교 박사님도 죽음이 뭔지 모른다.
 
죽음에는 History(역사)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90: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좀 표현이 심한 것 같다.
그러나 통계에 의하면 1초에 20이 죽는다. 하루에 170만 명이 죽는다.
아무리 대단한 홍수라도 하루에 200만을 쓸어 가는 홍수는 없다.
죽음이 얼마나 대단 합니까? 이런 폭군 앞에 인간들은 부들 부들 떱니다.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이런 죽음이 어디서 왔습니까
에서 왔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3중 죽음이다
3가지 종류의 죽음이다.
1) 영적 죽음 
2) 육신의 죽음 
3) 영원한 죽음
성경에는 이 3가지가 복합해서 말할 때도 있고, 그 중에 하나만 말할 때도 있다.
죽음을 모르면 성경의 진수를 모른다.
 
(예화) 여기 꽃이 있다
꺾인 나무는 3중 죽음을 당한 사람과 같다.
(1) 영적 죽음이란
나무 기둥에서 끊어져 있으니, 죽은 것이다.
우리의 참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 단절된 상태를 성경은 영적 죽음이라고 한다.
 
(2) 원나무와 끊어진 이 나무 가지는 몇 칠이나 살까요? 2(?) 일주일(?) ...
인생이 얼마나 살지요? 70-90...
세월이 지날수록 백발이 생기고, 기억력이 쇠퇴하고, 피부가 죽고....이것을 육체의 죽음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죽나요? 영적으로 죽음을 당한 존재이기 때문에 육신의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3) 이 죽은 나무 가지를 어디다 버리나요? 또 누가 집어가나요?
청소부가 아궁이나 쓰레기장에 갖다 버린다.
사람이 죽으면 누가 끌고 갑니까
어디로 끌고 갑니까?
사탄이 지옥으로 끌고 간다
그 곳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했다.
단테의 말대로, 지옥 문에 이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소망을 버릴찌어다
이것이 영원한 죽음 혹은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입니까?
세상에서도 사느라고 고생, 고생... 죽어서는 지옥가는 인생이다.
그래서, 해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나름 대로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다.
 
누가 이 죽음 앞에 자신있게 설 수있나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지혜자는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고 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다.
 
내 젊음도, 학위도, 재산도, 애정도, 사랑도... 다 헛된 것뿐이다.
(분명히 기억합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합니까?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무상(人生無常)에서 의미를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의 문제에서 해답을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그래서 예수님만이 인생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예수님만이 해답이 되신다.
그러므로, 7절의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생은주님 밖에 나의 소망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왜 예수님만이 진리입니까?
죽음의 뿌리는 죄라는 것을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인이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고,
그는 사망 가운데서 3일만에 부활하신 유일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주님이시오. 예수님만이 진리요. 예수 외에는 소망이 없은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재산을 많이 모아도, 문학 작품을 많이 써도, 공부를 많이 해도, 미국 대통령이 되어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 안에서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1) 영적 죽음의 문제는 : 
하나님과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2) 육신의 죽음의 문제는 : 
예수님께서 친히 사망 가운데서 부활하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가 재림하시는 날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이다
(고전15:20)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라.
 
3) 영원한 죽음의 문제는 :
영벌, 지옥으로 가는 문을 예수님께서 막으시고 영원한 나라, 하늘 나라의 문을 여셨다.
그러므로, 나의 소망은 주님뿐인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예수를 잘 믿어야 합니까?
 
여러분 !
여러분들이 들어온 길은 정확한 길입니다. 후회없는 길입니다. 소망이 약속된 길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소망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죽음과 인생의 허무에서 극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 이니이다 (셀라)
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인생을 바로 직시하고 나의 소망을 오직 예수님에게만 두고, 참으로 잘 믿겠다고
결심하는 복된 성도님들 위에 주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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