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2일 화요일

헛되지 않은 수고(부활주일) / 고전 15:58


성경: 고린도전서 15: 58
제목: 헛되지 않은 수고

(예화) 벨지움에 가면 월터루라고 하는 세계 역사의 방향을 바꾼 전쟁터가 있다.
그 월터루에서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세계 정복자였던 나폴레옹과 연합군 대장이었던 철석공 웰링턴이 자기 수하에 있는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필사의 격전이 벌어졌다.
3일 동안 계속 내린 비로 말미암아 포병의 천재인 나폴레옹의 포대가 포 진지를 옮기는데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상승세를 탄 이 불란서의 기병대들은 점점 연합군을 향해
육박하고 있었다. 철심장이라고 말하는 월링터 공 마저도 그 얼굴이 몹시 피곤해 있고, 초췌해 져 있을 때, 서북방에서 거대한 함성이 일어나면서 이제나 저제나 오기를 기다렸던 오스트리아 기병대가 이 불란서 기병대의 배후를 쳤다.
이로 말미암아, 나폴레옹 군대의 일각이 무너지면서 전세가 일시에 역전 되었다.
그래서 한번도 질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부르짖던 위대한 나폴레옹의 패망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빅톨리고자 레인위제 라고 해서 서두에 월터루 전쟁역사를 이런 방향으로 기술해 놓았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휘하에서 훈장을 달았던 불란서 장군들은 패잔병이 되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기병대 가운데 한 기병소년 하나가 자신의 말의 발굽이 고장 나서 치료하다가 하루가 늦었다. 자기 부대에 와 보니까 모든 전쟁은 끝이 났고, 여기저기에 전쟁의 상처만 남았을 때 월터루에 도착했다. 총 한번 쏘아 보지 못했고, 칼 한번 휘둘러보지도 못했지만, 이 소년 기병은 자동적으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이겼던 승전의 경험과 그들의 업적과 가슴에 단 훈장과도 상관없이 아무 상관없이 나폴레옹 휘하의 모든 군인들과 장군들은 패잔병이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월터루 전쟁과 같은 그래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거대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인류에 가장 무서운 원수인 사탄이 그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무기인 죽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갈보리 언덕에서 싸웠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죽음을 죽인 죽으심이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소년 기병처럼, 그의 노력과 그의 능력과 그의 조건과 상관없이
예수님 편에 서 있다는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 승리자이다.
사탄 편에 서 있던 자들은 아무리 큰 세력을 가졌다할 찌라도 패잔병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이미 우리는 승리 위에 서 있다. 승리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께서 이미 확보해 놓으신 승리를 갖고 아직도 조금씩 괴롭히는 사탄, 마귀를 향해서 싸우는 싸움을 싸우는 것이.
우리 인생은 이미 확보된 승리 위에서 우리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우리 삶 속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를 괴롭히고 두렵게 했던 죽음 향해서 자신있게 큰 소리로 외칩니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전쟁의 승리는 나로 말미암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비록 이 세상에서 이런 고통, 저런 어려움을 당한다할 찌라도,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 성자를 죽이시기 까지 사랑하시고 그 아들의 부활로 승리를 주신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 속에 감사가 생깁니다. 놀라운 찬송이 생긴다. 꺼질 수 없는 기쁨이 생긴다.
이 승리를 우리는 이미 확보하고 살아가는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부활 생명으로 승리의 삶을 사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성경을 보면 두 가지 전치사를 특별히 서신서를 읽을 때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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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주님께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되어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동시에 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사도신경에서 죄를 사해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속죄를 믿고, 영생을 믿고, 몸이 다시 사는 부활을 믿습니다.
 
성경에 나사로가 죽었다가 3일 후에 다시 살아났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났다. 나인성의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죽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과 그들이 죽었다가 다시 산 것은 같은
부활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생하는 부활이요, 다시 병도 없고, 죽음이 없는 신령한 부활
의 몸이다. 예수 부활은 역사 이래 유일한 단 한번의 사건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고, 못 믿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 교수 토마스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말하기를
예수의 부활은 과거 역사적 사건 가운데 가장 뚜렷하고 분명한 사실이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성경의 진리도, 믿음도, , 사랑, 헌신, 봉사...등이 다 헛된 것이 된다.
부활을 믿기에 예배드리고, 부활을 믿기에 헌신하고, 부활을 믿기에 순교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수십 억의 사람이 살고 있지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1) 내세의 영생을 믿는 사람
2) 내세의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
영생을 믿는 사람은 가는 길이 다릅니다. 사는 방법이 다르다. 인생관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고, 바라는 것이 다르고, 소망이 다르다. 늘 준비하면 삽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하여 가지만, 영생을 안 믿는 사람은 무덤을 향하여 갈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부활을 믿기에 영생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기념한다. 성찬식을 통해서 예수님도 기념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부활은 기념행사가 아니라, 내가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에 나도 동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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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면서 내리는 마지막 결론으로 그러므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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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중요한 두 전치사가 쓰여 질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But Now) :
우리의 존재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
전에는 죄인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의인이다.
전에는 사탄의 자식이 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전에는 땅에 속했으나, 지금은 하늘에 속한 백성이 되었다.
신분과 존재 의 변화를 말할 때 : 그러나, 지금은
 
그러므로 (Therefore) :
삶의 멧세지를 전할 때 사용되는 전치사입니다.
너희가 이러한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너희의 삶과 행실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삶을 향한 멧세지가 있다.
 
우리의 존재에 대한 멧세지를 보려면, 그러나 지금 (But Now):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그러나 지금은 주안에서 빛이라.
(2:3) 너희가 전에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지만, 지금은 ...
(2:13)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외인이요,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오늘 본문에서도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전 1: 2) 해 아래서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헛된 세상에서 헛되지 않은 삶은 무엇인가?
사람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헛수고 할 때이다. 그렇게 정성을 다했고 최선을 다 했으나,
그 수고가 헛된 것이 되었을 때처럼 허무한 일이 없습니다.
 
인생들아 ! 네 이름이 무엇이냐?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광도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것 같이
헛된 인생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헛된 세상에서 헛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에 주안에서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왜 주안에서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까요?
 
1) 하나님이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가면 다 잊어버린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해 주신다.
여러분 !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대통령 - 그 어른 돌아가시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박정희대통령, 이병철씨, 현대기업 창업자 정주영씨도 ..모두 죽음 앞에서 기억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은 몰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주안에서의 수고를 기억해 주신다.
의인은 오른 편에 서서 주여! 우리가 언제? 주님을 돌아보았나이까?”
본인이 해 놓고도 잊어버린 것을 주님은 기억해 주십니다.
(6:10)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0:42) 주의 이름으로 대접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잊지 아니하신다고 했다.
하나님이 이렇게 기억해 주시니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2) 자손을 향해서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예화) 한번은 후레드릭 대왕이 자기 신하에게 질문을 했다.
하나님이 계시는가? 예 계십니다.
그러면, 그 증거를 대라. 예 유대인입니다고 했답니다.
 
유대인- 그들은 역사상 단 하나의 예외적인 민족입니다.
그 민족만큼 수난 많은 민족도 없습니다. 탄압받고, 희생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구약성경에 이집트로부터 시작하여 블렛셋, 앗수르... 독일의 나치에 이르기까지
그 민족을 죽이기로 작정했던 계획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고난을 뚫고 어떤 사회에서든지 유대인은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민족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후손을 향한 축복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왕권을 17대손에 이르기까지 아들에게 계속적으로 물려준 왕조는 유대 왕국 밖에 없다.
보통은 3대를 계승 못하는 것이 세상의 왕국이다.
 
성경 열왕기서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신 등불을 끄지 않기 위해서...”  이런 말씀이 계속 나온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했을 때 - 하나님은 다윗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을 축복해 주셨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면서 한가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믿음의 가정 위에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이다.
부모에게서 축복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축복이 그 자녀들과 그 후손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이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청교도 신앙인이며 미국 프린스톤 대학의 총장이었고, 문필가였던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의 후손 8대에 걸친 후손 연구 (200년 동안) 부통령 1, 주지사 3, 대학총장 13,
대도시 시장 3, 장차관급 공무원 82, 변호사 149, 판검사 48, 의사 68, 교수 65,
사업가 75, 발명가 25명 등등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해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했다.
그러나 당대에 같이 살았던 주정뱅이 죽크5대에 걸친 (2240)후손은 깡패, 매춘부,
마약 중독자, 살인, 도둑 등등의 범죄자가 90%이상이 나타나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쳤다.
(정상 생활자는 겨우 20명에 불과했다.)

주안에서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 것은 셋째로:
3)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상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슨 애들 같이 시시하게 상인가?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닙니다.
집안에서 아들이 대통령 상한번 받으면, 사진 크게 찍어서 걸어 놓고 심방 갈 때마다 자랑한. 노벨상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처음으로 받았다.
하물며,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얼마나 영광스러울까요?
(예화) 매년 1210일 오후 410분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수여되는 노벨상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면,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상은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고는 사실상 주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상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믿어야 합니다. 기대를 해야 합니다.
그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모세도 상을 믿었습니다.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2:10)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살전 2:19) 복음을 전하면 자랑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딤후 4:8) 믿음을 지키면 의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사도 바울도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부활 신앙은 헛된 세상에서 결코 헛되지 않는 수고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그러면, 본문에 헛되지 않은 수고를 붙잡은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삶의 4가지 태도가 있다.
1) 견고해라 : 뿌리를 깊이 내리라
아카시아 나무처럼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라는 말이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가 없어 말라죽었습니다.
 
2) 흔들리지 말라 : 뿌리가 깊으면 흔들리지 않지만, 뿌리가 약하니 흔들리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기 위해 유혹하고 핍박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세상 유혹과 핍박에도 흔들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3) 항상 주의 일에 : 신앙생활 가운데 변덕이 큰 문제입니다.
기분 나면 다 할 것 같다가도, 기분이 나쁘면 집어치우는 분이 있다.
그러나, 헛되지 않은 수고를 붙잡은 사람은 꾸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항상>= 변함없이 주의 일에 힘쓰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매너리즘(타성)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다. 형식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다.
 
4)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점점 더, increasing, 작년보다 금년이, 지난달 보다 이번 달이
어제 보다 오늘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일군이 되라.
 
그러면, 하나님이 기억해주시고, 축복이 자손들을 향해서 계속되고, 주님 앞에 설 때에
큰 상급과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우리들의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 다같이 58절을 한번 합독하고 마치겠습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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