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1일 일요일

[본질 회복] 씨리즈 (2) 복음을 복음 되게 하라


[본질 회복] 씨리즈 (2)
복음을 복음 되게 하라 (1:6-10)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아주 무서운 말을 한다.
(8)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 했다. 누구에게...?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 받을 것이다.
복음의 원수 노릇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다.
 
복음 = 유앙겔리온 (기쁜 소식)이다.
(예화) 원래 이 말의 어원은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이 승전보를 알려 주는 기쁜 소식이 유앙겔리온이다. 얼마나 마음 조리면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까?
전쟁에 나간 남편이,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부상은 당하지 않았는지?....
모든 것이 불안한 가운데, 전령이 달려 와서 <우리가 이겼습니다>고 하는 기쁜소식이다.
 

이것 보다 더 기쁜 온 인류에게 미칠 가장 기쁜 소식이 있다.
예수님 탄생 시 :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 기쁜 소식의 성취가 이루어진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소식이다.
이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고전 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 15: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 15: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2-4)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러니까, 구원은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얻는 것인데, 갈라디아 교회에서 문제가 생겼다.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기만 한다고 구원을 받는가?
뭔가를 해야지... 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다.
,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받아야지, 어떻게 예수를 믿기만 한다고 구원받느냐?
이것이 다른 복음이다. 그래서 복음을 복음 되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은혜의 복음을 모르고 다른 복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개탄하고 있다. (6)을 다시 봅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바울이 갈라디아를 떠난 후 유대인들 가운데 소위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 갈라디아 교회를 혼란 가운데 빠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도들의 삶의 표준으로 지켜져야 할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는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서신이 기록되던 당시의 예수 믿는 것 외에도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고자 한다면 할례와 같은 의식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우리의 의식 지킴이나 어떤 특별한 종교적 행위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사도는 그것은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죽으심을 헛되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했다.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구원의 조건으로 예수를 믿는 믿음 외에 무엇인가를 더해서 강조하든가 가르친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라고 경고한다.
(7-8)을 다시 봅시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은혜의 복음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지는 조건 없는 사랑 이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종교적 의식과 인간적 행위를 담보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부 사랑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화)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구하기 위해 조건 없이 죽었는데 누군가가 찾아와서
<그럴 리가 없어. 그가 당신에게 받아낼 것이 있어서 죽은 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친구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모독이 아니겠습니까?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 안에서 가르친 것들이 그런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단호하게 그것은 다른 복음이며 이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는 순수한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교회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는 놀라운 은혜의 복음이 변질되지 않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질되지 않는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면 율법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인가? 아니다.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만 믿는다고 구원 받겠느냐? 할례도 받아야 하고, 율법도 지켜야지...
이것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주장하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지키려고 노력하게 되어 있다.
믿기만 하면 된다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믿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십계명대로 살아야 한다.
목숨 걸고 우상 숭배하지 말고 주일을 지키고, 부모공경하고.... 등등
십계명을 지켰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으니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
 
(결 론)
교회의 예식 가운데 성찬식이 있다. 성찬식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 성육신하여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나요?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그러나 장사한지 사흘 만에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 복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고전 15: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예수도 믿고, 다른 선행이 보태져야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보탤 것은 전혀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테텔레스타이 = 죄 값을 다 갚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식]이 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 = 믿음 -행함. 믿음 = 구원 + 행함.
 
복음을 복음 되게 하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기 도)




[본질 회복] 씨리즈(1) 은혜로 은혜 되게 하라.


[본질 회복] 씨리즈 (1)
은혜로 은혜 되게 하라 (2:8-9, 11:6)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예화)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성 어거스틴 이라는 신학자가 있었다.
그는 32세 때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매우 방탕한 사람이었다.
어머니 모니카는 그를 위해 늘 눈물로 기도했다.
이 방탕한 아들이 자기 곁을 떠나지 않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한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어머니 곁을 떠나 멀리 멀리 갔다.
그 때 어머니는 목사님에게 찾아가서 묻는다.
왜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건가요?
목사님의 대답은 : 아닙니다. 어찌 어머니의 기도가 헛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깡패 어거스틴은 로마에가서 암브로스 목사님을 만나게 되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되고, 성 어거스틴이 되어 돌아온다.
 
한 사람 어거스틴이 돌아오기 까지는 어머니의 기도가 함께 했고,
내가 나 되기 위해서 그 누군가의 많은 수고가 있었고, 기도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인생의 배후에 있었다.
 
(예화) 한국의 자살률이 높다. 1년에 25,000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그런데, 자살을 시도했으나, 어떻게 해서 병원에 실려가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똑 같은 말을 한다.
난 혼자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줄 알았다는 것이다.
나는 쓸데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는데, 그것은 나만의 혼자 생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다는 것이다.
 
1) 은혜가 은혜 되려면 은혜를 알아야 한다.
은혜를 은혜로 모르면 은혜가 아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
문제는 받은 은혜를 언제 깨닫느냐? 하는 것이다.
은혜를 은혜가 되게 하는 것은 깨달을 때이다.
은혜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있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잃어버리고 나면 깨닫는다.
() 건강이 은혜이다. 큰 은혜이다. 내가 위생적으로 산다고 건강한가?
운동한다고 건강해 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 건강한 것은 큰 은혜이다.
우리 친구들 보면 : 여러 가지 질병으로 아픈 사람들 소식이 들려온다.
언제까지 건강할지 모르나, 오늘 건강하다면 참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건강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런 줄 알았으면, 욕심을 버릴 걸, 담배피우지 말걸, 혈기 부리지 말걸...
그래서 가끔 아퍼서 병원에 입원해야 은혜를 깨닫는다.
건강은 은혜 중에 은혜이다. 문제는 잃어버리고서야 비로소 은혜를 안다.
 
(예화) 집에서 자녀들이 아프면 학업 성적이 떨어져도 괜찮다. 아프지만 말아라.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병들어 보니까 건강이 얼마나 큰 은혜 인지를 깨닫는다.
또한, 재산을 잃고 나서, 명예를 잃고 나서... 비로소 소중한 줄 안다.,
그러므로 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혜를 아는 것이다
 
은혜는 거저주시는 선물(공짜)이다.
그 반대는 율법이다. 율법적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은혜의 반대 개념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내 노력으로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받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선행이나 노력이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다.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Cf) 심지어 기도 많이 해서 복 받았다(?) 기도 많이 하는 것 굉장한 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도 많이 했으니...라고 하는 공로가 되면
또 한번의 시험에 빠지는 것이다.
차라리, 나는 기도도 안했는데 이렇게 복 받았다는 말이 더 옳은 말이다
내 의(), 내 수고의 댓가가 아니라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
2) 은혜는 지식의 세계가 아니라, 감성의 세계이다.
은혜를 은혜로 느껴져야 한다. 아 하 -- 은혜에 대한 감동, 감격이 와야 한다. 
그래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감탄이 되고, 감격이 와야 한다.
이러한 감격은 어디서 오는가? 겸손할 때 온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나는 피조물에 불과하고, 죄인임을 아는 것이다.

교만한 자에게는 은혜가 없다. 은혜를 모른다.
교만한 사람은 은혜도 모르고 은혜가 은혜 될 수 없다.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해서는 <겸손>이 절대 조건이다.
 
그런데, 이것은 역으로 겸손해서 은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은혜로 아는 순간, 자연스럽게 <겸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의 은혜가 최고의 은혜이다.
, 건강, 명예... 다 별거 아니다. (솔로몬이 경험해 보고 말했다.)
가장 귀한 것이 겸손이라는 은혜이다.
 
은혜를 알고, 깨닫는 순간 어떻게 되는가?
나는 사라지고, 겸손하게 된다. 아주 낮아진다. 그 때 모든 것이 다 은혜가 된다.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아는 은혜가 최고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나를 겸손케 만드셨다는 그것이 은혜이다.
지금 내가 겸손해 졌나요? 큰 은혜를 받은 것이다.
교만은 율법에서 나온다. 율법주의에서는 은혜가 없다. 순 자기 자랑 뿐이다.
 
(예화) 인도의 선교 개척자라 불리우는 윌리암 캐리 라는 선교사가 있다.
그는 놀라운 선교사역을 했던 선교사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자신을 벌레라고 생각하고 산 신앙인이다.
그는 자기 묘비문을 자신이 미리 썼다.
<죄 많고, 능력이 없는 벌레인 나는 당신의 거룩한 손에 기대어 여기에 잠드나이다.>
그는 평생 선교사로 살았으나, 나는 벌레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이 은혜의 사람이다. 이 사람 생각에는 은혜 아닌 것이 없다.
나는 벌레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고백입니까?
이것이 은혜의 근본이다.
 
은혜 = 카리스 기쁨 = 카라 : 어원이 같다.
은혜가 곧 기쁨이고, 감격이다. 큰 기쁨이 은혜이다.
그리고 이 은혜가 높은 생산성, 창조성을 나타낸다.
은혜를 깨닫고 은혜에 감격하게 되면 또 다른 생명력이 솟아난다.
그래서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에 감격한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
용서 받은 사람이 용서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은혜가 공짜인데, 공짜가 아니다. 공짜로 그냥 흘려버리면 안 된다.
(고후 6:1)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은혜를 깨닫는 순간, 헌신이 뒤 따르게 된다.
은혜를 알고 나면, 하나님께 헌신하고, 헌신하면 행복해 지고,
행복해 지니, 감사하고, 감사하니 또 다른 은혜를 받게 되고,
재 생산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은혜로 사는 사람에게는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예화) 패니 크로스비 여사 :
그 분은 태어날 때는 정상 시력이었는데, 돌팔이 의사의 실수로 생후 6주 만에
실명하게 되었다. 맹인으로 95세까지 살았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불행했다.
그러나 크로스비 여사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나를 소경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려한 세상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보고, 속된 것을 보지 않고,
주님만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맹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천국에서 내가 제일 먼저 볼 얼굴이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찬송시를 썼는데 4,000개 이상을 썼고, 전 세계적으로 400개 사용함.
우리 한국 찬송가에는 29개가 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인애하신 구세주여... 예수께로 가면...
나의 영원하신 기업...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등등
 
이 분에게는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는 모든 것이 <은혜>이다. <은혜> 아닌 것이 없다.
 
(3:3)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고전 15:1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예화) 사도 바울은 고후 12장에서 놀라운 간증을 한다.
그에게는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라고 하는 (간질병) 큰 병으로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후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10)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 오히려 그 가시 때문에 자고하지 않고 겸손하게 되었고,
그 가시 때문에 주님만 의지 하게 되었고, 더 기도에 힘쓰게 됨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이 임해서 귀한 사도로 쓰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예화) 빌리 그래험 목사님 소천하셨다. 1918. 11. 07. ~ 2018. 02. 21. (99)
그가 노후에 아프셨다. 파킨스병으로 고생하셨다.
제자들이 찿아 와서 목사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그 때 빌리 목사님은 : 아니다. 그러지 말게, 나는 요즈음 전에 깨닫지 못하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있네... 이 고통 가운데 내 영혼이 깨끗케 지고 주님께 가까이 가니 이렇게 아픈 것도 은혜일세...
그는 일평생 주님의 은혜로 사시고, 은혜로 노후의 삶을 사시다가 천국의 주님 품에 안기셨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혜를 아는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
또한,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해서는 <겸손>이 절대 조건이다.
 
은혜를 알고, 깨닫는 순간 어떻게 되는가?
나는 사라지고, 겸손하게 된다. 아주 낮아진다.
그 때 모든 것이 다 은혜가 된다. 은혜는 곧 기쁨이고, 감격이다.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은혜의 간증자, 은혜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화) 미국에는 오토바이 족이 있다. 그들은 술과 마약을 한다.
<브리스트>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주일에 지나가다가 교회를 발견하고 어릴 때
생각이 나서 들어갔다. 술 냄새가 지독하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교회 안내 위원 집사님은 아주 친절하게 영접해서 맨 앞자리로 안내했다.
술 냄새가 천지를 진동시킨다. 그래도 교인들은 잘 참는다.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 바이크 족 한 분이 오셨는데... 환영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아니, 나 같이 반항적이고 못된 나를 사랑한다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감동을 받고, 그 교회에 등록을 하고, 어머님께 전화했다.
나 교회 나가고 등록했습니다.
어머님 대답 : 이제야 내 기도가 응답되었구나.
이 사람이 자기 의지로 살았고,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기도가 함께 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신학교를 가고 목사가 되어 바이크(오토바이) 선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가 너무 많다.
그 은혜를 은혜 되게 하며 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